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연구소 설립

  1956년 3월 문교부 기술교육국에 원자력과를 신설해서 원자력원 및 산하 원자력연구소 설립을 법제화하고, 실무적인 준비를 선도한 사람들은 윤세원, 이영재 등 물리학자들이었다. 나라의 경제사정이 아주 어렵던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연구소 발족 준비를 위해 수십명의 국비 훈련생을 해외에 파견했으며, 그중 태반이 물리학도였던 것은 무엇보다도 당시로서는 원자력에 대한 시대적인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었던 이들이 물리학자들이었고, 또 장차 원자력의 연구를 주도할 중심 분야가 물리학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2차세계대전을 종식시킨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려는 세계적인 조류에 부응해서 1959년 2월에 원자력원 산하에 원자력연구소(소장 박철재)가 설립되었고, 원자핵물리학 연구와 방사선 계측기술개발 업무가 기초 연구부 (부장 김영록)의 기본 업무로 주어졌으며, 1961년에 기초연구부는 5개 연구실로 분할 개편되었고, 그중의 하나로서 물리학연구실(실장 이상수)이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초창기의 연구분야

  설립 당시, 장단기 해외 훈련에서 귀국한 사람들 중 원자력연구소의 물리학연구실에 참여한 사람들은 각자 연구테마를 설정하여 연구를 수행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통합적인 연구방향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시작이고 황무지나 다름없던 당시로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해외훈련을 마치고 해외에 머물거나 귀국 후 바로 대학으로 간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1959년부터 1961년까지 해외 파견되었던 과학자들이 귀국하면서부터 연구시설이 전무했던 물리학분야도 그들의 전공분야를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연구활동이 시작되었다. 즉, 이동녕의 주도하에 중성자발생장치 제작연구, 이영재가 주도한 핵건판을 이용한 고에너지 물리연구, 이상수가 주도한 분광기술 개발을 위한 광학실의 활동, 그리고 이론물리학 연구 등의 분야가 활발히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연구들 중에는 T(d,n)He 반응에 의한 중성자 발생장치를 제작하는 연구, 여러가지 원소를 분산한 핵유제에 20 GeV 양성자를 조사한 핵건판을 BNL에서 공급받아 현미경으로 주사 관찰함으로써 평균자유행정, 흡수단면적을 측정하고 파이중간자의 다중발생 현상을 관측하고 이론적으로 해석하는 연구도 포함되었었다.
  한편, 1958년에 착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인 TRIGA - MarkⅡ (열출력 100KW)가 준공됨으로써 이를 이용한 중성자 물리 및 방사선검출기 개발 연구가 활발해졌다. 이와 관련된 주된 활동은 다음과 같았다.

① 연구로 수평 빔공에 결정 회절장치와 복결정 중성자 단색기를 제작 설치와 중성자 단색화 및 계측 기법을 개발, 중성자 회절 및 투과법에 의한 재료연구를 위한 기초연구.
② 전리함과 구동/계측장치를 직접 제작한 파일오실레이터(Pile Oscillator)를 연구용 원자로에 설치하여 원자로 반응도를 측정함으로써 Ni, In, W, Cu 의 열중성자 흡수단면적 측정.
③ 페르미 촙퍼 (직경 5cm, 10000rpm)를 제작하여 비행시간 측정법으로 열중성자 미분스펙트럼 측정.
④ 반도체 감마선 검출기를 제작하고 관련 분광법 개발.
⑤ 중간자의 질량차 계산 등 이론물리학 분야 연구.

  그러나 1961년에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얼마 되지 않아 모든 연구는 산업적 이용을 위한 것이 되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1960년대 중반부터 이미 원자력 발전(發電)에 대한 논의가 대두되었으며 핵물리학 등 순수 물리학 분야는 점차로 그 입지가 어려워져 갔다. 이에 따라 위에 언급한 초기 연구과제를 주도하던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국내외 대학 또는 연구소로 옮겨갔으며, 1960년대 후반에는 해외 훈련을 마치고 초기에 참여했던 물리학자는 거의 대부분 연구소를 떠났다. 하지만 이 초창기의 원자력 연구소 물리학 연구실이 우리나라 물리학계에 기여한 바는 아주 컸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원자력 연구소 출범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출범을 전후해서 연구소뿐만 아니라 대학의 많은 물리학자들에게도 해외 훈련의 기회가 주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초창기 물리학 연구실의 활동이 비록 각 분야의 세계적인 수준은 아니라 하더라도 연구 설비가 전무했던 당시의 우리나라 사정으로서는 대학을 갓 나온 신참 연구원들에게 많은 참고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대학에서도 위촉 연구원으로 많은 사람들이 원자력연구소의 물리학 연구실 활동에 참여했었다. 즉, 초창기 원자력연구소 물리학 연구실의 활동은 우리나라 물리학계 인력 양성의 표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성장기의 연구분야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원자력연구소는 그때까지의 종합 기초과학연구중심의 연구소로부터 에너지원으로서의 원자력개발로 중심의 연구소로 변화하게 되어 많은 물리학자들이 대학 또는 다른 연구소로 이적하게 되어 물리분야의 연구가 크게 위축된 시기이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우리나라 물리학계를 크게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주요연구팀은 다음과 같다.

(1) 중성자물리팀(최창선 박혜일 정문규 이연필 김헌준)
  TRIGA II 원자로를 이용하는, 중성자회절팀, 중성자파일오실레이터를 이용한 물질의 반응도 측정팀, 중성자 촙퍼를 제작하여 열중성자 에너지 미분분포를 측정하는 비행시간측정(Time - of - Flight) 팀, 박막활성화법 (Foil Activation법)을 사용한 TRIGA II 노심의 중성자에너지분포 측정 팀들의 연구를 거쳐 2002년 현재의 중성자물리팀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좀더 출력이 큰 제2의 연구로 도입이 연구소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TRIGA Mark Ⅱ연구로가 훈련용이고 중성자속이 너무 낮기 때문에 물리학 연구실에서는 중성자 산란으로 본격적인 물성연구를 할 수 있는 최소한 중수 반사체를 구비한 5MW급 도입을 강력히 건의하였다. 그러나 결국은 TRIGA Mark Ⅲ(2MW)연구로가 1972년에 건조되었다. 낮은 열중성자속으로 여전히 많은 제약이 있었으나, TRIGA Mark II 연구로에서 습득한 경험을 살려 제2단계 활동에 들어갔다. TRIGA Mark Ⅲ 연구로 수평 빔공에 4대의 중성자 회절/분광장치를 건조했다. 역 필터형 중성자 분광장치(En=20 - 200 meV, BeO Window Filter),천공 테이프로 프로그램할 수 있는 자동 계측·제어장치, 액체질소 온도 시료 장치를 모두 자체개발하여 중성자 비탄성 산란에 의한 분자 운동을 조사하였다. 수소원자핵의 큰 중성자 비간섭성 산란진폭을 위해서 수화물 결정의 분자와 L - Serine 아미노산 결정내의 기의 외부 각 진동수 분포함수를 측정함으로써 O - H...O, N - H...O 수소 결합을 조사했다. 대일 청구자금으로 도입한 기계부에 자체 개발한 계측·제어장치를 결합해서 중성자 회절장치를 완성했다. 중성자 회절법으로 아연 합금(zinc alloy)판, 규소 강판 및 일반 각종 산업용 금속 선재·판재의 우선 방위(집합조직)를 측정해서 방위 분포 함수를 계산, 탄성 계수·자성 이방성을 예측·평가했다. 이 연구는 1970년대 중반부터 6년간 IAEA와의 연구 계약으로 수행되었으며, 일반 산업재료의 이방성 예측뿐만 아니라, 핵연료 피복관등 핵재료의 조사 손상 연구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회절 단결정 분광장치 (12000 rpm - Al 단결정)로 5MeV 중성자 펄스를 입사해서 비행시간측정 기술로 분광하는 장치를 완성했으나, 낮은 중성자속으로 실용적인 연구는 하지 못했다. FeCo 편극 단색기와 고주파 스핀변환기(Spin Flipper) 등을 조달해서 편극 중성자의 회절을 이용한 자성 구조해석을 시도했으나 역시 낮은 중성자 속으로 실용화하지는 못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고출력 다목적 연구로(“하나로”) 건조계획이 추진되었다. 중성자 물리실에서는 TRIGA - Mark Ⅱ/Ⅲ 연구로에서 겪은 한계를 극복하고, 고성능의 다양한 상보인 중성자 분광장치를 설치해서 응집체의 미시적 구조·운동 연구를 위한 준비를 하였다. 노심 주변의 수평 빔공 배치·구조에서 원자로 보조 주변 시설에 이르기까지 계획·설계에 적극 참여했다. 2002년 현재 “하나로”의 수평 빔공에는 4대의 중성자 분광장치가 완성되어 국내 연구소, 대학, 산업체에서 활발히 이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고분해능 분말 회절장치와 4축 결정 회절장치는 결정구조 해석, 상변화, 내부 응력분포, 집합조작과 물성 이방성 상관 조사 등에, 그리고 소각 산란 분광장치는 물리, 화학, 재료, 생물학분야에서 10Å - 3000Å 차원의 미시구조 및 응집상태 연구에 이용되고 있다. 한편 자성구조 연구와 고분자의 층구조 연구를 위해 편극 중성자 분광장치와 중성자 반사계, 범용적 회절장치의 건조준비를 하고 있으며, 고분해능 1차원 및 2 차원 위치 민감형 검출기와 고저온 시료 분위기 장치 등의 개발을 진행중에 있다. “하나로” 중수 반사체내에는 액체 수소(20。K)를 도입한 냉중성자원을 장치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으며, 장차 3개의 중성자 도관으로 넓은 에너지 폭의 냉중성자를 별도의 중성자 실험동으로 도출함으로써 10여대의 추가적인 고성능 분광장치를 설치하는 계획이 수립되어 있으며, 장기계획의 일환으로 되어 있다. 중성자와 방사광의 상보적인 특성을 고려할 때, “하나로”의 중성자 이용은 포항방사선연구소와 더불어 다양한 응집체의 미시적 구조·운동 및 물성 연구의 중심 센터를 지향해서 노력 중에 있다.

(2) 방사선계측과 감마선 분광학팀(정문규 조만 서두환 조성원 강희동)
  끝머리 분광계(Edge Spectrometer)로 감마선 분광을 시작한 핵계측팀은 브리지먼(Bridgman)법으로 안트라센 형광체 단결정을 성장시켜 사용하다가, 반도체검출기의 가능성을 감지하면서 리튬 이온 드리프트 게르마늄 검출기(Lithium Ion Drifted Germanium Detector) 제작기법을 습득한 뒤 리튬 드리프트 실리콘 표면장벽 검출기(Lithium Drifted Silicon Surface Barrier Detector)를 완전히 국산화하여 핵분광학이 우리나라에 정착하는 데 크게 공헌하게 되었다.

(3) 고에너지물리팀(이영재 서일환 박원구)
  우주선건판을 고배율광학현미경으로 주사하여 우주선의 고에너지소립자의 붕괴과정과 입자 종류를 분류하는 국제관측팀의 일원으로 활약하였다.

(4) 가속기팀(이동녕 김헌준 서두환 김기현 조만 김정도 강희동 정문규 최병호)
  의료용 X선발생장치용 직류 고압발생장치를 이용하여 T(d,n)α 반응으로 14.4 MeV 고속중성자발생장치를 개발하였다. 그뒤 맥동중성자발생장치를 도입하고 실리콘 표면장벽 검출기와 비행시간측정 기법을 접합시킨 핵분열생성물의 에너지분포와 전하분포측정장치가 제작되었다.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연구소의 기본방향이 종합기초과학연구소적 역할로부터 고속증식로와 관련 핵연료주기 및 핵융합연구 등 원자력의 에너지 이용분야로 크게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고속로물리용 고속중성자 스펙트럼 발생을 위한 납분광계 제작을 위한 맥박형 강력중성자원개발을 하게 되어 Duoplasmon Ion Source제작이 시도되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플라스마물리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팀이 2002년 현재의 가속기팀과 핵융합팀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원자로용의 핵자료를 평가하고 고속로물리로 연결시켜 나간 팀이 현재의 핵자료팀과 액체금속로 개발팀으로 발전하였다.

(5) 이론물리팀(이수호 김인규 오세웅 유동혁 박종춘)
  소립자론을 주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섭동론을 근간으로 하는 광학적 특성이 강력한 레이저광 아래에서는 여하한 광학적 특성을 나타낼 것인가 하는 논의를 잠시 갖기도 하였다.

(6) 고체물리팀(김기수 김용석 조만 맹선재 이기선 서일환 김정진 강신규 문용식)
  오랜 역사를 지닌 X선회절경험을 바탕으로 고체의 방사선상해연구팀이 생겼다. 방사선상해연구를 위하여 TRIGA - II원자로 재료의 기계적 특성과 부식특성이 원자로 중성자조사로 여하히 변화하는가를 연구하기 시작한 팀과 반도체의 pn접합특성이 중성자조사에 의한 핵변환으로 변화하는 것을 측정하기도 하였다. 그뒤 중성자조사에 의하여 생긴 결정학적 결함을 관찰 가능하게 하는 보르만(Bormann) Anomalous회절장치가 개발되었다. 이 팀은 반도체물리분야를 개척하여 태양광소자의 개발로 이어나갔다. 이 사이에 액체질소제조장치도 도입하고, 로터리 휨 피로(Rotary Bending Fatigue) 시험장치를 제작하여 피로시험 등에 사용하였다. 이것들은 그후 재료공학팀으로 승계되었다. 여기서 특기할 것은 X선회절팀이 우리나라의 유기화합물 X선회절 분야를 개척하여 국제적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1965년경에는 GaAs 레이저다이오드를 도입하여 전기신호로 변조하는 광통신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한편 뫼스바우어 효과 관련 연구도 국내 처음으로 수행되었다.

(7) 광학팀(이상수 박대영 이계철 박대윤 이종민 김철중)
  1961년 10월 원자력원, 원자력연구소의 연구조직 개편으로 물리학 연구실이 새로운 명칭으로 탄생하였고, 핵물리학, 중성자물리학, 이론입자물리학, 고체물리학, 광학 등의 분야로 기초핵심 연구실로의 역할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연구실장으로는 영국에서 광학을 전공하고 귀국한 이상수(당시 한국물리학회 편집간사)가 수고하였으며, 따라서 자연스럽게 원자력과 관련된 광학 및 분광학연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첫 단계에서는 각종 광부품과 광학기기, 특히 광간섭계의 응용을 위한 설계·제작 및 평가 기술로서 광학연구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이로부터 Twyman - Green, 패브리 - 페로(Fabry - Perot), 아베(Abbe), Mach - Zehnder 등의 간섭계를 실험실 자체 설계·제작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었고, 그의 응용연구도 수행할 수 있었다. 패브리 - 페로 간섭법을 이용한 원자의 초미세구조의 분광학적 연구(1962), 전자회절법에 의한 광물질 구조연구(1962), 원자로 중심부에 나타나는 푸른빛의 체렌코프(Cerenkov) 복사와 원자로 출력과의 상관관계연구(1964), γ 선에 의한 LiF 결정의 열형광과 방사선 상해연구(1965) 등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져 가시적 연구결과와 더불어 광학실험연구의 성과를 보였다.
  한편, 이와 병행하여 1965년부터는 당시 첨단과학으로 불리던 가간섭성 광의 증폭연구를 국내 최초로 계획하고 수행하게 되었고, CW He - Ne 중성원자 레이저(1965), 펄스형 고출력 루비 고체레이저(1967), CW 및 펄스형 CO2 분자레이저(80W급, 1971), Blumlein형 TE N2 레이저(1976), 가변파장 N2 Pumped Dye레이저(1977), Double Helical TEA CO2 레이저(1979), Ar ion 레이저(1982) 등 각종 레이저 발진기에 대한 자체 설계·제작과 특성 및 응용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었다. 당시 레이저 연구 및 응용에 대한 장기 연구계획서도 마련하여 과기처에 제출하여 국내 레이저 연구의 활성화도 꾀하였으며, 정부로부터는 레이저에 의한 분광학적 연구에 관한 종용도 있었다.
  이러한 광학 및 레이저 연구는 국내 물리학계와 산업계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으며, 이 시기동안 국내 대학과 산업체로부터 광과학연구 및 광기술 개발을 위한 시설이용자도 수십명을 능가하였으며, 이들은 2002년 현재 국내외의 이 분야에서 크게 활동하고 있다.
  1980년 후반에 들어오면서 동위원소의 이용과 관련하여 동위원소의 분광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이에 따라 이론물리화학연구실로 시작된 분광학 연구실이 발족되었으며 21세기에 들어선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앞선 분광학 및 레이저 연구팀으로 성장하였다. 파장가변레이저, 금속증기레이저, 자유전자레이저, 화학레이저, 다이오드펌프 고체레이저, Ti:Sapphire 극초단 레이저 등 첨단레이저의 설계 제작기술을 확보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원자분광자료를 수록하고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였고, 원자력산업용·의료용·학술용의 안정동위원소의 제조기술을 확립하였다. 레이저분광 연구 이외에도 원자력 산업에의 활용성이 높은 레이저 광계측 및 레이저 보수 용접 연구도 수행되어 환경감시용 라이더(Lidar)도 개발되었으며 레이저 가공분야에서는 연구원이 가공용 레이저를 생산하는 회사를 창업하기에 이르렀다.
  위의 연구과정에서는 초기단계에서 이상수, 박대영, 이계철, 박대윤, 고정덕, 송광석 등의 연구원과 중반에는 서두환, 김은가, 김태수, 이인원, 황철규, 김훈, 성낙진 등의 연구원이 참여하였으며, 1980년대 후반부터는 이종민, 김철중, 이용주, 차형기, 차병헌, 김정묵, 김광석, 김덕현, 백성훈 등이 합류하여 수고를 하였다. 한국원자력연구소의 물리학 연구는 우리나라 물리학의 태동기에 있어서 모든 분야에 걸쳐 산파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21세기에 들어선 2002년 현재에도 우리나라의 원자력을 받쳐주고 있는 기둥이 되고 있다.


 

 

 

 

 

1959년 2월 한국 원자력원 산하에 원자력연구소(소장 박철재)가 설립되었다.

 

 

 

 

 

 

 

 

 

 

 

 

 

 

 

 

 

 

 

 

 

 

 

 

 

 

 

 

 

 

 

 

 

 




TRIGA Mark Ⅲ(2 MW) 연구로가 1972년 건조되다.

 

 

 

 

 

 

 

 

 



2002년 현재 “하나로”가 완성되어 국내 연구소, 대학, 산업체에서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