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물리학회는 창립 이후 회장 중심체제로 운영되어 왔다. 1959년 6월 고려대학교 총회에서 평의원회와 간사회가 도입되어 학회의 활성화를 도모한 이후에도 학회는 회장 중심의 운영 체제를 유지하였다. 1969년 한국물리학회는 부회장을 3인으로 늘리고, 상임이사장 1인을 두어 학회 운영을 상임이사장 중심체제로 변화시켰다.
  상임이사장 체제의 출현에 따라 회장 1인 중심 운영체제에서 집단 운영체제로 학회의 운영방식이 변화하였다. 초대 상임이사장에는 본래 양인기를 선임하였으나 취임을 고사했기 때문에 윤세원이 맡게 되었다. 윤세원은 1969년 5월부터 1970년 4월까지 이 직책을 수행했다. 이렇게 해서 학회 창립 17년 만에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기구가 형성되었으며, 1975년에는 한국물리학회가 사단법인으로 개편될 수 있는 기본적인 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권녕대

  성봉(性峯) 권녕대(權寧大, 1908―1985)는 1908년 6월 28일 경기도 개풍군에서 권태원(權泰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26년 3월 지금의 경기고등학교의 전신인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도쿄에서 그해 창립된 나리끼(成城)고등학교에 들어가 1930년 3월에 졸업하였다. 1933년 홋카이도(北海道)제국대학 물리학과의 제1회 졸업생이 된 그는 일제하에서의 여의치 못한 시대를 고향인 개성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1934년 4월 개성에 구원(久遠) 광학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1938년 4월 송도중학교 교원이 된 그는 1945년 9월 개성중학교 교장이 되었다.
  1945년 12월 경성공업전문학교 교수로 임명된 그는 1947년 9월 경성공업전문학교를 비롯한 여러 학교가 경성제대의 후신인 경성대학과 하나로 결합하여 서울대학교로 새롭게 출범하게 되자 문리과대학 물리학과 부교수로 승진했고, 이듬해인 1948년 7월에는 정교수, 9월에는 자연과학부장, 다음해 10월에는 문리과대학 이학부장을 역임했다.
  1952년 12월 7일 피난수도 부산에서 결성된 한국물리학회는 1955년경부터 재건에 들어가 권녕대도 부회장으로서 또 다른 부회장인 박철재와 더불어 회장인 최규남을 보필하여 물리학회의 육성에 힘썼다. 1957년 물리학 분야 학술원 회원으로 선임되었다. 권녕대는 1960년 한국물리학회 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1970년까지 만 10년간 연임하면서 물리학회를 국내 유수의 학회로 육성하였다. 1973년 8월 서울대학교 은퇴 후에는 명예교수로 활약했으며 그는 수백명의 박사와 수천명의 학사를 졸업시켰다. 물리학 분야 이외에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원자력위원회, IUGG한국위원회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
  1967년 과학기술상 본상, 1973년 3.1문화상 본상, 1984년 학술원상(공로상)을 수상했으며 1982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받았다.



1969년부터 학회는 회장준심체제에서 상임이사장 중심체제로 운영되었다.










성봉 권녕대
(1908~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