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전문학교는 일제 말기에 경성공업경영전문학교로 변경되기도 하였지만, 해방이 되면서 장기원 등에 의하여 1945년 9월에 접수되고 우선 전문학교를 시작하기로 하고 11월에 개교하였다. 당시 수물과는 이원철과 최규남 등에 의해서 접수되었다.
  1946년 7월에 연희전문학교에는 문학원, 상학원, 신학원, 이학원의 네 학원(學院)이 있었으며, 연희전문학교는 1946년 8월 15일 연희대학교라는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었다. 당시 이학원(理學院) 속에는 수학과, 물리기상학과, 화학과의 3개 학과가 있었다. 물리기상학과는 1950년부터 물리학과로 변경되었다. 초대 이학원장으로 이원철이 내정되었지만 중앙관상대장으로 취임하여 겸임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대신 장기원(張起元, 1903-1966)이 취임하였다.
  수학자인 장기원은 평안북도 선천 신성중학교를 나와 1921년 연희전문학교 수물과에 입학했다. 1925년 졸업과 함께 모교 교수로 근무하다가 곧 일본으로 건너가 1929년 도호쿠대학 이학부 수학과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이화여전 전임교수가 되었다. 1939년 연희전문 교수로 자리를 옮긴 후 모교에 계속 남아 1945년 연희전문 이학부장, 1963년 연세대학교 이공대학장 겸 부총장 등을 맡아보면서 모교의 발전에 기여했다. 또한 1952년 대한수학회 부회장을 거쳐 1962년 대한수학회 회장, 1966년 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이사가 되어 한국의 과학과 수학교육 발전에도 큰 공헌을 했다.
  초기 연희대학교 물리학과는 한인석, 문제근, 김창수(金昌壽: 연희전문 수물과, 1942; 교토제대 전기과, 1945)가 교수로 있었다. 1948년 연희대학교 물리학과에는 윤세원과 김희규(金熙圭)가 전임강사로 합세하였는데, 다음해 김희규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으로 가고, 윤세원만이 1950년 6월 육이오전쟁이 나기까지 물리학과에 남아있었다.
  1950년에 화학공학과와 전기공학과가 증설되면서 이공대학이 발족되었다. 이공과대학이라는 명칭이 거명되기도 하였지만 이공대학의 이름으로 낙찰되었다. 1950년 대학원이 설치되었고, 한국동란으로 첫 대학원 졸업생이 나온 것은 1953년이었다. 1회 대학원 졸업생은 이공 분야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이었다.







연희대학교 물리학과는 1945년 9월 이원철,최규남 등에 의해 접수되어 1946년 8월 종합대학 승격과 함께 물리기상학과가 되었고, 1950년 물리학과로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