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물리」는 1961년 5편의 논문으로 발간되기 시작한 이래 비교적 착실한 성장을 거듭하였다. 1967년에는 학계에서 촉망을 받았으며 당시 브라운대학 물리학과에 재직하던 진영선(秦榮善, 1927 - 1967)의 갑작스런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 증보판이 출판되었다.
  1967년 6월 24일 당시 39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진영선은 브라운대학의 부교수(9월 승진 내정)로서 당시 세계의 석학들로부터 주목을 받던 젊은 물리학자였다. 그는 경성대학 예과를 거쳐 서울대 문리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잠시 경북대 교수로 있다가 유학, 1955년 스위스 취리히의 연방공과대학에서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 밑에서 공부했고, 1961년에는 독일 함부르크대학에서 분산이론(Dispersion Theory)으로 이학박사를 받았다. 그후 유럽공동원자핵연구소(CERN)의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1962년에는 1년 동안 독일 카를스루헤 공과대학에서 연구했다. 1963년 9월에는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원에서 오펜하이머, 양(C.N. Yang), 다이슨(F. J. Dyson) 등 세계적인 석학들과 함께 연구를 했다. 2년 뒤 그는 오펜하이머의 추천으로 브라운대학 교수가 되어 창의적인 활동을 막 시작하려던 차에 대동맥 파열로 세상을 떠났다. 진영선 추모 증보호에서는 펠드먼(D. Feldman), 다이슨(F. J. Dyson), 조스트(R. Jost), 이휘소(B. W. Lee, 李輝昭), 김정욱(C. W. Kim, 金正旭), 강경식(K. Kang, 姜慶植) 등 세계적인 학자들이 다수 원고를 보내왔다.
  이리하여 1967년에 발행된 「새물리」제 7권에는 논문 20편과 해설 14편을 포함한 총 34편의 논문이 게재되는 발전을 이루었다. 연구 논문수가 증가하면서 편집위원회에서는 「새물리」이외에 새롭게 영문 학술지를 분리, 발간할 것을 추진하였다. 1967년 10월 27일 열린 제 15회 정기총회에서 학술지를 해설 중심의 「새물리」와 새로운 영문학술지로 분리하여 발간하기로 결정하였다.

  1968년 3월 학회 및 학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순 영문학회지인 JKPS(Journal of the Korean Physical Society)가 창간되었다. 창간호에는 논문 7편이 수록되었는데, 편집위원장은 김정흠이었다. 그해 10월에 발간된 제1권 2호에는 논문 11편이 수록되었다. 본래 JKPS의 발간 이후에는 「새물리」는 순수 해설지로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새물리」는 완전히 해설지로 전환되지 않았고 원래의 방식대로 논문과 해설을 함께하여 출간되었다. 「새물리」제8권 1호에는 논문 2편과 해설 4편이 출판되었으며, 이어서 출판된 제2호에는 논문 6편과 해설 및 일반기사 7편이 게재되었다. 하지만 JKPS는 본래의 계획대로 영문으로 된 순수 연구 논문지로 창간되었다. 영문학술지의 발간으로 비로소 우리나라 학자들의 업적도 세계에 알려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1968년 3월 영문학술지인 JKPS가 창간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