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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일레이와 푸른 하늘

 

하늘은 왜 푸른가 하는 것은 오랜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궁금하게 생각해왔던 질문이었다. 높은 고도에서 천정(zenithal) 방향의 하늘은 분명하게 푸른빛을 띠며, 중간 고도에서도 대개의 경우 하늘은 푸른빛을 나타내곤 한다. 예로부터 하늘이 푸른 이유에 대한 다양한 유형의 설명이 있어 왔다. 우선 근대 과학의 초창기에 많은 과학자들은 빛의 굴절과 반사에 의해서 하늘이 푸른 이유를 설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하늘이 푸른 이유가 빛의 산란에 의한 것이라는 것은 19세기 말에 와서야 분명한 형태로 밝혀졌다. 1871년 영국의 존 윌리엄 스트럿, 즉 제 3대 레일리 경(John William Strutt, from 1881 the third Lord Rayleigh, 1843-1919)은 빛의 산란 이론을 바탕으로 해서 하늘이 푸른 이유를 처음으로 이론적으로 설명했던 것이다. 

레일리의 산란 이론에 의하면, 하늘이 푸른 이유는 대기 중에서 빛이 빛의 파장의 약 1/10 이하의 미립자를 통과할 때 생기는 산란의 세기가 파장의 4제곱에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즉 태양 빛이 대기 중을 통과할 때 짧은 파장의 빛일수록 더 많이 산란되기 때문에 하늘이 푸른빛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푸른빛(파장의 길이 400 nm)의 산란율은 붉은빛(파장의 길이 640 nm)에 비해 약 6배 가량 크기 때문에 푸른빛이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같은 원리로 해질 무렵과 해뜰 무렵 하늘이 붉은 이유도 설명할 수 있다. 해질 무렵과 해뜰 무렵에 태양 빛은 더욱 먼 거리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푸른빛은 거의 다 산란되고, 지구에 직접 도달하는 빛은 붉은색이나 주황색을 띠게 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뉴턴의 초기 해석 

서양에서 하늘이 푸른 이유에 대한 설명은 이미 르네상스 시대부터 있어왔다. 르네상스 시대의 장인이자 예술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는 대기 중의 미세하고 혼탁한 물체에 의해 대기 중에 푸른빛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현대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리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이런 설명 이상의 더 자세한 이론적인 논의는 전개하지 않았다.

1672년 경 뉴턴(Isaac Newton, 1642- 1727)은 그의 광학에 대한 글에서 하늘이 푸른 이유는 물방울 같이 투명한 물질로 이루어진 얇은 막에서 빛이 반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즉 필름이 얇을 때는 검은 색으로 나타나다가, 두꺼워지면서 점점 푸른색을 띠게 되고, 계속 흰색, 노란색, 붉은색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뉴턴은 하늘에서 나타나는 푸른색을 자신의 소위 "뉴턴의 고리" (Newton's Ring)에 중앙에 생기는 검은 점에서 가장 가까운 푸른빛이라는 뜻에서 "첫번째 푸른색"(the blue of the first order)이라고 불렀다. 

람베르트의 법칙과 괴테의 색깔이론 

18세기를 거치는 동안 푸른 하늘에 대한 설명과는 별도로 몇몇 과학자들에 의해서 빛이 대기 중에서 흡수되는 비율에 대한 정량적인 연구가 행해졌다. 1729년의 프랑스의 과학자 피에르 부게르(Pierre Bouguer, 1698-1758)는 그의 {광학론} (Essai d'optique sur la gradation de la lumire)에서 균일한 투명 매질 속을 투과하는 빛의 세기는 매질의 경로 길이에 지수함수적으로 감소한다는 것을 밝혔다. 이와는 독립적으로 1760년 스위스-독일 과학자인 람베르트(Johann Heinrich Lambert, 1728-1777)는 광도계(photometry)를 비롯한 몇몇 실험 장치를 이용해서 부게르의 결과와 같은 결론을 얻었다. 이후 사람들은 빛이 대기 중에서 강도가 지수함수적으로 감소하는 것을 '람베르트 법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하늘의 푸른 이유를 빛의 굴절과 반사에 의해 설명하려는 뉴턴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지만, 독일에서는 수학적이고 이론적인 뉴턴의 생각에 대한 낭만적 반발도 나타났다. 뉴턴의 색깔 이론에 반발을 들었던 독일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의 색깔이론(Farbenlehre)을 들 수 있다. 괴테는 하늘의 색을 근원현상(Urphnomen)으로 해석했는데, 그는 이 근원 현상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현저한 혼동을 불러일으켜서 하늘에 보이는 푸른색이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클라우지우스의 대기 상층부 기포설 

19세기 중반 뉴턴의 입장을 받아들여 뉴턴의 설명에 대한 엄밀한 수학적 분석을 했던 사람은 루돌프 클라우지우스(Rudolf Clausius, 1847-1853)였다.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으로 유명한 그는 젊었을 때 하늘이 푸른 이유와 황혼 현상, 그리고 대기 중에서의 빛의 산란 및 흡수에 대한 수학적이고 이론적인 설명을 전개했다. 그가 이와 같은 일을 했었다는 것은 과학계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1847년부터 클라우지우스는 대기 중을 통과하면서 반사된 빛의 세기와 대기 중에서의 빛의 산란에 대한 일련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초창기 논문에서도 훗날 열에 관한 그의 논문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은 분명한 연구 스타일이 나타나고 있다. 그는 분명한 물리적 사실들을 선택한 뒤 미시적 모형을 이용해서 현상에 적합한 수학적 방정식을 전개했다. 클라우지우스는 푸른 하늘을 비롯한 대기의 굴절과 반사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기본적으로는 뉴턴의 입장을 따랐지만, 하늘이 푸른 이유가 구형의 물방울에 의해 빛이 반사되어 생긴다고 하는 뉴턴과 존 허셜(John Herschel, 1792-1871)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했다. 아주 엄밀하고 긴 수학적 취급을 한 뒤 클라우지우스는 뉴턴과 허셜의 주장과는 달리 하늘이 푸른 이유는 대기 상층부에 안쪽에 공기가 가득 차 있는 빈 물방울 기포가 존재하고 이것에 반사되어 푸른빛을 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클라우지우스 이론에 대한 반론 

클라우지우스의 주장대로 대기 상층부에 기포가 존재할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해 몇몇 영국 과학자들은 기상학적인 관찰과 실험을 통해서 클라우지우스의 견해를 반론을 제기했다. 우선 영국의 포브스(James David Forbes, 1809-1868)는 하늘이 푸른 이유는 가스 상태와 액체 상태 사이의 아주 '특별한' 상태에 의해 나타난다고 주장했었다. 1853년 영국의 필립스(Reuben Phillips)는 1844년의 헨리의 실험과 1846년 월러(Augustus Waller)의 관찰을 근거로 클라우지우스의 주장에 들어있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1844년 헨리는 미국철학회에서 공기가 들어 있는 비누 방울에 대한 실험에 대해서 발표했는데, 당시 그는 자신의 실험을 통해서 비누 방울의 두께가 일정할 경우 내부 공기에 대한 압축력은 지름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확인했었다. 이를 근거로 필립스는 지름이 아주 작은 물방울의 압축력은 대기압의 약 2-3 배가 되기 때문에 내부의 공기를 밀어내고, 이에 따라 대기 기포가 생성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클라우지우스가 주장하는 대기 상층부의 물방울 기포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1846년 영국 켄싱턴(Kensington)에서 활동하던 월러는 자신이 현미경을 통해 관찰한 다양한 물방울의 모습에 대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현미경을 가지고 수증기, 농무(fog), 구름, 연무(mist), 우박 등에 기상현상에 대해서 정밀한 관찰을 했는데, 그의 실험에서도 수증기의 기포 구조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 월러의 관찰 결과에 따라 필립스는 대기 상층부에 기포가 존재한다는 클라우지우스의 주장은 신빙성이 희박하다고 주장했다. 

브뤼케의 카멜레온과 푸른 하늘 

1850년대부터 굴절과 반사에 의해 하늘이 푸른 현상을 설명하려는 뉴턴과 클라우지우스의 주장과는 다른 새로운 주장이 나타났다. 그것은 미립자 산란에 의해서 하늘이 푸른 이유를 설명하려는 것이었다. 1853년 독일의 에른스트 브뤼케(Ernst Wilhelm von Brcke, 1819-1892)는 카멜레온의 색 변화에 대한 연구로부터 혼탁한 매질 속의 밝은 색소에서 산란되는 빛이 카멜레온의 색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런 현상을 하늘이 푸른 이유를 설명하는 데 활용했다. 원래 그는 동물 생리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 현상을 발견했지만, 물리학 분야의 독자를 의식해서 동물생리학 학술 잡지가 아닌 물리학 잡지에 이 발견 사실을 출간했다. 브뤼케의 주장과 필립스의 반론이 나온 뒤 클라우지우스는 이들 주장에 자신의 종합적인 의견을 개진한 뒤, 이후 그는 대기 상층부의 기포의 존재를 가정해서 푸른 하늘을 설명하려는 자신의 논의를 중단하게 된다.

한편 브뤼케는 독일의 유명한 생리학자 요하네스 뮐러(Johannes Mller, 1801-1858)의 제자였다. 요하네스 뮐러는 1833년 베를린 대학에 자리잡은 뒤 그곳에서 생리학, 해부학, 동물 분류, 병리학 등의 연구 전통을 세운 학자였다. 브뤼케는 베를린 대학에서 헤르만 헬름홀츠(Hermann Helmholtz, 1821-1894), 뒤 부아-레몽(Emil Du Bois-Reymond, 1818- 1896), 카를 루트비히(Carl Ludwig, 1816- 1895) 등과 친교를 맺었는데, 그들은 유기체를 물리화학적으로 이해하려는 기계론적 생각을 가지고 연구를 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연구 프로그램에서 눈은 아주 좋은 연구 소재였다. 브뤼케는 광학 매질, 잔상, 척추동물 눈의 배경으로부터의 빛의 반사와 같은 주제를 연구해서 1847년 [인간 눈의 해부학적 기술]이라는 인간의 눈에 대한 표준적 저작을 남기기도 했다.

브뤼케의 영향을 받아 헤르만 헬름홀츠도 1851년부터 눈과 생리광학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1856년부터 {생리광학 편람} (Handbuch der physiologishcen Optik)이라는 방대한 저작을 집필한 그는 사람이 눈이 푸른 까닭은 눈 속의 부유 입자들의 작용 때문이라는 주장을 내어놓았다. 실제로 서양의 어린아이의 눈은 어른에 비해 훨씬 강한 푸른빛을 띠게 되는데, 어린아이는 아직 황색에서 짙은 갈색에 이르는 멜라닌 색소가 완전히 형성되지 않아 검은 배경의 눈 속에서 푸른빛만이 보이기 때문이다. 

틴들 효과와 푸른 하늘 

오늘날에도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으로 대기중의 미립자에 의한 빛의 산란 현상으로 하늘이 푸른 까닭을 설명하려는 구체적인 실험은 1868년 영국의 존 틴들(John Tyndall, 1820-1893)에 의해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틴들은 과학 분야의 연구는 물론 과학 교육 및 강연 활동과 같은 과학 대중화에도 많은 공헌을 한 과학자였다. 1853년 틴들은 런던의 왕립연구소 자연철학 교수가 되었는데, 이곳에서 왕립연구소의 책임자인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와 함께 연구하게 되었다. 특히 그는 패러데이의 뒤를 이어 1867년부터 1885년까지 왕립연구소의 책임자로 일하면서 이곳에서 대중을 상대로 과학 실험과 강연을 하는 등 과학 연구 및 과학 대중화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

당시 틴들은 몇몇 유기 물질에 강한 빛을 쪼일 때 푸른빛이 발생하는 것에 주목했다. 특히 그는 부틸질산염(butyl nitrite)에 약간의 염산을 혼합한 기체의 경우 이런 현상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남을 확인했다. 이 부틸질산염 증기는 약간의 염산과 혼합될 때 태양이나 강한 전기 아크등에 의해서 쪼여지면서 화학적 분해 작용을 일으키고 구름을 형성시키는데, 1-2분 뒤 이 구름들은 푸른빛을 발산시킨다. 틴들은 이 때 나오는 푸른빛은 이탈리아의 푸른 하늘과 견줄 만하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틴들은 이 유기 물질을 투과한 푸른빛이 완전 편광된 빛임을 확인했는데, 이것은 태양 빛이 완전 편광이라는 당시의 관찰 결과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이론에 의하면 태양 빛이 완전 편광되는 것은 브루스터 법칙(Brewster's law)에 의해서만 설명이 되었다. 1811년 스코틀랜드의 브루스터(David Brewster, 1781-1868)는 빛이 굴절 표면을 어떤 각도, 즉 편광 각도로 입사하면 반사된 빛은 완전 편광됨을 발견했다. 더 나아가 그는 이 편광 각도의 탄젠트가 접촉하고 있는 두 매질 사이의 굴절률의 비와 같다는 수학적 관계도 도출했다. 틴들은 자신의 실험에서 빛이 완전 편광된 것은 브루스터 법칙에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즉 태양 빛이 완전 편광인 것은 굴절과 반사에 의해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틴들은 자신이 행한 다양한 실험을 통해서 역사상 최초로 분명한 형태로 하늘이 푸른 현상을 실험실 상에서 재현하는 데 성공했고,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대기중의 미립자에 의해 빛이 산란되는 현상을 '틴들 효과'(The Tyndall effect)라고 부르게 되었다. 강한 아크등 불을 먼지 입자에 쪼일 때, 빛이 산란되는 것을 연구한 뒤 틴들은 공기 중에 떠 있는 유기 물질을 파괴하기 위해 열을 사용하게 되었다. 열로 유기체를 파괴하는 실험 장치를 사용한 것이 계기가 되어 틴들은 1870년 이후 생명체의 자연발생설에 반대하면서 파스퇴르의 입장을 지지하게 된다. 

레일리와 푸른 하늘에 대한 이론적 설명 

틴들의 실험 결과가 발표된 직후 곧바로 하늘이 푸른 이유에 대한 이론적 설명이 존 스트럿에 의해 제안되었다. 1871년 존 스트럿은 틴들 효과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인 설명을 제시했다. 이 논문에서 존 스트럿은 빛의 산란의 세기가 파장의 4제곱에 반비례함을 수학적으로 증명하여, 하늘이 푸른 이유를 성공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뉴턴과 클라우지우스 이론은 푸른 하늘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의 대열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존 스트럿이 하늘이 푸른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은 현재 우리가 하는 설명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그는 현재의 우리처럼 맥스웰의 전자기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자신의 설명을 전개한 것이 아니라, 19세기에 전자기학을 설명할 때 많이 통용되던 고체의 탄성 이론을 이용해서 이 현상을 설명했던 것이다. 1881년 이제는 제 3대 레일리가 된 존 스트럿은 맥스웰의 전자기학을 수용해서 자신이 고체 탄성 이론에 의해 전개했던 이론을 맥스웰의 전자기학으로 대체했다.

1890년 덴마크의 물리학자 로렌츠(Ludvig Valentin Lorenz, 1829-1891)는 구형 입자에 의한 빛의 산란에 대한 논문을 덴마크어로 발표했다. 로렌츠도 단일한 구형 입자에 의해 산란된 빛의 세기가 파장의 4제곱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증명했으며, 1899년 레일리가 유도한 대기 중에서의 빛의 투과도도 계산했다. 하지만 그는 영국의 레일리나 네덜란드의 로렌츠(Hendrik Antoon Lorentz, 1853-1928)와 거의 접촉을 하지 않았으며, 레일리도 덴마크의 로렌츠의 산란 이론을 모른 채로 1899년의 산란 이론을 전개했다. 

후기 레일리 이론 

초기의 레일리 설명에 의하면 빛이 푸른 이유는 대기중의 먼지와 같은 작은 부유 물질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즉 초기 레일리의 설명에는 부유 물질이 없으면 대기는 푸른빛을 띠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암묵적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부유 물질이 없는 청명한 하늘도 푸를 것인가? 이에 대한 이론적 설명은 역시 레일리에 의해 주어졌다. 1899년 레일리는 먼지, 수증기 등 부유 물질이 없어도 산소와 질소의 대기 분자들에 의한 산란에 의해서도 하늘이 푸른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주장을 내어놓았다. 즉 레일리의 후기 이론에 의하면 아주 깨끗하고 맑은 대기도 빛의 산란에 의해서 푸른 하늘을 나타낼 수 있게 된다. 더욱이 레일리의 후기 이론은 초기 이론과는 달리 현대적인 맥스웰의 전자기학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레일리는 자신의 후기 산란 이론에서 부유 물질이 없는 공기 분자들만으로 대기의 투명도를 설명하는 데 충분한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1906년 이후 부유 물질이 없는 대기 중에서도 푸른 하늘을 나타낼 수 있다는 레일리가 후기에 주장한 내용을 입증하는 몇몇 관측 자료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선 1906-7년 미국 스미스니언 연구소는 워싱턴과 윌슨 산에서 다양한 파장에 걸쳐서 대기의 투명도에 대해 관측했다. 결국 과학자들은 해수면뿐만이 아니라 아주 높은 고도에서 측정한 관측을 통해서 부유 물질이 없을 때도 레일리 산란 이론에서 유도되는 이론적 예측이 유효함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푸른 하늘의 실험실 상의 재현 

푸른 하늘을 실험실 상에서 재현하는 것은 빅토리아 시대에 만연했던 모방 실험(Mimetic experimentation)의 전통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과학자들은 기상학과 광학에서 자연 현상을 모방하고 재현하는 실험을 많이 행했다. 기상학에서의 모방 실험이란, 예를 들어 먼지, 구름, 안개, 비, 천둥 번개 등을 실제로 실험실에서 재현하는 것으로, 소립자의 궤적을 추적하는 데 유용하게 쓰이는 윌슨(Charles Thomson Rees Wilson, 1869-1959)의 구름 상자(cloud chamber)도 이런 전통에서 나온 것이었다. 윌슨의 구름 상자는 1911년이 되어서야 개발됐지만, 윌슨의 이 연구는 이미 1890년대에 이루어진 그의 기상학 분야에서의 모방 실험의 결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푸른 하늘을 실험실에서 재현하고자 하는 실험은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 프랑스의 카바네(J. Cabannes), 폴란드의 마리안 스몰루초프스키(Marian Smoluchowski, 1872 -1917), 그리고 존 스트럿(John William Strutt)의 아들이며 아버지가 죽은 1919년부터 제4대 레일리가 되는 로버트 스트럿(Robert John Strutt, 1875-1947)에 의해 체계적으로 실시되었다. 1870년대에 틴들도 실험실에서 푸른 하늘을 재현했지만, 그의 실험은 미세한 부유 물질이 존재해서 하늘이 푸르다는 것을 재현한 것이었다. 부유 물질이 존재하지 않은 공기에서도 산소와 질소 분자에 의한 산란에 의해서도 하늘이 푸른 것을 실험실 상에서 재현하는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와서야 분명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1915년 카바네는 사진 광도계 방법을 사용해서 레일리의 식을 정량적으로 입증하려고 시도해서 레일리 식에 해당하는 몇몇 결과를 얻었다. 1916년에는 스몰루초프스키 역시 푸른 하늘에 관한 레일리 이론을 확증하는 몇몇 실험 결과를 얻었다. 미세한 부유 물질이 없는 순수한 공기에 빛이 투과해서 푸른색을 나타낸다는 것을 실험실에서 가장 확실하게 재현한 사람은 로버트 스트럿이었다. 로버트 스트럿은 진공관 내의 기체 방전의 잔광(afterglow), 밤하늘에 나타나는 야광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학자였다. 이런 연구와 연관해서 스트럿은 1918년부터 푸른 하늘을 복원하는 일련의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우선 그는 항공기의 움직임을 추적하기 위해 사용하는 탐조등 빛에서 아주 청명한 밤과 지상에서 높은 고도에서도 빔의 궤적에 따라 매우 여리지만 분명한 푸른빛의 산란 현상이 나타나는 것에 주목했다. 틴들의 실험에서는 먼지가 없는 공기에서 빛이 산란하는 것을 관찰할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먼지가 없는 공기에서는 강력한 빔의 궤적이 아주 어두워지기 때문이었다. 이런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로버트 스트럿은 용기 벽에서 빛이 퍼져나가는 것을 최대한 막고, 가능하면 가장 어두운 배경에서 공기를 통과한 빛을 관찰하도록 만들었다. 맑은 날의 조도는 보름달의 밝기에 비해 약 550,000배가 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따라서 로버트 스트럿은 약 5 마일로 추정되는 대기의 높이의 550,000분의 1에 해당하는 0.58 인치 두께로 실험실의 공기 층을 축소시키고, 조도를 보름달의 밝기로 유지해 실험을 했다. 이런 일련의 실험 조건을 만족시킨 뒤 마침내 스트럿은 먼지가 없는 공기로 가득 찬 실험실 내에서 푸른 하늘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스트럿은 이어 계속된 실험에서 빛의 산란도 조사했는데, 공기를 통과하고 나온 빛이 완전 편광에서 약간 벗어나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완전 편광에서 벗어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산소나 질소 분자가 완전히 구형이 아니라 방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1920년대 초에 이르러 과학자들이 하늘이 푸른 현상을 실험실에서 완전히 재현할 수 있게 되면서, 하늘이 푸른 이유가 레일리 산란에 설명된다고 믿게 되었다. 결국 푸른 하늘에 대한 과학적 설명 및 실험실 상에서의 재현은 레일리 부자의 대를 이은 연구를 통해 이룩된 업적이었다. 
 

참 고 문 헌

[1] John Tyndall, Philsophical Magazine 37, 384-394 (1869).
[2] J. W. Strutt, Philsophical Magazine 41,107-120; 274-279 (1870).
[3] Lord Rayleigh, Philsophical Magazine 47, 375-384 (1899).
[4] R. J. Strutt,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 A 94, 453-459 (1918). 

다음 이야기는 윌슨과 구름상자

 

임경순 교수는 독일 함부르크 대학 과학사 박사로서, 한국브리태니커 과학 담당 책임연구원, 미국 버클리 대학 박사후연구원을 역임하였으며, 한국과학사학회 논문상, 한국과학기술도서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포항공대 교양학부 과학사 교수(물리학과 및 환경공학부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gsim@postech.ac.kr)

그 동안 연재되었던 노벨상이야기를 끝내고 이번호부터 포항공대 임경순 회원이 집필하는 물리학의 선구자가 장기간 연재됩니다. 회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목차

  1. 레일레이와 푸른 하늘
  2. 윌슨과 구름상자
  3. 톰슨과 전자의 발견
  4. 뢴트겐과 X-선 발견
  5. 아인스타인과 특수 상대성 이론
  6. 밀리칸과 유적실험
  7. 아인슈타인과 일반 상대성 이론
  8. 러더퍼드와 핵 물리학
  9. 닐스 보어와 고전 양자론
  10. 막스 보른과 현대 물리학
  11. 막스 플랑크와 흑체 복사 이론
  12. 아인슈타인과 광양자 가설
  13. 파울리와 배타원리
  14. 하이젠베르크와 양자 역학
  15. 양자 역학의 형성과 학문적 스타일의 문제
  16. 에르빈 슈뢰딩거의 파동 역학
  17. 맥스웰과 전자기학
  18. 볼츠만과 통계역학
  19. 오토 한과 핵분열의 발견
  20. 가모브와 대폭발 이론
  21. 뉴턴과 고전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