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 물리학과는 1955년 2월 한양공과대학 수물학과로 시작하여, 1959년 2월 종합대학 승격에 따라 문리과대학 물리학과로 발족되었다. 그후, 한양대학교 물리학과는 사랑의 실천인 근면, 정직, 겸손, 봉사의 건학이념 아래, 현대인으로서의 교양과 지성을 갖춘 바탕 위에 물리학의 폭넓은 과학지식을 습득토록 교육하였다. 또한, 졸업 후의 사회활동을 위하여, 창의성과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물리학의 전문인력을 배출하는 데 주력하였다.
  학과의 연혁을 살펴보면, 1955년 공과대학 내에 수물학과(물리학과 정원: 30명)가 설치되었다가, 1956년 한차례 폐과되었으나 1958년 복과되었다. 그후 1959년에 종합대학 승격과 함께 문리과대학 물리학과가 인가되어 입학정원 20명을 배정받았다. 1963년에는 석사 4명, 박사 2명 정원의 대학원 물리학과가 개설되었으며, 1971년에는 기초과학연구의 활성화를 위한 자연과학연구소가 설립되었다. 1980년 문리과대학으로부터 이과대학 물리학과로 개편되었으며, 1983년에는 입학정원 40명의 자연과학대학 물리학과로 개칭되었다. 1984년 3월에는 안산캠퍼스에 이공대학 물리학과가 신설되어 국내 최대규모의 물리학과로 성장하였다. 1996년에는 학부제의 실시와 함께, 서울캠퍼스와 안산캠퍼스의 학과가 각각 자연과학대학 자연과학부 및 이과대학 이학부로 개편되었다. 이과대학은 2001년도에 다시 과학기술대학으로 개칭되었다.

여명기
  1955년 공과대학 내에 처음으로 설치된 수물학과는 1956년도 2월에 폐과되는 시기를 겪기도 하였으나, 1958년 다시 수물학과로 복과되어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당시 물리학과의 전임교수로는 통계물리학 전공의 전종국(全鍾國), 전자장론 전공의 김의훈(金義薰), 고체물리학 전공의 최선근(崔善根) 3명이 재직하였다. 전종국은 1950년대에 물리학 전공서적인 「해석역학」을 저술하였는데, 이는 역학분야의 백과사전적 명저로 꼽히고 있다. 김의훈은 1954년 한양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1958년에 동 대학원 공학석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1966년부터 1968년까지 일본 와세다대학 이공학부에 파견연구원으로 연구하였다. 그후, 1972년도에 한양대학교 물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4년 이후 줄곧 한양대학교 물리학과에 재직하였으며, 기초과학의 중요성과 기초과학의 터전이 없이는 공학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음을 일찍부터 인지하고, 1954년 당시 공학과뿐인 한양대학교에 물리학과를 신설하고 발전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1980년부터 1985년까지는 자연과학대학 학장을 역임하여 물리학뿐 아니라 수학, 화학, 생명과학의 한양대학교 내 기초과학 분야 발전에 헌신하였다. 또한, 1975년도 한국물리학회 사업간사를 시작으로 간사, 이사 및 부회장을 역임하여 한국물리학회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1985년도에는 한국물리학회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하였으며, 1997년 정년퇴직과 함께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받았다. 한편 최선근은 50세에 일본 도쿄대학에서 만학하여, 고체물리학 전공으로 학위를 취득하였다. 귀국하여 한양대학교에서 학생처장, 교육대학원장을 역임하였으며, 2002년 현재에도 한양대학교 재단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유아기
  1959년 한양대학교가 종합대학으로 승격함에 따라 공과대학 내에 설치되었던 수물학과로부터 물리학과가 분리되어 문리과대학 물리학과로 정식 발족하게 되었다. 1960년도에 이론물리학 전공의 이종구(李鍾九)가, 1962년도에는 방사선핵물리학 전공의 한준택(韓俊澤)이 부임하였다. 이로써 한양대 물리학과는 통계물리학, 전자장론, 고체물리학, 이론물리학, 그리고 방사선핵물리학의 5개 핵심분야를 전공한 교수진을 갖추어, 물리학의 기본적 전공교육이 가능한 물리학과로서의 틀을 구축하게 되었다.
  한준택은 교내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활발히 학회활동을 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국내 물리학자가 27명에 불과하던 해방직후부터 국내에 물리학의 뿌리를 세우는 데 노력하였으며, 1952년 12월 7일 피난지 항도 부산에서 물리학회가 발족할 당시 창립 발기인 서명자 34명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하다. 한준택은 서울대에 재직하던 육이오전쟁 당시, 권녕대와 함께 인민군의 서울 점령 하에서 고초를 겪었으며, 평양으로 납북되는 과정에서 공습을 틈타 가까스로 탈출하는 사건을 겪기도 하였다. 그후 1954년 고려대 조교수로 재직하다가 1956년 국비 원자력연구생 자격으로 미국 캔자스 주립대학에서 방사선핵물리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1963년 서울대학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한준택은 1955년 가을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제3회 정기총회에서 물리학회 총무간사로 선임된 이래 재무간사, 감사, 사업간사 및 부회장을 거쳐, 물리학회의 확충기인 1970년도 4월에 물리학회 제3대 회장에 선출되어 물리학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였다. 그후 홍익대 대학원장 겸 학장으로 전직하였으며, 과학기술상 진흥상을 수상한 바 있다.

양적 성장기
  1963년에는 물리학과에 석사 4명 박사 2명 정원의 대학원과정이 인가되어 비로소 연구기능을 갖춘 학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 대학원 연구 활성화를 위한 전임교수의 확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68년도에 광학 전공의 김근희(金根熙)가 부임하였으며, 1969년에는 응집물질물리학 실험 전공의 우창웅(禹昌雄)과 김행일이 교양학부 전임강사로 부임하였다. 1972년도에는 핵물리학 전공의 문국진(文國珍)이 부임하였다. 또, 1974년에는 한양대학교 물리학과 대학원 졸업생인 이창효(李昌孝)가 부임하였고, 1년 뒤 교양학부가 폐지되고 난 후 의대 담당 물리학과 전임으로 우창웅이 부임하였다. 1979년도에는 이현규(李賢揆), 김정기(金政起), 김소구(金昭九)가 임용되었고, 당시 2부대학 전임으로 한양대학교 물리학과 졸업생인 김형관(金炯寬), 김옥경(金玉經)이 부임함에 따라 물리학 담당 교수는 총 13명으로 양적 성장을 하기에 이르렀다. 김근희는 1970년대 초 당시로서는 국내 최첨단 연구이던 홀로그래피와 레이저를 연구하였다. 우창웅은 1957년도에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도 경희대학교에서 응집물질물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의과대학 일반물리학 강의를 전적으로 담당하였으며, “종교와 과학”이란 제목의 강연으로 종교 봉사에도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문국진은 공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오하이오대학에서 핵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핵물리학 분야의 후학을 양성하는 데 기여하였다.
  1965년 5월 29일에 한양대학교에서는 최초로 제11회 한국물리학회 정기총회를 여학생관에서 개최하였다. 이 학회에는 150여명이 참석하였으며, 4편의 초청강연을 비롯해서 14편의 연구논문이 발표되었다.

질적 도약기
  국내의 대부분의 대학이 그러하듯이 1980년도 이전의 한양대학교 물리학과는, 대학원이 설치되어 있었고, 학과의 모든 구성원들이 열의와 의욕을 가지고 대학원 연구의 활성화에 매진하였으나, 국내 경제사정에 따른 연구용 실험기자재의 열악함 때문에 당시만해도 학부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 위주의 운영이 이루어졌다. 1980년도 이후에 비로소 대학원 중심의 연구기능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에 발맞추어 1984년도에는 안산캠퍼스에 이공대학 물리학과가 신설되어, 서울캠퍼스 물리학과와 대학원을 공동 운영함으로써, 질적 도약과 함께 두개의 캠퍼스를 가진 국내 최대규모의 대학원을 갖춘 물리학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한양대 물리학과의 전공분야는 크게 응집물리학, 광학, 입자물리학 이론, 원자·핵 및 플라스마 물리학과 응용물리학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응집물리학 분야에서는 기존의 김의훈, 최선근, 우창웅, 이창효, 김정기에 더하여 1981년도에 모교 물리학과 졸업, 박사 학위를 취득한 김채옥(金彩玉)이 임용되었으며, 1987년도에는 모교 출신으로 미국 세인트루이스 대학에 유학을 다녀온 후 중앙대학을 거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에 근무하던 한백형(韓百亨)을 영입하였다. 또한, 2부대학의 김형관과 김옥경이 전근되어 왔다. 광학 및 응용물리 분야는 김근희에 이어 1980년도에 김필수(金弼洙)가 임용되었고, 안산캠퍼스에는 1982년도 이건상(李建相)에 이어 이수용(李秀容)이, 1991년에는 오혜근(吳惠根)이 임용되었다. 입자물리학 및 천체물리학전공 분야는 1980년도와 1981년도에 이철훈(李哲勳)과 전유방을 각각 영입하였다. 원자·핵 및 플라스마 물리학 전공에는 문국진에 이어 1980년대에 이희제(李喜濟), 김영진(金英鎭)이 임용되었고, 안산캠퍼스에는 1992년에 정영대(丁暎大)를 영입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한양대 물리학과는 1980년대를 맞아 좀더 다양하고 체계적인 연구 중심적 학과 체제가 구축되었다.
  1983년도부터 1990년도까지 한양대학교에서 재직한 바 있는 조순탁 역시 한준택과 함께 국내 물리학의 초창기를 이끌었던 사람 중의 하나이다. 조순탁은 미시간대학에서 통계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후 서울대, 서강대 교수를 거쳐 한국과학원 교수와 원장을 역임하고, 1983년도부터 1990년까지 한양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교육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조순탁은 1952년 한국물리학회 상임이사를 시작으로 총무간사, 이사 및 부회장을 거쳐 1972년 물리학회 제5대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오늘날의 물리학회로 이끌어 올리는 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1983년 4월 제46회 물리학회가 한양대학교에서 개최되었다. 15편의 초청강연을 비롯하여, 162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한양대에서는 김영진이 소변의 NMR 측정에 의한 암진단 가능성에 대해 총회초청강연을 하였으며, 전유방이 솔리톤에 대해 입자물리학분과 초청강연을 하였다.
  1990년대에는 실험기자재의 확충을 위한 재원이 부족한 시점에서, 상대적으로 경쟁력 있는 학과로 성장하기에 유리한 입자물리학이론 분야를 강화하기 위해, 이범훈(李範勳), 신상진(申相鎭), 윤용성(尹鎔聲)을, 안산캠퍼스에 홍주유(洪周裕)를 영입하였으며, 과학재단 및 교육부의 지원을 받아 좀더 활성화된 연구가 이루어졌고, 이론물리학 분야에서 국내 최대 연구그룹의 하나로 부상하게 되었다. 연구그룹의 규모가 점차 커짐에 따라 1992년도 8월부터는 입자 및 천체물리학 연구그룹의 연간 연구결과를 중심으로 이와 관련된 국내외의 학자들과 함께 “행당 이론물리학 워크숍”을 연례적으로 주최하였다. 2001년 12월에는 제10회 이론물리학 워크숍을 행당캠퍼스에서 개최함으로써 국내 이론물리학계에선 가장 오래된 전통을 가진 학회의 하나가 되었다.
  1990년도 후반에는 광학 분야를 강화하기 위해 오차환(吳且煥), 송석호(宋錫虎)를 영입하였고, 응집물질물리학 분야를 강화하기 위해 안산캠퍼스에 안일신(安日新), 차민철(車敏哲), 서울캠퍼스에 홍진표(洪鎭杓), 남창우(南彰祐)가 임용되었다. 안산캠퍼스에는 플라스마물리학 전공의 김곤호(金坤鎬)와 입자물리학이론 전공의 권영헌(權寧憲)을 새로이 보강하였다. 2000년도와 2002년도에는 서울캠퍼스에 응집물질물리학 분야의 중견 연구자인 이영백(李英白)과 김은규(金銀圭)를 각각 영입함으로써 학과의 4개 연구분야의 고른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1993년 4월에는 또다시 한양대에서 제66회 한국물리학회 정기총회가 개최되었다. 학회에서는 31편의 초청강연을 비롯, 478편의 연구논문이 발표되었다. 한양대학교에서는 이현규가 “기하학적 위상과 강입자의 구조”라는 제목의 총회초청강연을 했고, 1997년 11에는 1997년도 한국자기학회 정기총회 및 추계연구발표회가 개최되었다. 자기학 분야의 국제적 권위자인 프리먼(A.J. Freeman, 노스웨스턴대)이 “Magnetism in man - made materials”라는 제목으로 특별강연을 하였으며, 초청강연으로는 IBM의 파킨(S.S.P. Parkin)이 “Magnetoresistance of shadow - masked and microstructured magnetic tunneling junction” 외 2편을 발표하였다.
  1996년에 이어 두번째로 1999년 10월 6일부터 8일까지 사흘간 한양대학교 국제학술회의장에서는 한국물리학회 응용물리분과회가 주최한 제2회 첨단신소재 및 신소자 과학기술국제회의(ICAMD)가 개최되었다. 국제회의의 주된 내용은 뉴밀레니엄을 눈앞에 둔 현대에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는 응용물리학의 핵심분야에 대한 이해와 논의였다. 매회 주제 분야 중 시의적절한 한 분야를 집중분야로 다루고 있는 전통에 따라 제 2회에는 광소재 및 소자 분야를 집중분야로 하여 조직되었다.
  2001년도 2월 15일부터 16일 양일간 한국광학회가 12회 정기총회 및 동계학술발표회를 개최하였다. 장(R. K. Chang, 예일대), 카디날(T. Cardinal, CNRS), 양(C. N. Yang, Chinese Academy Science), 이용희(KAIST)의 총회 초청강연을 비롯하여 19편의 초청강연이 있었으며, 120여편의 논문발표가 있었고, 30여 업체가 대거 참여하여 기기전시를 가졌다.

현재상황 및 미래비전
  이와 같이 한양대학교 물리학과는 지난 20여년간 규모면에서나 연구의 질적 도약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여 왔다. 한양대 물리학과 학부 정원은 1955년도 30명에서 출발하여 1970년대에 20명으로 축소되었다가, 1980 - 1990년대에 서울캠퍼스와 안산캠퍼스 각각 40명으로, 2001년도 현재에는 서울캠퍼스의 정원이 60명으로 증원되었다. 1992년도 재적 학생수는 서울캠퍼스 자연과학대학의 경우 172명, 안산캠퍼스 과학기술대학의 경우는 142명이었으며, 2001년 현재 각각 198명과 109명이 재적하고 있다. 물리학과 대학원은 서울캠퍼스와 안산캠퍼스를 통합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1963년도 초기 석사 4명, 박사 2명으로 출발하여, 1992년도에는 석사과정 39명, 박사과정 17명으로 증원되었다. 2001년에는 석사과정 60명 박사과정 32명으로, 1992년도에 비해 약 2배 정도 인원이 증가하였으며, 이는 지난 10년간 대학원 중심의 연구 기능이 크게 강화되었음을 의미한다.
  한양대학교 물리학과는 물리학회와 관련된 학회의 활동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주요한 활동만을 정리하여보면, 초창기 한준택(1970 - 1971)과 조순탁(1972 - 1974)이 각각 3대, 5대 물리학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부회장과 이사로 김의훈(1981 - 1987), 문국진(1989 - 1991)과 이창효(1993 - 1997)가 학회 이사로 활동하였다. 이희제(1985), 김정기(1986), 김영진(1988)은 물리학회의 논문상을 수상한 바 있다. 분과활동에 있어서는 김채옥(1995 - 1997)이 응집물질물리학 분과위원장으로, 이철훈(1998 - 2000)이 천체물리학 분과위원장으로, 이희제(1998 - 2000)가 플라스마물리학 분과위원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또한, 이현규(1997 - 1999)가 학술지 편집간사로, 윤용성(1997 - 1999)이 섭외간사로 활동하였으며, 이영백(1997 - 2001)이 홍보잡지 편집간사, JKPS 「새물리」 편집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김채옥은「물리학과 첨단기술」의 편집위원장겸 부회장(1999-2000), 실무이사장겸 부회장(2001-2002)으로 활동한 바 있다. 이철훈이 2001년도부터 입자물리학 분과위원장으로, 2002년도부터는 이현규가 천체물리학 분과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양대학교 물리학과의 연구분야는, 80년대의 특성화 방안을 그대로 유지하여, 크게 응집물리학, 광학, 입자물리학 이론, 원자·핵 및 플라스마 물리학과 응용물리학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응집물리학 연구분야에는 서울캠퍼스의 한백형, 이창효, 김채옥, 김정기, 이영백, 김은규, 홍진표, 남창우와 안산캠퍼스의 김옥경, 안일신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고체물리학 이론, 초전도 물성물리, 신기능 스핀물성 응용, 자성 및 자성박막, 박막 및 표면물리, 강유전체 등을 연구하고 있다. 광학 분야 연구에는 서울캠퍼스의 김필수, 오차환, 송석호와 안산캠퍼스의 오혜근, 안일신이 참여하고 있으며, 비선형 광학, 마이크로 광학, 광노광, ellipsometry 및 광학박막 등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론물리학 연구 분야에는 서울캠퍼스의 이철훈, 이현규, 신상진, 윤용성과 안산캠퍼스의 차민철, 권영헌, 홍주유가 참여하고 있으며, 천체 및 입자물리학 이론, 상전이에 대한 통계물리학, M이론 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플라스마 물리학 연구 분야에는 서울캠퍼스의 이희제와 안산캠퍼스의 정영대, 김곤호가 참여하고 있으며, dusty plasma, 원자충돌, 기초 및 응용 플라스마 연구와 핵융합 플라스마 연구 등이 수행되고 있다. 응용물리학 분야 연구에는 안산캠퍼스의 이수용, 이건상, 권영헌이 참여하고 있으며, 음향학 및 방사선 보건에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의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한 결과, 1984년도 이론물리학 그룹의 교육부 “지역거점연구소” 지정을 시작으로, 1999년에는 물리학과 입자물리학이론, 광학, 플라스마물리학의 3개 연구그룹이 BK21 핵심과제에 모두 선정되었고, 2001년도에는 NRL(송석호)에 선정되는 등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또한, 2002년도에는 김채옥의 오랜 노력으로, 이영백을 소장으로 하는 물리학과 주도의 “양자 광기능 물성 연구센터”가 한국과학재단의 신규 우수연구센터(SRC)로 선정되었다. 이 센터는 향후 9년간 매년 11억원 규모의 정부 지원과 4억원 정도의 학교 지원으로 더욱 발전하는 물리학과로 발전해 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또한, 2002년 10월 24일부터 26일까지 한양대학교에서 한국물리학회 창립 50주년기념 심포지엄 및 학술논문 발표회를 개최하였다. 특이한 사항으로는 한양대학교에서 21세기의 신교육 요람으로 건립한 HIT, 백남학술정보관, 백남음악관, 올림픽체육관, 제1공학관을 총 망라하여 사용한 점이 이채롭다. 이 학회의 개최를 기점으로 한양대 물리학과가 국내 대학교육 및 연구의 구심체로서 또 다른 도약의 기회를 만들 수 있도록 학과 구성원 모두가 부단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한양대학교 물리학과는 1955년 수물학과로 시작하여 1956년 폐과,1958년 복과와 1959년 종합대학 승격으로 문리과대학 물리학과로 발족, 1963년 대학원 석박사 과정 개설, 물리학과 소속이 1980년 이과대학 1983년 자연대로 변경. 1984년에 안산캠퍼스에 이공대학 물리학과 신설, 1996년 학부제로 자연과학부와 이과대학이학부 물리전공으로 재편하고 2001년 이과대학은 과학기술대학으로 명칭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