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자제들이 다니는 육영공원이나 선교사들이 세운 배재학당(培材學堂) 등 교회 계통의 학교, 또 원산에 한국 최초로 세워진 근대식 학교였던 원산학사(元山學舍) 등에서 신식교육이 시작되었다. 이 신식교육에서는 이과(理科), 또는 격치학(格致學), 화학, 물리 등의 교과목 이름으로 과학이 가르쳐지기는 하였으나, 국민전체에 개방된 국민교육으로서의 교육이 시작된 것은 1895년 새 학제가 생겨 한성사범학교(漢城師範學校) 관제(官制) 및 소학교령(小學校令)이 공포된 이후의 이야기이다.
  1895년 청일전쟁의 승리로 크게 국위를 높인 일본은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시키면서 우리나라에 친일내각을 구성하고, 그해 12월에는 소위 갑오경장(甲午更張)이라는 내정개혁을 강행시켰다. 여기에는 학제개혁도 중요 개혁 사항이었다.
  새로운 내각은 1895년 5월과 7월에 각각 교사 양성을 위한 한성사범학교와 국민교육을 위한 소학교(小學校)를 세웠다. 사범학교는 2년제이고, 과학 과목으로서 물리·화학·박물을 가르쳤고, 소학교에서는 심상과(尋常科, 4년제)의 경우 과학이 없었고 고급학년인 고등과(高等科, 2년제)에만 “이과”(理科)란 이름으로 과학이 들어 있는데, 이것이 아마도 우리나라 역사상으로는 최초의 공식학제에 의한 과학교육이었다고 생각된다. 또, 그후 1899년에 제정된 중학교 관제에 의해 설립된 중학교에서는 심상과 3년, 고등과 4년에서 물리·화학·박물 등을 가르쳤다.
  이 학제는 그후 을사보호조약(1905)이라는 굴욕적인 불평등 조약을 내세워 진출해온 일본 통감부의 강요에 의해 1906년 개정되었다. 새 학제에서는 소학교란 명칭을 보통학교로 고치고 수업 연한도 5년에서 4년으로 줄이고, 중학교(中學校)도 고등보통학교(高等普通學校)로 명칭을 높이면서 수업 연한은 7년에서 4년으로 낮추었다. 수업 연한의 단축으로 과학 과목의 내용도 줄일 수밖에 없게 되자, 고등학교에서의 물리와 화학을 단독과목으로 가르칠 시간이 없어 물리 및 화학이라는 단일과목으로 통합하게 되어 겨우 싹트려 하던 과학교육에 찬물을 끼얹게 되었다.
  1895년 학제는 일본의 학제를 거의 그대로 본따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 교과목이나 내용이 당시의 일본과 흡사하였다. 학부령 제3호로 1895년 8월 15일에 포고된 소학교교칙대강(小學校敎則大綱)1 내의 규정들은 그 당시 일본의 소학교규칙대강(小學校規則大綱)2과 그 내용이 같을 뿐만 아니라 어구는 거의 동일한 것을 그대로 쓰고 있다.
  또 교과서의 내용이나 교과목의 시간 배정 등은 당시의 일본 것을 거의 그대로 모방한 것이라 추정된다. 한 예로 융희(隆熙) 원년(元年, 1906) 9월 4일에 발간된 소학교용의 『간이물리교과서』(簡易物理敎科書)(崔在學 譯述, 朴晶東 校閱, 安峴書館)의 내용을 보면 당시의 일본 것을 거의 그대로 번역


한 듯하며, 그 교과서에 나오는 학술용어의 거의 대부분은 2002년 현재 우리나라 및 일본에서 사용되는 용어와 흡사하다. <표I-1>
  1895년 최초의 국민교육이 시작될 때까지 구한말에는 물리학(物理學)이라는 개념은 거의 없었을 것이므로, 이들 교과서에 나오는 물리 용어는 모두가 낯선 것들이었다고 생각된다. 또, 산술(算術)·이과(理科)·물리(物理)·화학(化學)·박물(博物)·생리(生理) 등의 용어도 당시 일본인이 사용한 것으로서 우리 용어와는 다르다. 구한말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물리학은 격치학(格致學), 격물학(格物學), 또는 궁리학(窮理學) 등으로 불렸다.

   

 

 

 

 

 

 

1895년 7월 국민교육을 위한 소학교를 세웠고 사범학교의 고급학년인 2년제 고등과에서 이과란 이름으로 과학을 가르쳤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공식학제에 의한 과학교육이었다.

 

 

 


1 「舊韓國官報」 제 138호 개국 504년 8월 15일 목요일 內閣記錄局官報課

2 日本科學社學會 刊 『日本科學技術史大系』 9권 「敎育」2 p.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