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와의 통상조약이 확산되면서 서구 열강은 앞 다퉈 선교사들을 조선에 파견하기 시작했고 이들 선교사들을 통해서 근대적인 과학지식이 보급되었다. 미국 북장로교 선교의사로서 1884년 9월에 입국한 알렌(Horace N. Allen, 1858-1932)은 국립 병원의 설립을 정부에 제의하여 교섭한 끝에 1885년 4월 홍영식(洪英植, 1855-1884)의 옛집에다 병원을 설립함으로써 광혜원(廣惠院)이란 이름의 국립병원이 문을 열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근대적인 병원의 효시로서 의료뿐만 아니라 현대 의학과 기술을 가르쳐 제반 문물제도를 혁신하고 과학화하려고 했다. 알렌은 한국인 몇명에게 근대 서양의학을 가르치면서 그 교과목에 물리학과 화학을 포함시켰다. 이어 1885년 4월에 입국한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1859-1916)는 한국에 도착하여 3일 만에 알렌이 개설한 광혜원에서 화학과 물리학을 가르쳤다.
  1885년 6월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1858-1902)가 세운 배재학당(培材學堂)에서도 처음에는 중학 수준의 천문학과 생리학을 가르치다가 1890년부터는 수준 높은 천문, 생리, 물리, 화학 등을 가르쳤다고 한다. 또 1886년에 설립된 관립 육영공원(育英公院)에서도 양반 자제 및 관리들을 교육시켰는데, 여기서는 영문으로 된 자연과학책과 수학책을 써서 자연과학과 수학을 영어와 연관시켜 가르쳤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전문적인 수준의 근대 과학기술교육이 시작된 것은 광무개혁 기간인 1899년 관립상공학교 관제가 반포되는 것을 기점으로 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를 전후해서 한국인들이 일본에서 전문학교 수준의 과학기술 교육을 받고 돌아오기 시작했으며, 1900년에는 광무학교(鑛務學校)도 세워지게 된다. 관립상공학교는 1904년 관립농상공학교로 개편되었다가, 마침내 1906년 관립공업전습소로 개편되어 근대 초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과학기술 교육기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관립공업전습소에서는 직물업, 제지업, 요업 등의 농촌 재래 수공업품의 제조법을 중점적으로 교육했다.
  1907년 서우학회(西友學會)는 교육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교사 양성이 시급하다고 생각하고 1907년 서우사범학교라는 속성사범과 야학교를 설립했다. 여기서는 역사, 산술과 아울러 물리학도 가르쳤다. 기호학회는 1908년 기호학교(畿湖學校)를 만들고 여기서 물리, 화학, 박물, 산술 등을 가르쳤다. 이 학교는 유길준(兪吉濬; 1856-1914)이 설립한 융희학교와 통합하여 중앙학교라 하였는데, 오늘의 중앙중고등학교의 전신이다.


   

 

 

1885년 4월 홍영식의 옛집에 우리나라 근대적 병원의 효시인 광혜원 문을 열었다. 그곳에서 가르친 근대 서양 의학 교과목에 물리학과 화학을 포함시켰다.

 

 


광무개혁 기간인 1899년 관립 상공학교 관재가 반포됨으로서 근대 과학기술교육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