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경북대학교가 설립인가되면서 물리학과는 창설되었고, 이듬해인 1952년 4월 구 대구대학 이과계열 학생의 일부를 흡수하여 학과에 편입시키고, 신입생을 모집하면서 구 본부 가교사에 물리실험실을 처음으로 설치함으로써 오늘을 향한 역사적 제일보를 내딛기 시작하였다.
  당시 교수진은 라병욱(羅炳旭)이 학과 창설과 함께 부임하였고, 이어서 4월에 조병하(趙炳夏), 진영선, 11월에 강영호(姜榮浩)가 부임하였다. 박동수(朴東秀)는 1953년 서울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육군 장교복(대구 육군본부 근무) 차림으로 경북대학교 문리과대학 물리학과 창립에 참여하였다. 1954년에는 최초로 경북대 물리학과 졸업생 1명을 배출하였고, 물리학과의 대학원과정도 1953년에 설치인가되고, 1957년에 처음으로 물리학 석사 1명을 배출하여 초창기의 갖가지 애로를 극복하면서 학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교수진도 계속 보강되어 1953년에 홍한식(洪翰植)이 부임하고, 1955년에는 정기호(鄭基鎬)가 사범대학으로부터 물리학과로 전임하고, 1956년에 김병찬(金炳贊), 1959년에는 박동수가 부임하였다. 이 기간 중 구과학관이 신축되면서 물리학과는 구과학관으로 이전하였으며, 당시 부족하던 물리실험기구를 UNKRA의 원조를 얻어 일부 보충함으로써 일반물리학 실험을 거의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경북대 물리학과는 1950년대의 창설기를 거쳐 1960년대에는 안정기를 모색하던 중 약간의 파란을 겪게 되었다. 1960년 3월 물리학과는 이론물리전공과 전기물리전공으로 분리되었고, 다시 이듬해인 1961년 4월에는 물리학전공과 전기공학전공으로 재개편되었다. 12월에는 “국립대학정비기준령”에 따라 물리학과에 설치되어 있던 전기공학전공이 발전적으로 분리되어 공과대학의 모체로서의 기틀이 마련되면서 단일전공인 오늘날의 물리학과로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그동안 제1과학관(당시 신과학관으로 명명: 현재 물리학과가 사용중인 건물)의 신축과 함께 1963년에 구과학관으로부터 이전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파란 속에서도 물리학과는 계속 성장을 거듭하여 1963년에는 최초로 이학박사 1명을 배출하였고, 한국물리학회를 개최하였으며, 1964년에는 박봉열, 이상수, 조순탁을 서울에서 초빙하여 여름학교 규모에 해당하는 장기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1969년에는 노벨상 수상자인 베테를 초빙하여 특별강연회도 개최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우(T. Y. Wu, 吳大猷), 짐만(J. Zimann)을 초빙하여 특별강의를 실시하여 물리학과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였다.
  이 기간 중에는 이우일(李宇一), 배진호(裵晋鎬), 손기수(孫基洙), 이상윤(李相潤), 주창근(朱昌謹)이 부임하는 한편 이 학과에서 근무하던 진영선, 정기호, 김병찬, 조병하가 이임하였고, 이우일은 경북대학에 공과대학이 설치되면서 전자공학과로 전출하였다. 이 기간에 물리학과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의 허드슨(Gilbert Hudson)을 초빙하였다. 허드슨은 근 10년간 경북대학교 물리학과의 발전과 인재 양성을 위해 헌신적으로 공헌했다. 물리학과 대학원 과정이 이론물리학전공, 실험물리학전공, 응용물리학전공으로 분리되어 오늘의 체제를 갖추게 된 것도 이 기간이었으며, 이에 맞춰 교수진의 연구활동도 전문분야를 확립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론물리학 분야에 홍한식, 주창근, 고체물리학 분야에 박동수, 손기수, 응용물리학 분야에 라병욱, 이상윤, 방사선물리학 분야에 강영호가 활약하여 한국물리학회에 발표된 논문만 해도 20여편에 육박하는 등 선진 학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강영호가 국제원자력기구의 방사능 오염도의 국제적 현황조사 연구계획의 일환을 담당하여 “한국식품의 방사능 오염준위 결정에 관한 연구”를 수차에 걸쳐 수행하였고, 그 결과를 국제원자력기구가 주최하는 아시아 태평양지구 방사선 방어에 관한 연구협의회에서 2회에 걸쳐 발표하였다. 1973년 주창근은 당시 이론물리학계의 새로운 문제로 대두되어 10여년을 끌어온 초광속입자의 존재여부에 대한 논의를 매듭짓는 논문으로서 “Soluble Tachyon Field Model and the Equivalent Theorem”을 미국물리학회지인 Physical Review D에 발표하여 초광속입자의 본성이 허립자라는 것을 밝혔다. 손기수는 미국 텍사스대학에서 “Cu 박막의 에너지 밴드”에 관한 연 4편의 논문을 그곳의 교수들과 공동으로 Physical Review B에 발표하였으며, 표면물리학의 이론을 한국물리학회에서 처음으로 발표하여 표면물리학의 국내 보급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1975년에는 고체물리학 실험을 전공한 이의완(李義完)이 조교로 부임하여 고체물리학 실험분야가 더욱 강화되었다.
  1976년도에는 세계은행 차관에 의해 약 20만달러에 해당하는 교육 및 연구용 기자재가 도입되어 명실상부한 물리학과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또, 1979년도부터 정부의 기초과학육성정책의 일환으로 경북대학교 부설 물리·화학연구소가 설립되어 물리 및 화학 분야 교수들이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 1981년에 최상돈(崔尙惇, 통계물리이론), 1982년 황인헌(黃寅憲, 양자전자물리실험)이 부임하였고, 1985년 홍한식의 정년퇴임, 손동철(孫東哲, 고에너지물리)의 부임, 1989년 강희동(姜熙東, 핵물리실험)의 부임으로 학과의 교수진이 11명이 되면서 어떤 전공분야에서도 연구 수행에 지장이 없는 교수진이 이루어졌다. 전공분야도 입자물리, 핵물리, 고체물리, 광 및 플라스마 전공으로 재편성되었고, 교수들의 연구활동도 국제적으로 넓혀졌다.
  박막물리팀에서는 Cr-Cu/p-Si형 태양전지의 제작 및 특성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여 박막형 태양전지 개발에 국내에서 선구적 역할을 담당하였고, 방사선 물리팀에서는 여기매질에 입사된 고에너지입자에 의한 제동복사와 체렌코프복사이론에 관한 연구를 하였다. 특히 IAEA에서 연구비를 지급받아 극동지역의 환경방사능 연구에 기초자료를 제공했다. 표면물리팀에서는 1979년 8월에 일본 동경에서 개최된 제27차 International Field Emission Microscopy Symposium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여 AES for FIM에 관한 연구논문을 발표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완전 국산화한 원자현미경을 제작하여 금속표면 및 계면의 연구에 선구적 역할을 담당했다. 1981년도 문리과대학이 인문사회과학대학과 자연과학대학으로 개편되면서 물리학과는 자연과학대학에 소속되어 명실공히 기초과학연구의 기틀을 담당했다.
  이 기간 동안에 홍한식은 43년간의 교직생활을 마치고 1985년 정년퇴임을 하였고, 37년간 봉직한 경북대학교 창설 멤버인 라병욱의 화갑(華甲)기념 논문집을 물리학과에서 봉정하였으며, 강영호는 1985년 2월부터 1986년 2월까지 일본 고에너지연구소에서 인공위성내의 우주선의 영향조사를 끝마치고 귀국했으며, 1985년 8월에 박동수와 이상윤은 일본 도쿄대학 물리학과 표면물리연구소 및 물성연구소에서 표면물리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다. 박막물리팀에서는 기초과학연구비를 수혜받아 Zn확산법으로 만든 GaAs발광다이오드 제작과 Ⅲ-Ⅴ족 및 Ⅱ-Ⅵ족 화합물 반도체로 EL소자를 제작하여 발표했고 평판디스플레이에 관한 논문을 많이 발표했다. 표면물리팀에서는 물질표면 및 계면현상에 관한 많은 연구 논문을 발표했으며, 이의완은 뉴욕주립대에서 연구를 수행했고, 손동철은 1985년부터 일본 고에너지연구소에서의 양전자-전자 가속기인 TRISTAN에서의 AMY실험을 기점으로 국내 고에너지물리실험활동을 시작하였다. 특히 1990년도에는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사무엘 팅을 초청하여 특별강연회를 개최했다.
  물리학과 교수들의 특별한 노력의 결과로 1992년도 대학교육협의회가 주관하여 전국대학을 상대로 실시한 학과평가에서 물리학과가 학부 및 대학원 평가에서 모두 “우수” 판정을 받았다. 또한 정부의 기초과학육성정책에 발맞춰 이 분야에 있어 국제적 경쟁력을 지닌 연구중심대학으로의 도약과 정착을 위한 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기간 중 황인헌이 이임하고, 이론물리학의 조상규(曺尙圭, 입자물리), 이형락(李亨洛, 응집물리), 안창현(安昌炫, 입자물리)과 실험물리전공의 이일수(李一洙, 응집물리), 최희동(崔熙東, 핵물리, 전직), 김동희(金東熙, 입자물리), 김우영(金宇榮, 핵물리)이 부임했으며, 박환배(朴煥培, 입자물리)가 가장 최근에 부임하였다. 이 시기에 라병욱과 박동수는 퇴직하여 명예교수로 추대되었으며, 강영호는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1996학년도 신입생부터 자연과학대학에서는 수리과학부 물리학과·화학과, 생명과학부 지질학과를 통합하여 기초과학부로 모집하게 되었다. 정부의 세계화와 수요자 중심의 교육개혁방안에 능동적인 자세로서 대학원중심 대학으로의 전환을 모색하여,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한양대, 포항공대, 경북대, 부산대 등 7개 대학이 대학원중심 대학으로 선정되었다. 또한 기초과학분야의 특성화를 위하여 물리학분야에서는 물질의 궁극적인 구조인 쿼크와 렙톤간의 근원적인 상호작용인 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 입자물리와 핵물리, 물질표면에서의 흡착과 반응, 초전도현상, 분수양자화이론과 분수양자홀효과, 탄소나노튜브에 대한 이론과 실험 및 다양한 응용가능성을 지닌 응집물리를 포함한 1차원, 2차원에서의 다체계현상 및 임계현상에 대한 연구와 다체계문제의 기본적인 접근방법에 대한 해석과 응용을 연구하는 고체물리, 또한 원자구조와 분자구조 내지 비결정인 구조를 가진 물질의 광학적 성질규명 및 고온의 플라스마 상태에 대한 이해를 높이며 고온에서 에너지 활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핵융합형 플라스마 상태를 연구하는 광 및 플라스마물리의 4개 전공 영역을 중심으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물리화학연구소에서 확장개편된 기초과학 연구소를 포함하여 2000년도 과학기술부 지정 우수연구센터(SRC)로 선정되어 운영되고 있는 고에너지물리연구소(소장: 손동철)와 방사선과학연구소(소장: 강희동)와 광학기용신소재연구소(소장: 이일수) 등 각종 연구소가 활성화되어 현재 물리학 연구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고에너지물리연구소는 1998년 12월 12일 고에너지과학연구소로 설립되어 한국과학재단의 우수연구센터 선정작업을 거쳐 2000년 7월 과학기술부 지정 우수연구센터(SRC)인 고에너지물리연구센터로 선정되었으며, 이에 따라 명칭을 변경하였다. 연구소는 고에너지 분야에서는 국내 유일한 우수연구센터이며, 국내 최고의 연구진을 총망라하여 구성되어 있다. 연구소는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기본입자의 성질과 이들간의 상호작용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를 수행하여 물질의 궁극적 구조와 우주의 진화에 대한 이해 증진을 목표로 한다.
  방사선과학연구소는 국내 원자력발전소(월성, 울진) 주변의 방사선 환경을 매년 평가하여 원전 주변의 방사능 오염에 대한 국내 데이터 자료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여 필요한 기관에 공급하고 있다. 또한 국내 방사선 전공자들의 수준향상을 위하여 최근 10년 동안 방사능 측정 및 분석에 관한 전문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광학기용신소재연구소(초미세 광소재연구소로 개칭중)는 지역 광산업에 관련된 연구 및 정보제공을 목적으로 1998년 설립되었다. 연구소에서는 코팅기술부, 금속합금부, 초미세 자성입자연구부, 광설계 기술부가 있으며, 초경질 박막, 유전체코팅, 나노자성입자연구, 광설계에 대한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지역 광산업(LCD 업계)과의 연계 연구와 관련업계의 애로사항 해결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2002년 현재 물리학과에는 13명의 전임교수와 고에너지물리연구소의 김귀년(金貴年), 조기현 등의 초빙교수 브레인풀과 박사후연구원으로 초빙된 연구원들과 함께 각 연구실에서는 100여명의 석·박사과정생들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또한 물리학과는 현재 운영중인 입자물리, 핵물리, 고체물리, 광 및 플라스마물리의 4개 전공 분야 외에도 화학물리학, 생물물리학, 의학물리학, 지구물리학, 천체물리학 및 환경물리학 전공도 개설하여 세계화에 걸맞는 학과를 만들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물리학과 창립 초기의 주역이었던 라병욱은 여명기에 한국물리학회의 부회장과 대구·경북지부의 지부장을 역임하면서 이 학과의 초석을 다지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라병욱은 처음에 통계물리 이론을 전공하였으나 그 당시 국내에서는 연구비라는 것을 상상도 하기 힘들었던 1966년 영국의 브리티시재단으로부터 지원받아 런던에 있는 퀸메리대학에서 1년간 연수과정을 지내면서 고체물리 실험을 전공하였다. 귀국 후 태양에너지를 연구하면서 그와 관련된 반도체물리학과 박막물리학 분야의 연구를 시작했다. 그후 1990년 정년퇴임을 할 때까지 반도체물리학과 박막물리학 분야에서 수많은 연구 결과를 논문과 강연을 통해서 발표하였으며 후학지도를 위해서 교육에 전념하였다.
  또한 창립초기부터 큰 역할을 담당하였던 박동수는 1960년대 초기 5·16 연구비, 동아일보 연구비, 미국 벨전화연구소의 지원으로 PbS, PbTe, PbSnTe 고감도 적외선 감지기를 개발 제작하여 IR분야에 기여하였다. 중파장 IR원인 CO2 레이저의 제작, III - V 족 화합물 반도체 InSb 단결정 성장에 성공하였고, 진공단색화장치(Vacuum Monochromator)를 고안 제작하여 진공 UV 영역에서의 빛전자분광법(Photoelectronic Spectroscopy)의 도구를 제공하였고, 1974년에는 표면과학, 오제전자분광법(Auger Electron Spectroscopy, AES)과 초고진공 기술을 한국에 최초로 도입하였다. 1980년대에 박동수는 UHV 기술을 향상시키고, FIM(Field Ion Microscope) 한국 1호기를 제작하여 W, Mo, Nb, 반도체, 비정질 합금의 원자구조, 표면확산, 표면석출의 체계적인 연구를 가능케 했다. FIM은 표면원자를 직접 관찰할 수 있는 도구로서, 오늘날의 STM, FED의 기본이다. 박동수는 FIM 기술확산에 진력했으며, 1980년대 중반부터 반도체 표면의 폭넓은 분석을 위하여 새로운 다목적 RHEED 장치개발에 전념한 결과, RHEED-PARK Model을 실현시켰다. 1991년 박동수는 사단법인 한국진공학회를 창설하여, 국내의 물리학, 화학, 전자공학, 금속기계공학, 식품공학 등 전문 학문분야간의 결집, 대학 - 연구소 - 산업체간의 유대와 협동의 큰 기틀을 마련하여 우리나라 진공과학 기술의 발전과 산업을 위하여 확고한 기반을 구축하였다. 숙원이던 국산 이온펌프, Gate Valve, Gasket 등 핵심 진공장치를 개발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진공기술학교를 열어서 그간 200명 이상의 기술 자격자를 양성하였다. 진공학회를 국제 진공과학 기술응용연맹의 이사학회로 가입시켰으며, 한·미, 한·중, 한·일간의 기술 및 정보 교류를 실시하고, 지난 수년간 200명 이상의 진공관련 학자와 기술자간의 교류를 성사시켰다.
  1991년에 정년퇴임을 한 후 박동수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객원교수로 Zr based Nano-phase 5 elements Bulk Metallic Glass(Viteroloy)의 연구에 참여하였다. Viteroloy는 아모르포우스 물질로서 제작법이 획기적이고, 큰 덩어리를 만들 수 있는 세계 유일한 합금유리이다. 1999년부터는 광섬유 표면에 코팅하는 합금술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여 광통신 재료를 발명하였다. 광섬유 표면 코팅 재료인 저융점, 고흡착, 가용접, 고신장성 In-Sn-Ag 3원합금을 개발, 생산하여 광주과학기술원에서 광섬유 연구에 현재 사용되고 있다. In-Sn-Ag 합금은 세계 최초의 3원소 광섬유 코팅 금속으로 현재 인증되고 있다.
  박동수는 물리학 입문 반세기 동안 교육과 연구에 몰두해오면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하고,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전세계 16개 유수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초청강연을 했고, 40개소가 넘는 선진국가의 대학, 연구기관, 산업체를 방문하여 그 첨단지식을 한국과학기술의 발전에 접목하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해왔다. 1978년에는 라병욱과 함께 기초과학연구소를 개설했고, 1989년경부터는 과학기술처 기초과학진흥법 제정 준비위원을 지냈으며, 과학재단 산하의 기초과학지원센터의 창설에 참여하였다. 현재 그는 한국물리학회를 포함한 국내외 6개 학회의 회원 및 임원, 국가 진공기술기획 자문위원장, 포항가속기연구소 자문위원장, 연세대와 부산대의 SRC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참고문헌]
[1] 경북대학교 50년사, 박동수 교수 송수기념 논문집, 물리학과 교수 인터뷰.



경북대학교 물리학과는 1951년 경북대학교 설립과 함께 창설되어 1953년 대학원과정 신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