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세계적 수준의 이론물리학 연구를 목표로 하는 주요 연구기관이 속속 설립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 1993년부터 추진되어 1997년 4월 재단법인으로 발족한 아태이론물리연구센터와 1996년 10월 세계적인 수준의 기초과학연구 수행을 목표로 한국과학기술원 홍릉 분원에서 출범한 고등과학원을 들 수 있다.

아시아태평양 이론물리센터(APCTP)*의 유치 및 설립

  APCTP는 1993년 2월에 열린 설악 겨울학교에서 센터 설립을 위한 국제추진실무위원 일부가 선임되고 일부 회원국의 실무위원 정원을 정한 후 해당 회원국에 그 선임을 의뢰하면서 설립이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이 실무위원회가 발전하여 국제추진위원회가 되었고 1994년 5월 서울에서 열린 센터설립국제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에 김제완(서울대)과 야마구치(도쿄대), 간사에 조용민(서울대)) 제1차 회의에서 한국을 센터의 유치국으로 추천하기로 만장일치로 합의하였다.
  APCTP 설립의 본격적인 추진은 한국과학재단 연구개발심의위원회 위원장(김제완)의 설득으로 한국과학재단(사무총장 박진호)은 “APCTP유치 타당성 조사”(연구책임자: 경희대 정복근)를 거쳐 재단 기금과실금 4억5000만원(1994년 5월)을 “APCTP 기반 조성사업”비로서 한국물리학회(회장 이충희)에 위탁하여 사업을 추진토록 하였다. 한국물리학회는 APCTP한국위원회(위원장 김제완, 간사 조용민)로 하여금 실제사업을 추진토록 하였다.
  1994년 7월 호주에서 열린 아태물리학회연합회(AAPPS) 이사회가 센터를 한국에 유치하도록 하자는 베트남의 권유안을 채택하였다. 같은 해 11월에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아과학협력협회(ASCA) 제 13차 회의에서 센터의 한국유치를 공식적으로 지지하였다. 아태이론물리센터의 추진과정에서 한국물리학회는 한국측 주관기관의 역할을 하였다.
  아태이론물리센터의 추진과정에서 한국물리학회는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센터설립 국제추진위원회로부터 아시아태평양 이론물리센터의 설립을 위한 국내 추진위원회와 자문위원회의 구성을 요구받은 물리학회는 1995년 1월 5일에 열린 한국물리학회 제 85회 이사회에서 물리학회장(회장 이충희)이 센터의 설립취지 및 추진경위를 설명하고 국내 추진위원회와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각 위원들을 아래와 같이 임명 승인하여 센터유치 설립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였다.

국내추진위원회:
위원장: 김제완(서울대), 사무총장: 조용민(서울대)
위   원: 정복근(경희대), 김진의(서울대), 이금휘(전북대), 김철구(연세대), 엄정인(고려대), 김병택(성균관대), 최덕인(과기원), 과학기술처, 과학재단, 외무부 각 1명, 학회 총무간사.

국내 자문위원회:
위원장: 이충희(물리학회장)
위   원: 권숙일(차기회장), 안세희(연세대), 이상수(과기원), 조순탁(학술원), 박봉열(학술원), 김정흠(고려대), 고윤석(서울대), 김영덕(서강대), 송희성(서울대), 강우형(고려대)

  1995년 9월에는 UNESCO물리실행위원회(PAC)가 센터설립 지지를 천명하였고, 1996년 2월에는 일본 고에너지연구소(KEK)에서 센터설립 발기인 대회가 열렸다. 이때 초대 소장에는 양(C. N. Yang), 행정담당 부소장에는 김제완, 학술담당 부소장에는 고바야시(KEK), 사무총장에는 조용민을 창립이사회에 추천토록 건의했다. 창립이사회의 이사진은 국제위원회에서 중국 3인, 일본 3인을 포함하고 한국측 이사는 한국위원회에 일임했다. 한국과학재단의 “기반조성사업비”의 후속 수단으로 과학기술부는 “1996년도 특정사업비” 항목에서 “국제기반조성사업”으로 APCTP예산 10억원을 확정하였다.
  APCTP의 재단 설립을 위한 창립준비이사회가 마침내 1996년 4월에 서울에서 열리고 초대이사장 겸 소장으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뉴욕주립대학의 양을 초빙하기로 결정하였다. 센터 개소식 및 설립기념 학회를 위하여 2억7천600만원을 사용할 수 있도록 아·태이론물리센터 국내추진위원장(서울대 김제완)을 사업책임자로, 한국과학기술원(원장 윤덕용)을 주관기관으로 지정하고 1996년 6월에 센터개소기념학회가 서울대 문화관과 워커힐 컨벤션홀에서 열렸다. 양, 그로스(D. Gross), 로플린(Laughlin) 등 저명학자 100여명이 참석하였고 그 내용이 국제학계에서 좋은 반응을 받았다.
  1996년 11월에 서울에서 열린 APEC 각료회의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센터를 한국에 유치할 의사가 있음을 밝히고 지원을 천명하였으며, 회원국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을 호소하였다. 1996년 12월에 드디어 센터가 과학기술부와 제1차 사업협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연구소업무를 시작하였다. 다음 해인 1997년 1월에 APCTP이사회가 결성되고 초대 이사장으로 양을 선임하였다. 센터가 하나의 공식적인 법인체로 태어난 것은 센터가 과학기술부로부터 재단법인 설립허가를 받아 재단법인등록을 마친 1997년 4월이다.
  센터의 창립당시 이사회는 이사장 양, 상임이사 김제완, 이사 아리마, 에사키, 야마구치, 리(Y. T. Lee), 저우(G. Z. Zhou), 최덕인 한국물리학회장, 박진호 과학재단 사무총장, 선우중호, 윤덕용, 윤세영 SBS 회장, 조용민 센터 사무총장(이상 외국인 이사 6명, 내국인 이사 7명)으로 구성되고, 감사로 다카이시(M. Takaishi) 일본 국립고에너지연구소 사무총장과 정복근이 선임되었다.
  한편 창립 당시 평위원회는 휴(N. V. Hieu), 첸(Jiaer Chen), 치아(S. P. Chia), 후지가와, 후쿠야마, 게(M. L. Ge), 하오(B. L. Hao), 고바야시, 리(S. C. Lee), 맥켈러(B. H. J. McKellar), 사야카니트(V. Sa-yakanit), 총(T. T. Tsong), 양가(D. M. Yanga), 푸아(K. K. Phua), 이금휘, 정복근으로 이루어진 16명의 평의원으로 구성되었다. 초대 센터 소장으로 양, 사무총장으로 조용민, 특별고문으로 고바야시와 김제완이 선임되었다.
  APCPT의 사업결과에 대한 평가는 한국물리학회에 의뢰하여 실시된 후 그 결과를 기초로 차기년도의 사업비를 과학재단으로부터 배정받아 운영되어 왔다.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2001년 3월에 APCPT의 제5차 이사회가 열렸다. 중요한 안건의 하나가 이사장과 소장 겸임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이사장과 소장을 분리하기로 결정하고 일본의 아리마를 제 2대 이사장으로 선임하고, 새 이사회가 구성되었으나 제 2대 소장을 끝내 선임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정관에 따라 2001년 3월 하순부터 사무총장인 정복근이 소장 대리직을 맡고 있다. 제 5차 이사회에서 내린 또 하나의 중요한 결정은 센터의 본부를 포항공대로 이전하기로 한 것이다. 이로써 센터는 2001년 8월에 고등과학원에서 철수하고 포항으로 이전하여 포항본부 시설과 강남분원의 서울분소 시설을 보유하게 되었고 조금이나마 연구공간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APCTP는 창립초기부터 국제 유수연구소들과 국제협력 연구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협력각서를 교환하였다. 1996년 6월에 이탈리아의 ICTP와, 1998년 10월에 캐나다의 CRM과, 1999년 12월에 대만의 NCST와, 2001년 7월에 캐나다의 PIMS와 협력계약을 체결하였다. 2001년 1월에는 UNESCO 자카르타 본부와 UNESCO지원학술사업을 체결하고 성공리에 사업을 마무리하였다. ICTP와 PIMS와는 센터설립후 매년 공동학술사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회원국과는 회원국 학술대회지원 방식으로 협력하고 있다. 2002년 7월 현재까지 11회의 공동학술사업과 24회의 회원국 학술대회를 수행하였다.


 

 

 

 

 

 

 

 

 


* APCTP:Asia Pacific Center for Theoretical Phys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