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학 및 양자전자학분과회는 이상수가 초대 회장을 맡아 발전시켰다. 그는 한국물리학회에 광학 및 양자 전자학 분야를 씨 뿌리고 가꾸어 이 분야의 꽃을 피운 사람이다. 1946년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하여 1949년 6월 졸업하였다. 곧바로 서울대 대학원에 입학하여 약간의 실험기구를 갖춘 권녕대의 광학연구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실험연구는 더욱 구체적인 물리현상을 공부하기 때문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대학원을 수료하고 1953년까지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강사로 재직하며 학문 연구에 힘쓰던 중 이화여대 물리학 조교수로 취업을 할 수 있었다. 그해에 문교부 주관하에 영국 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유학시절 홉킨스(H.H Hopkins), 라이트(W.D.Right) 및 웰포드(W.T.Welford) 등 당시에 세계적인 대가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라이트는 실험물리를 비롯하여 실용적인 학문을 강조하였고 웰포드로부터 수학하면서 철저한 물리개념의 파악을 위한 교육의 영향을 받아 후에 학생들에게도 이와 같은 실용주의적인 학문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귀국 후에 잠시 이화여자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1960년 한국원자력연구소로 옮겨 한국 최초로 레이저 발진을 성공시켰고 1967년부터 1970년까지 원자력연구소장, 그리고 이어서 원자력청장을 역임하였다. 1971년에 한국과학기술원을 개원하게 되어 초대 원장, 1979년부터 1981년까지 한국물리학회장을 역임하면서 정기 학술발표회의 발표논문 수를 크게 확충시켰고 학회지도 증간하여 물리학의 학술활동을 크게 활성화시켰다. 1981년에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고 그 후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국제광학위원회(ICO) 한국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면서 한국의 광학분야를 세계 무대에 올려놓게 되었고 1982년에 한국물리학회 양자전자학분과를 설립하면서 초대 분과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1989년 한국광학회를 창설하여 초대 회장을 맡게 되는 등 한국광학분야를 크게 육성하였다. 그리고 제 17차 ICO총회, CLEO Pacific Rim 등 커다란 국제 학술회의를 우리나라에 유치하여 그를 주관하였다.
  이상수의 뒤를 이어 서울대학교 장준성이 제2대 분과회 위원장으로 봉사하였으며 정년 퇴임 후에도 명예교수로 후진을 지도하고 있다. 제3대 위원장을 맡았던 김웅은 연세대학교에서 정년퇴임 후 (주)브이텍사의 기술고문으로 있다가 2001년 3월 15일에 별세하였다. 그는 광학분야 학문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후배들을 자상하게 이끌어주었다. 분과를 이끌어온 역대 위원장은 다음 표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