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개항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아주 부분적으로 서구과학을 접했다. 중국을 왕래하는 사신들과 역관들을 통해 서양의 문물과 지식이 전해졌으며, 홍대용, 최한기 등은 이런 지식을 바탕으로 자연학 지식을 소개하기도 했다. 1876년 개항 이후 1880년대를 통해 조선은 서구 열강에 대해 계속 개항과 통상협정을 맺으면서 서구 문물을 직접적으로 접촉하게 되었다. 또한 중국에서 번역된 서양의 서적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서양 지식이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1880년대 많은 과학기술 서적이 유포되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지식 보급에 영향을 미쳤다. 우선 <박물신편>(博物新編)은 영국인 선교의(宣敎醫) 홉슨(Benjamin Hobson, 1810-1873)이 지은 것으로 1854년 상해에서 출판되었다. 이 책의 제1집에는 기상, 물리, 화학의 기초가, 제2집에는 천문학이, 제3집에는 동식물에 관한 것이 모아져 있다. 중국에서 활약한 선교사 마린(William Marin, 1827-1916)이 지은 <격물입문>(格物入門)은 물리, 화학, 천문, 기상에 대한 기초지식을 문답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이 책들은 개화정책을 추진하려 했던 사람들이 추천했던 책이다(박성래, 1982, p. 192-3).
  1883년 덕원부(德源府, 당시 원산은 덕원부의 작은 포구였음)의 개화파 관리들과 지방유지들이 중심이 되어 원산학사(元山學舍)라는 한국 최초의 근대적 학교를 설립했다. 이 학교에는 덕원 근방의 어리고 총민한 자제를 받아들여 가르쳤고, 문예반과 무예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당시 교과과정으로는 문무반 공통으로 산수, 격치(格致), 기기, 농업, 양잠 등 실용적인 과목이 있었다. 당시의 교과서 가운데 과학기술과 관련된 책으로는 <기기도설>(奇器圖說), <농정신편> (農政新編) 등이 있었다. 격치(格致)란 〈대학〉의 8조목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에서 가장 철학적인 조목인 격물치지(格物致知)에서 나온 말로서 신유학적 전통에서 자연학을 추구하는 한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격치학이 오늘날 물리학과 같은 개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자연을 탐구한다는 의미에서 최소한의 연결을 맺을 수 있다. 따라서 이 학교에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최초의 교육을 했다고 할 수 있다.


   

 

 

 

 

 

 

 



1883년설립된한국최초의 근대적학교 원산학사에서는 산수, 격치, 기기 등의 과목을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