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후반은 1, 2차 오일쇼크의 강한 영향을 받아 미국, 소련, 유럽, 일본이 경쟁적으로 새로운 에너지원 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시작하였던 시기였다. 그 당시 플라스마 물리학분야의 국제적인 연구활동도 무한 에너지원으로 간주되고 있는 플라스마 핵융합 에너지원 개발에 모든 역량이 집중되었다. 또한 산업적으로는 반도체 산업의 발전으로 플라스마 프로세스가 반도체 제조공정에 서서히 도입되기 시작하던 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서울대, 한양대, 과기원, 경북대 등 몇몇 대학에서 플라스마 및 핵융합 강좌를 개설하고 주로 이론 위주의 강의 및 연구를 시작하였던 이 분야의 태동기였다고 볼 수 있다.
  한국물리학회 플라스마물리학분과회는 1981년 9월 당시 외국의 연구 열기가 반영되어, 국내외에서 이 분야를 연구하고 있었던 정문규(한국에너지연구소), 정기형(서울대), 홍상희(서울대), 최덕인(한국과학기술원), 이자현(미국 NASA), 김영기(미국 아르곤연구소) 여섯사람이 분과회 설립을 발기하였다. 곧 학회의 승인을 얻어 동년 10월 23일 제43회 추계 정기총회 때 분과회가 창립되었다. “국내에서도 시급히 이 분야의 연구를 활성화하고 플라스마 물리학 및 핵융합 연구에 종사하고 있는 회원간에 상호 긴밀하게 연구협의와 교류가 가능하고 선진제국과 정보교환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다”는 것이 분과회 설립 취지였다. 초대 분과 위원장에 정문규, 운영간사에 최덕인이 추대되었다.
  이듬해 4월 봄 학회 때 6편의 첫 분과회 논문발표가 있었으며, 그후 논문 발표 수는 플라스마 분야의 전공자 수가 점차 늘어남에 따라 증가하여 1980년 말까지 매 학회 총회시 10 - 20여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한편 이 시기의 대표적인 실험연구 프로그램으로는 서울대의 SNUT-79 토카막 장치 및 한국원자력연구소의 KT-1 토카막 장치의 건조를 들 수 있다. 이 두 프로그램은 당시 열악한 연구 환경 및 재원 조달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장치를 완성하는 데 10여년의 기간이 소요된 장기 프로그램이었다. 이들 프로그램을 통하여 플라스마 핵융합 분야의 국내 연구 기틀이 서서히 마련되었으며, 향후 이 분야에서 활약할 많은 연구인력을 배출해냈다. 또한 이 신생 분과회의 국내 학술교류 및 저변 확대를 꾀하고자 분과회 차원의 많은 노력이 기울여졌다. 예를 들면 1983년도부터 1991년도까지 해마다 여름철에 플라스마 물리학워크숍을 개최하여 꾸준히 저변을 넓혀 나간 것을 들 수 있다. 특히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포항공대, 아주대, 국민대, 외국어대, 동아대, 광운대, 숭실대, 경기대, 대구대, 제주대 등 여러 대학교에 속속 플라스마 물리학 관련 과목들이 개설되어 이 분야의 많은 고급 인력을 양성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와 국내에도 연구기반 및 인력이 상당히 갖추어지게 됨에 따라 학회 때 발표논문 편수도 50 - 60편으로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급증하는 논문편수를 소화하기 위하여 그동안 구두발표 일변도로 진행되던 논문발표 방식을 일대일로 대면하여 심층논의가 가능한 포스터발표 방식으로의 변화를 학회가 전체적으로 논의하고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이 분과회에서는 급증하는 논문편수를 함께 소화할 수 있기도 하여 1994년 가을학회부터 분과회 초청 논문을 제외한 모든 구두발표를 없애고 포스터발표만으로 분과회 논문 발표를 운영하여 오고 있다. 이것은 학회 전체에 포스터발표 방식이 확산되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또한 1992년도부터는 한국가속기 및 플라스마 연구협회(KAPRA)와 합동으로 매년 워크숍을 개최하여 가속기 및 핵융합분야의 학술 교류를 촉진하고 산업적인 저변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하여 오고 있다.
  이 시기에 분과와 관련한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는, 가속기 분야에서는 1987년도 포항공과대학에서 건설을 시작한 포항방사광가속기 사업을 들 수 있다. 이 사업은 당시로서 세계 최정상급인 제3세대 2.5GeV 대형 방사광가속기 연구시설을 건조하는 사업으로서 8년 동안 약 1339억원이 투입된 국가 대형프로젝트였다. 이 사업을 통해 가속기장치 및 방사광 이용분야의 국내 연구역량이 단기간 안에 거의 선진국 수준으로 확보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많은 우수한 연구인력을 양성하여 배출해내게 되었다. 이에 따라 분과 회원수도 100여명 이상으로 크게 늘어났다.
  한편 핵융합 플라스마분야에서는 국내의 부족한 연구시설의 확보를 위하여, 그 당시 해외에서 장치를 기증받아 이를 보강하여 설치하는 사업들이 이루어졌다. 기초과학지원연구소의 한빛 플라스마 발생장치 사업은 미국 MIT의 TARA 장치를, 한국과학기술원의 KAIST-Tokamak은 미국 텍사스대학의 PreText 장치를 인수받아 우리 실정에 맞게 성능을 개선한 사업이었다. 이 장치들은 플라스마 진단 및 가열 등 기초연구 및 인력 양성에 요긴하게 쓰이게 되었으며, 국내 학연간



의 학술 교류와 국외 연구자 및 기관들과의 교류의 터전을 마련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한편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는 KT-1의 후속사업으로 중형 토카막인 KT-2 건설을 목표로 설계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 시기부터 분과회를 주축으로 한 플라스마 분야의 국제학술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1994년 9월 제2회 아시아-태평양 플라스마 과학기술학술회의(’94 APCPST)를 대덕과학문화센터, 기초과학연구소, KAPRA와 공동으로 유치 개최하였다.
  1990년대 후반 분과회에는 플라스마, 핵융합 및 가속기 분야가 주 연구분야로 명실상부하게 구축되었으며 상당한 연구기반도 마련되었다. 또한 분과 회원수도 200여명에 이르게 되고, 매 학회 논문 발표도 120여편 이상으로 양적, 질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 또한 연구 테마도 과거의 기초연구를 넘어서 기술을 실제 산업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연구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 일례가 국내 반도체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에 일익을 담당한 플라스마 프로세싱 분야의 개척과 차세대 디스플레이 장치인 PDP(Plasma Display Panel) 개발에 분과 회원들이 크게 기여한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환경 및 산업분야 난제 해결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플라스마 토치, 플라스마 발파, 플라스마 집진기 등의 기술개발도 분과 회원들이 국내 산업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한 훌륭한 성과로 꼽을 수 있다.
  2002년 현재 플라스마 물리학분과회는 창설된 지 20년으로 역사는 짧지만, 그간 분과 회원들이 합심하여 포항방사광가속기(PLS) 사업, 차세대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KSTAR) 사업 등 국가적인 중요한 대형사업을 일으키고 성공적으로 추진한 바 있다. 이 시기 분과 회원수도 209명으로 학회 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학술활동도 매우 활발하여 매년 250여편의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


 

 

 

 

 



플라스마 물리학분과회는 1981년 10월23일 설립되었다.

 

 

 

 

 

 

 

 

 

 

 

 

1994년 가을학회부터 초청논문을 제외한 모든 논문의 포스터 발표를 처음 실시하였다.

 

 

 

 

 

 

 

 

 

 

 

 

 





 


1994년 9월 제2회 아시아태평양 플라스마 과학기술 학술회의 논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