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물리학회 창립 당시의 회원수는 34명이었으나, 10년 뒤인 1962년에는 신입회원 60명을 포함하여 236명으로 약 7배로 회원이 늘었다. 「새물리」와 영문학회지인 JKPS가 창간되고 지부 및 분과회가 형성되면서 물리학회 회원수가 급증했다. 학회의 회원수는 1961년에 100명대를 넘어섰으며, 1965년 9월 18일 동국대학교에서 열린 제2차 평의원회에서는 회원 500명 돌파 운동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 500번째 회원에게 기념품을 주기로 결정했다. 당시까지 총 회원수는 정회원수 465명, 명예회원 2명이었다. 마침내 1965년 10월 29일 부산대학교에서 열린 임시총회가 개최될 때에는 회원수는 523명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날 열린 제3차 평의원회에서 경북지부의 송명재는 제500번째 회원으로 결정되어 다음날 총회에서 금성사에서 기증한 8석 라디오를 기념품으로 받았다. 회원의 수가 증가하면서 학회는 1962년부터 한국물리학회의 회원임을 증명하는 유효기간 1년의 회원증을 발행하기도 했으나 곧 이 제도는 중지되었다.

  1968년에는 한국물리학회 회원이 820명까지 증가했으며, 1962년부터 10년이 지난 1972년에는 1000명을 넘어 해당연도 신입회원 92명을 포함하여 총 1193명으로 1962년에 비해 약 5배 정도 늘어났다. 이것은 창립 당시에 비하면 35배나 증가한 셈이다. 더욱이 1974년의 회원수는 총 1300명으로 1961년부터 1974년까지 지속적으로 회원이 증가했다. (부록 <표 3-4>참조)
  1961년부터 평의원제를 도입한 한국물리학회는 처음 29명의 평의원으로 시작하였으며, 1962 - 1965년 사이의 4년 동안은 학회에 가입한 기관별 대표회원을 평의원으로 인정하였다가, 1966년부터 비로소 현재의 평의회원제로 정착되었다. 이때의 평의회원 수가 71명이었으며, 1966년 5월 28일 사우어(R. G. Sauer), 프린스(C.E. Prince), 허드슨등 3명은 최초의 외국인 평의회원이 되었다. 1966년 이후 평의회원 수는 매년 10여명씩 증가하여 1970년에는 123명, 1974년에는 총회원수의 14.5%인 176명에 이르렀다. 이로써 평의회에서 중요한 학회업무를 심도 깊게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 (부록 <표 3-5> 참조)


 

 

 

 

 

물리학회는 1965년 회원 500명을 돌파했다.













1972년 물리학회는 회원1000명을 돌파한다.

 


1966년 사우어, 프린스, 허드슨 3명은 최초의 외국인 평의회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