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물리학 분야의 고급 인력은 <표I-8>에서 보는 바와 같이 최규남(미국 미시간대, 1933), 박철재(교토제대, 1940) 등 박사 2명과 여러 제국대학 물리학과 출신인 도상록(도쿄제대, 1930), 권녕대(홋카이도제대, 1933), 전평수(도쿄물리학교, 1942; 이화학연구소 연구원), 신건희(申健熙: 교토제대, 1933), 한인석(韓仁錫: 연희전문 수물과, 1932; 도호쿠제대, 1938; 독일 베를린대학 수학, 이화여전 교수, 연희전문 교수, 경성대 교수), 문제근(文悌根: 연희전문 수물과, 1942; 토호쿠제대, 1945), 정근(경성제대, 1943), 방성희(경성제대, 1943), 김종철(경성제대, 1944), 이임학(경성제대, 1944: 수학 전공) 등 10여명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물리학 박사는 1928년 인디애나대학에서 최대전류 조건에서의 삼극진공관에 관한 연구로 물리학 박사를 받은 조응천이었지만, 해방 후에는 물리학 분야에서 거의 활동을 하지 않고 주로 전자공학 분야에서 일했다. 해방 직후에 대학을 졸업한 사람으로는 한건하(韓建河: 경성제대, 1945.9), 손원록(孫元祿, 교토제대, 1945.9), 이용태(경성제대, 1945.9), 이흥국(경성제대, 1945.9), 지창열(池彰烈, 나고야대, 1946) 등이 있었다. 대학 졸업자 이외에도 1929년 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를 나와 대구사범학교에서 재직하고 있던 손계술(孫癸述)과 1935년부터



1944년 사이에 일본 도쿄물리학교를 나와 귀국하여 활동하던 최종인(崔鍾仁: 개성송도중 재직), 한준택(韓俊澤: 경북공립중 재직), 천광현(千光鉉: 경성대 조수:), 노판우(盧鈑愚: 청주공립중 재직), 강신후(姜信厚: 황해도 광공과 재직), 이범삼(李範森: 전주사범 재직), 조순기(趙順基: 성신대학 재직), 박흥수(朴興秀: 소림광업 경성제련소 재직), 김선규(金璿圭: 경성전기학교 재직) 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