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임이사장체제의 도입
「새물리」 창간
국내 학자의 해외 저널논문의 출간
지부의 창립
PSSC 물리 번역출간
분과의 창립
해외 석학의 방문
「새물리」의 발전과 영문학술지 JKPS의 창간
국제적 활동의 시작
회원의 증가
학회 재정 규모의 증가 및 학회 기금조성위원회 활동
물리학용어심의위원회의 발족
과학기술 전담 정부기관인 과학기술처의 발족
한국과학기술연구소의 설립
한국과학원의 설립
재미과학기술자 협회의 창설
한국물리학회 미주지부의 설립
1770년대 재미 한국인 물리학자의 현황
1770년대의 한국물리학회

 
  1960년 10월 14일 동국대학교 강당에서 제6회 정기총회가 열렸다. 이 총회에서 그동안 물리학회를 이끌어오던 최규남이 물러나고 대신 부회장이었던 권녕대가 새로운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동안 회장과 부회장으로 물리학회 발전에 기여했던 최규남, 박철재는 1962년 10월 23일 경희대학교에서 열린 한국물리학회 창립 10주년 기념식전에서 명예회원으로 추대되었다. 제 6회 총회에서 선임된 임원진은 다음과 같다.

회장 권녕대 부회장 손계술 조순탁
총무간사 윤세원 편집간사 김철수
재무간사 박흥수 시업간사 이철주
감사 양연기 김상돈    

  권녕대는 1960년 10월부터 제 2대 한국물리학회 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1970년 4월까지 10년간 연임하면서 물리학회를 국내유수의 학회로 육성하였으며, 뒤이어 한준택(70. 4. 17-71. 4. 23), 지창렬(71. 4. 23-72. 4. 28), 조순탁(72. 4. 28-74. 4. 26) 등이 한국물리학회를 계속 육성시켜 왔다. 이들의 노력으로 1961년부터 1974년 사이에 한국물리학회는 1,300명이 넘는 회원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2개의 상설 위원회(물리학용어심의위원회, 편집위원회)와 3개의 특별위원회(물리학교육연구위원회, 기금조성위원회, 포상위원회), 6개의 분과회(입자물리학, 고체물리학, 물리교육, 원자핵물리학, 열 및 통계물리학, 응용물리학)와 6개의 지부(경북, 전남, 부산-경남, 충청, 전북, 미주)를 두게 될 정도로 성장하였다. 또한 61년에 물리학회 기관지인 「새물리」를 68년에는 영문판인 Journal of the Korean Physical Society (JKPS :국내 최초의 이공계 久文 학술지)를 발간하기 시작함으로써 한국물리학회는 확고한 학회로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한국원자력연구소(KAERI:1959년 2월설립, 초대소장 박철재)는 그 설립 이래 1961년까지 100여 명의 물리학자들이 국비로 유학을 보냈다. 또 1966년 2월에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66년 2월설립), 67년 4월에 과학기술처, 71년 2월에 한국과학원(KAIS) 등의 물리학과 관련된 기관들이 설립되어 한국물리학회가 성장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또한 한국의 물리학 발전과 물리학회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하여 국내외로 저명한 한국인 과학자인 이태규, 조순탁, 김성운, 김영배, 김영욱, 유성윤, 이기억 등과 외국 물리학자들을 초빙하여 학회 특별강연을 실시하였으며, 특히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호프스태터(R. Hofstadter:’67.9.17-9.22 방한), 한스 베테(A. Hans Bethe:’69.10.19-10.24 방한), 에사키(L. Esaki:’73.3.21-3.23 방한) 등을 초청하여 강연회를 실시하였다. 이런 외국 석학들의 방한은 젊은 학생들에게 큰 자극을 주어 한국물리학의 도약기를 가져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국물리학회의 기구는 1952년의 창립 당시부터 1955년까지는 회장 1인, 부회장 1인과 총무, 편집, 재무, 사업업무를 위해 8인의 위원을 두고 상임위원회를 통해서 업무가 계획 수행되도록 하였다. 1955-1959년 동안에는 회장 1인, 부회장 1인을 2인으로 증원하였다. 감사 3인을 신설하고, 총무, 편집, 재무, 사업업무를 위해 각각 2인의 위원을 두고 상임위원회를 통해서 업무가 계획 수행되도록 하였다.
  그뒤 1959년부터 1966년까지는 회장 1인, 부회장 2인, 감사 2인, 총무, 편집, 재무, 사업업무를 위해 각각 1인의 간사를 두어, 간사회를 통해 업무를 계획 수행해 왔다. 1966년부터는 간사회를 상임이사회로 바꾸고, 1967년부터는 학술지발간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편집위원장과 섭외간사를 두어 학회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체제로 바꾸었다. 1967-1968년의 기간 동안의 초대 편집위원장은 김정흠, 초대 섭외간사는 김근희(金根熙)였다.

1962년 10월23일 학회창림 10주년 기념식전에서 최규남, 박철재를 명예회장으로 추대하였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호프스태터, 한스베테, 에사키 등의 초청강연은 젊은 학생들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