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혁
  1952년 6월 8일 국립 전북대학교의 개교와 더불어 물리학과가 개설되었다. 또한 교수요원 및 고급인력의 양성을 위해 1955년 4월에 이론물리학을 전공할 수 있는 대학원 석사과정이 개설되었고, 1976년 3월에는 박사과정을 개설하여 연구중심학과로서 본궤도에 올라서게 되었다.

교수
  개교 당시 물리학과는 노판우, 김근희, 백동기 세 사람의 교수로 시작하여 1회 졸업생수가 2명뿐인 규모가 작은 과였다. 당시 학과의 형편은 전문학술잡지는 고사하고 전문도서조차 일부 극히 제한된 일본어판 도서가 전부였다. 실험기구로는 UNKRA의 원조를 받아 마련한 일본제 도구인 전류계, 전압계, 수은기압계, 공작기구로 소형선반 2대 정도였다. 그러던 중 백동기가 일찍이 이화여대로 전출하고, 뒤이어 진의종을 비롯하여 김영기, 김태남, 김종국, 송인호, 나일성이 취임하였다. 그후 김근희(한양대), 진의종(이화여대), 강신후(충남대), 김태남(인하대), 송인호(인하대), 나일성(미국 유학) 등이 연이어 떠나고, 후임으로 신영진, 이용호, 이형재 등이 취임하여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학과 전체 교수 수가 6명에 불과하였다.
  학과의 내실과 수월성을 확립하고 경쟁력있는 우수한 교수진의 확보를 위해 젊은 교수의 해외연수에 전력하여 이형재, 김정홍 등이 캐나다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였다. 이기방이 미국에서 학위를 취득한 후 부임한 것을 위시하여, 국내 학위취득 교수들의 해외연수와 외국 수학 신진 교수들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개방정책을 택하였다. 그리고 기회있을 때마다 외부 저명 교수들을 초청하여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초빙교수로 이금휘(미국 미주리대학 교수)가 3회 4학기, 강익주(미국 서던 일리노이대학)가 2회 3학기에 걸쳐 학부, 대학원 강의와 교수 세미나에 봉사함으로 학과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학과가 2002년 현재 사용하는 건물로 이전한 1987년 이후부터 그간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던 콜로퀴엄을 매주 금요일 오후에 정착시켜 이어오고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특채와 공채를 통해 동문, 선후배, 동향인 등의 인맥관계를 떠나 인성과 능력위주로 소동섭, 김진승, 임채호, 박찬, 이용인, 김승곤, 이금휘, 서은경, 서재명, 임기영, 박희갑, 이정근 등의 교수를 초빙하였고, 그 결과 1990년대에 들어서는 전임교수가 20여명에 이르는 등 한때 교원의 수가 전국 2위에 이르기까지 하였다. 1995년 이용호, 1996년 김영기, 1999년 이춘호, 신영진, 2000년 이금휘, 2002년 이기방이 정년퇴임하였고, 2001년 이영희가 성균관대학교로 전출하였으며, 2002년에는 학년정원 15명의 반도체과학기술학과가 분리 신설되면서 이형재, 임기영, 서은경 등이 전출되어 떠났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1990년대 후반부터 교수임용에 분야를 초월하여 초빙한 결과 1996년 김주진, 2000년 최성렬, 2001년 정석민, 2002년 노희석 등 국내에서 최정상급의 신진교수를 임용하여 2002년 12월 현재 14명의 전임교수가 재직중이며, 계속적으로 전임교원 수를 증가시킴으로써 시대적 변화에 맞추어 첨단분야로의 세대교체를 이루어가고 있다.

교육연구시설
  1952년 학과개설 당시에는 구 문리과대학과 법과대학의 모체라 할 수 있는 명륜대학 교사였던 전주객사 건물의 일부 20여평을 활용하다가, 1955년에 문리과대학과 법과대학이 현 덕진캠퍼스에 자리잡아 이전하면서, 주한미군의 자재원조로 마련된 100평의 목조건물을 화학과와 함께 실험 및 교수실로, 그리고 그중 일부는 교실로까지 사용하였다. 1968년부터는 전북대학교의 자연대 3호관 1층(약 230평)으로, 1976년에는 제1과학관(사범대 과학관) 1층

(450평)으로 옮겨와 교육과 연구를 수행해오던 중, 고가실험기구의 공동활용과 공대·자연대·농대 등의 교양 일반물리의 효율적 통합운영을 위해, 1987년 여름 공동실험관1호관(1500평)을 신축, 이전함으로써 명실공히 전북대학교내의 가장 선도적 학과로 발전하게 되었다. 비좁은 공동실험실 1호관에 있던 물리학과의 반도체물성연구소가 1992년 3월에 법정 연구소가 되어 1491평의 건물을 신축하고 1997년에 이전하면서 질적, 양적 팽창을 이루었다.
  시설로는 UNESCO 원조로 구입한 실험기구에 의존해 오다가, 1960년 후반기부터 자체적으로 실험기구를 제작 또는 구입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영세성을 면치 못했던 학생실험과 교수연구용 기자재는 1970년 후반의 IDA / IBRD의 차관(45만달러)을 기점으로 하여, 1980년 초반기 6차 IBRD(100만달러), 1990년의 7차 IBRD(20만달러), 1990 - 1992년 사이에 반도체물성연구센터를 통한 특별배정된 자금(150만달러)으로 1500평의 건물이 비좁을 정도로 교육과 연구의 첨단장비를 갖추게 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하여 교수들의 연구가 활성화되어, 이후로는 주로 연구비로 첨단연구장비를 계속 확장·보충하고 있다. 순수 교육 기자재로는 1990년 이후 매년 3천만원에서 5천만원까지 학부 실험실습 확충예산을 집행함으로써 일반물리 실험과 광학, 고체물리, 현대물리, 전자회로실험 등의 과목에서 필요로하는 장비들을 확보하고 있다.

학생
  1970년대 후반부터 실시된 실험대학 제도로 학부 학년정원의 수가 25명에서 40명, 그리고 80명까지 갑자기 증원되었고, 졸업정원제가 실시될 때에는 졸업정원의 30%를 더한 104명을 입학시켜 교육시키기에 이르러, 급격한 양적 팽창에 비해 교수요원 및 교육시설·설비의 부족으로 교육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1980년대 말까지는 교수진과 시설·설비 여건이 개선된 데 반해 실험대학 실시 이후 입학생의 수준이 현저하게 낮아져서 교육효과를 올리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꾸준히 물리학과 실험실 공개, 특강 등을 실시하여 입학생의 수준이 점차 회복되었다.
  1990년에 물리학과에 기반을 둔 반도체물성연구소 설립과 함께 적극적 홍보를 펼친 결과 전교 수석 입학자가 물리학과에서 나올 정도로 입학생의 수준도 향상되었고 대학원 석·박사 과정의 입학생수도 현저하게 증가하여 연구인력의 질적 향상을 가져왔다.
  졸업정원제가 폐지되면서 입학정원이 60명으로 줄었으며, 1998년 전국적인 학부제의 도입으로 물리전공, 지구과학전공, 화학전공을 통합한 과학기술학부가 설립되어 2002학년도에는 학부정원 155명의 신입생을 모집하게 되었다. 학부제 시행으로 2학년 진학시 전공선택을 하게되어 물리학 전공을 선택하는 학생 수는 입학정원이 60명이었던 때보다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2002년 반도체과학기술학과(정원 15명)를 신설하고 물리학전공 배정 인원을 신설학과에 할당하였기 때문에 2002년 현재는 물리학과 정원은 45명이다.

교육 및 연구분야
  1970년대 후반부터는 학과의 특성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고체물리학 중에서도 특히 반도체분야를 중점 육성하기로 발전방향을 설정하고, 이 분야의 연구용 장비 및 교수 충원에 집중 지원하였다. 최초의 우수연구센터(SRC)인 반도체물성연구소 유치는 그와 같은 노력의 가시적 성과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학과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해 입자물리학, 표면물리학, 응용광학, 원자 및 핵물리학 등의 분야도 계속 육성시켰다. 이상과 같은 노력의 결과로 교육부 산하 대학평가위원회에 의해 제1차(1992년)로 실시된 전국 물리학과 평가에서 학부 및 대학원 모두 우수학과로 공인된 “우수학과 인정증서”를 받기도 하였다. 반도체가 20세기 후반의 기술혁명을 가져왔지만, 21세기에는 광전자학(optoelectronics)이 과학기술의 총아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여 이 분야에 역점을 두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광전자학과 관련된 두 분야인 광학과 응집물질물리 분야의 교수들이 주축이 되어 광·전자·정보기술연구소를 설립하였고, 2002년도에는 학술진흥재단에서 6년에 걸쳐 장기 지원하는 중점연구소로 선정되어 지원받기 시작하였다. 새로이 대두된 나노과학 분야에서도 물리학 전공의 교수들이 주축이 되어 2001년도에는 대학원 협동과정인 나노과학기술학과를 설립하여 각기 다른 전공 배경을 가진 대학원생들을 유치하여 지도하고 있다. 또한 수능입학시험 제도와 학부제의 도입과 함께 전 물리학계가 침체기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실험기구의 첨단화 등의 교육혁신을 통해 학부제 이전과 동일한 수준의 공대, 자연대, 농대의 물리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2000년을 전후하여 국내에서 선구적으로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물리교육을 시작함으로써 물리학회와 국내 타 물리학과의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특히 전 강의실을 2000년 이전에 모두 멀티미디어 강의실로 개조했고, 일반물리 실험도 멀티미디어 교재에 기반을 둔 시설로 개조하였다. 그 결과로서 2000년, 2001년 두 차례에 걸쳐 UNESCO - AsPEN과 한국물리학회의 후원을 받아 물리교육분야의 국제 워크숍(UNESCO - AsPEN Seminar - workshop; Multimedia Physics Education : Promoting Active Learning in Introductory Physics Courses)을 개최하는 등 물리교육의 활성화에 노력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 국내의 전 물리학과가 그 존폐의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 현 시점에서도, 전북대학교 물리학과는 그 정체성을 자연과학의 기초를 튼튼히 하는 데 두고 있다. 이를 위하여 교내의 일반물리교육에 역점을 두고 물리교육을 수요자의 요청에 따라 과목의 다양성과 그 참신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학교 내에서는 공과대학과 자연과학대학에 세분화된 물리학 과목들을 개설하고, 타 전공에 대하여는 기초물리학을 제공하며, 그 강의의 질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이는 물리학과의 교수정원을 향후 40명 이상으로 증대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전북대학교 물리학과는 1952년 국립전북대학교 개교와 동시에 개설되어 1998년 학부제 실시에 따라 지구과학 및 화학전공과 함께 과학기술학부에 편성. 2002년에 학과관련 반도체기술 학과 신설. 1955년 석사과정 1976년 박사과정 개설. 2001년 대학원 협동과정인 나노과학기술학과 신설.

 

 

 

 

 

 

 

 

 

 

 

 

 

 

 

 

 


물리학과 교수 단체 사진. 윗줄 왼쪽부터 박희갑, 이용인, 임채호, 정석민, 김주진, 최성렬 아랫줄 왼쪽부터 이정근 김진승 김승곤 김정홍 소동섭 서재명 사진에는 박찬이 빠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