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차 정기총회를 통해 평의원회와 간사회를 둠으로써 학회를 활성화시킨 물리학회는 1959 - 1960년까지 2년에 걸쳐 학술잡지를 창간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창간 후 논문이 부족하여 제때에 발간되지 않으면 학술잡지가 아주 폐간될 것이라는 우려로 많은 논란을 거듭한 결과, 1960년 10월 14일 동국대학교에서 개최된 제6회 정기총회에서 학회지의 창간이 결정되었다. 이날 선임된 윤세원 총무간사와 김철수(金哲洙) 편집간사의 노력으로 1961년 6월 10일 드디어 한국물리학회지인 「새물리」를 창간하게 되었다. 창간호에는 학술논문의 게재가 없었고 대신 간사회를 거쳐 편집간사가 의뢰한 해설논문 6편 가운데 논문 심사위원회에서 채택된 5편의 논문이 실렸다.


「새물리」는 미국물리학회의 Physics Today와 일본물리학회의 「物理」를 모델로 삼은 것이었는데, 학술논문을 게재했다는 점에서 Physics Today와는 약간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초창기의 「새물리」편집은 위원회가 따로 없이 편집간사가 혼자서 학회지의 편집업무를 수행했다. 1965년 2월 16일 간사회에서 편집위원 2명과 간사 1인을 둠으로써 학술지 편집이 위원회 형식을 비로소 갖추기 시작했다. 「새물리」라는 학회기관지의 발간을 발판으로 발전의 궤도에 오른 물리학회는, 종전에는 총회에서 평균 4편 정도의 논문이 발표되었지만, 1962년에는 일거에 20여편의 학술강연과 연구논문이 발표되었다.
「새물리」에는 해설논문 및 연구논문 15편이 게재되었다. 또 이때부터 총회도 임시총회를 포함 연 2회씩 열리게 되었다. 총회 참석 인원도 100명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1964년 5월 30일 서강대학교에서 열린 제10회 정기총회에는 154명이 참석하였으며, 10월 30일 전남대학교에서 열린 지방 추계임시총회에도 92명이 참석하였다.







1961년 6월10일 한국 물리학회 학회지인「새물리」가 창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