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에 10년 동안 한국물리학회를 이끌어오던 권녕대 회장이 물러나면서 물리학회에서도 회장이 오랫동안 연임하는 관행이 없어지고, 후속 세대의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였다. 1970년 한준택이 새로운 회장이 된 것을 필두로 해서 지창렬(1971-72), 조순탁(1972-74), 윤세원(1974-77)이 학회를 이끌어나갔다. 70년대에 들어와서도 학회는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였다.
  1970년부터 「새물리」는 연 4회 출간하는 계간지가 되었으며, 1971년 5월 28일에 학술지 편집위원회가 상임위원회로부터 독립하여 학술지의 수준을 높여갔다. 또한 학회 소식을 보다 신속하게 전하기 위해 1970년 6월 11일 학회의 News Letter가 발간되었다가 1972년 6월 27일 「새물리」 제12권 1호에 통합되었다.
  1972년 4월 28일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제2회 정기총회에서 조순탁이 물리학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그가 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원자핵물리학 분과, 열 및 통계 물리 분과, 응용물리 분과가 결성되었다.
  우선 1972년 4월에는 원자핵물리학 분과가 창립되었다. 원자핵물리학분과 결성을 위한 움직임은 김정흠, 김현창(金顯昌), 박봉렬, 성백능, 안세희, 이종완(, 이철주 등이 중심이 되어 1971년 여름경부터 시작되었다. 1971년 10월 초 원자핵물리학 및 입자물리학을 전공하는 김정흠이 원자핵물리학분과회 내규 초안을 작성한 뒤, 여러 회원들의 의견을 물어 수차의 수정을 가하였고, 1971년 10월 11일경 김정흠과 안세희가 모여 상기초안을 검토 수정하였다.
  1972년 4월 7일 원자핵 물리학 분과를 만들기 위한 준비위원회가 열려 고윤석(高允錫), 김정흠, 김현창, 남천우(南天祐), 문국진(文國珍), 박봉렬, 안세희, 이종완, 이철주 등이 참가하였다. 이리하여 1972년 4월 28-9일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제 24회 정기총회 기간 중인 4월 29일 원자핵물리학 분과 결성식이 거행되었다. 초대 원자핵물리학 분과 위원장은 안세희가 맡았다.
  초창기 준비위원회에서 제출한 분과 회원은 강영호, 고윤석, 김정흠, 김현창, 라병욱, 남천우, 노판우, 문국진, 박동수, 박혜일, 성백능, 안세희, 오희필, 이종완, 이철주, 정문규, 박봉렬(observer)이었으며, 나중에 김기용, 구상회, 최철규 등이 추가되었다. 원자핵분과위원회 규약은 1972년 5월 16일 열린 이사회에서 부분적으로 통과되었고, 인준 여부가 상임이사회에 일임되었다가 분과가 마침내 승인되었다.
  1973년 5월 26일에 열린 이사회에서는 열 및 통계물리 분과위원회와 응용물리 분과위원회의 결성이 원칙적으로 인준되었고, 상임이사회가 분과회칙과 학회 회칙 사이의 모순을 점검한 뒤에 마침내 승인되었다.
  1970년도 이전까지 한국 통계물리학의 연구활동은 조순탁을 중심으로 한 두세 명의 물리학자들에 의해 명맥이 유지되어 왔다.
  통계물리학의 집단이 구체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 봄 조순탁을 중심으로 한 통계물리학 연구 모임이 형성되면서부터였다. 1970년도에 한국에서 통계역학을 전공한 교수로는 조순탁, 강우형, 이구철, 최철규, 이경원 등이 있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해서 ‘통계 물리학 수요 세미나’라는 일종의 저널클럽 형식을 취한 연구모임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모임을 중심으로 1973년 열 및 통계물리학 분과가 한국물리학회의 제5분과로 탄생하였다. 열 및 통계물리 분과위원회는 1973년 4월 27일 제26회 정기총회 기간중 창립총회를 가졌으며, 초대 분과위원장은 조순탁이었다.
  응용물리학 분과는 이온선, 방사선, 플라스마, 계측제어, 광 및 양자전자공학, 음향학, 자성재료 등의 물성관계 물리학에서 생물물리학, 의료물리학에 이르기까지 그 응용 범위가 광범위한 분과였다. 응용물리학 분과는 1973년 4월 27일 제26회 정기총회 기간중 창립총회를 가졌으며, 초대 분과위원장은 이상수였다.

조순탁

  조순탁(趙淳卓, 1925-1996)은 1944년 9월 일본 제3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7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1회로 졸업하였으며, 1949년 7월 대학원에서 이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1958년 6월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고밀도 기체의 운동학적 이론”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때 그는 자신의 논문에서 울렌벡(George E. Uhlenbeck)과 함께 보골리우보프(N.N. Bogoliubov)의 생각을 발전시켜 희박한 기체에서 성립하는 볼츠만식을 더 밀도가 높은 기체까지 일반화시킨 조-울렉벡 방정식(Choh-Uhlenbeck equation)을 유도하였다. 이 방정식은 훗날 통계역학 분야에서 중요한 기본 방정식으로 남게 되었다. 대학원을 마친 1947년부터 1964년까지 그는 서울대학교 교수조무원으로 시작해서 교수를 역임했다. 그뒤 1964-74년 서강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1967년 미국 록펠러대학교 객원교수로 활동했다. 1972년 물리학회회장, 1974년 한국과학원장, 1976년 한국표준연구소 부이사장, 1977년 통신기술연구소 부이사장 등 여러 기관에서 활동하면서 물리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1981년 물리학분야 학술원 회원으로 선임되었고, 1983-90년 한양대학교 물리학과교수를 지냈다.
  조순탁은 한국물리학회를 창설하는 데 실무자로서 커다란 역할을 했으며 또 통계물리학회 월례모임을 주도하면서 한번도 모임에 빠지지 않고 제일먼저 참석하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이론분야를 전공했으면서도 실험 물리의 중요성을 강조해 학문이 진정으로 뿌리를 내리려면 이론과 실험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론에 치우쳐 있는 한국 물리학계에 새 바람을 일으키려 노력했다. 1950년대에 잡지에 발표한 ‘물리학자가 되는 길’은 물리학 지망생들의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했으며, 그가 미시간대학교 유학시절에 발표한 “조-울렌벡 방정식”은 고밀도 기체에서 발생하는 3중충돌현상을 포함시켜 기존의 볼츠만방정식을 수정보완한 획기적인 새로운 이론으로 수많은 교과서에 그의 이름과 함께 수록되었다. 저서로는 『일반역학』 『양자역학』 『고체물리』 『수리물리』 『통계물리』 『통계역학』 등이 있으며, 사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1997년 6월 5일-7일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 한국물리학회가 주최하는 조순탁박사 기념 국제학회, ‘통계물리학의 발전’이 열려 조순탁의 업적을 기렸다.


 

 

 

「새물리」는 1970년부터 계간지가 되어 연4회 출간된다.

 

 

 

 

 

 

 

 

 

 

 

 

 

 

 

 

 

 

 

 

 

 






조순탁(1925~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