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의 한·중 고체물리심포지엄, 1991년의 고체물리이론 심포지엄이 개최된 이 시기는 양적 성장기 때보다 더 많은 학자들이 대거 등장하여 질적으로 우수한 논문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특히 1986년에 세상을 놀라게 한 고온초전도체가 개발되었다. 고온초전도체 발견 초기에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박종철, 서울대학교의 김정구(金廷九)와 박영우(朴英雨), 부산대학교의 장민수(張敏守)가 국내에서 최초로 연구를 하였으며 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젊은 학자들, 포항공대의 이성익(李星翊) 등이 주도적으로 고온초전도 연구를 수행하였다. 자성체의 광자기적 성질에 대한 연구도 한국과학원의 신성철(申成澈)을 중심으로 수행되어 국제적 수준의 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하였으며, 2002년 현재는 여러 대학과 연구소 등에서 우수한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한편, 응집물질물리 이론부분을 살펴보면, 우리 나라에 실질적으로 고체물리 이론이 도입된 것은 1970년에 서울대 장회익과 이화여대 모혜정(毛惠晶)이 귀국하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장회익은 수도 퍼텐셜방법에 의해 반도체의 에너지띠를 계산하는 연구로부터 시작하여 여러 물질의 성질을 에너지띠 계산에 의해 설명하고자 하는 연구를 다년간 하였으며, 모혜정은 밀접결합방식을 통해 자성전이금속의 물성연구에 큰 기여를 하였다. 경북대학교의 손기수(孫基洙)는 금속표면의 전자구조 계산에 있어 선도적 역할을 하였으며, 연세대학교 김철구는 자성체, 저차원계, 복잡계, 강한 상관계 등 여러 대상물질을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하였다. 서울대 이민호(李敏浩)도 고체물질의 전자구조와 격자진동에 관한 연구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분과회의 질적도약을 이루어놓은 이 시기에 분과회를 이끌어 온 위원장은 권숙일, 조성호, 최병두(崔柄斗), 윤수인, 김종진, 이금휘, 김채옥, 김철구, 장민수, 남균이었다.
  위와 같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응집물질물리학분과 회원들의 활동으로 수많은 훌륭한 연구업적이 산출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모두 지면에 담기 어려워, 이중 응집물질물리 이론 분야에 김덕주의 업적과 우리 나라에서의 강유전체 연구활동에 대하여 살펴본다.

김덕주와 이론응집물질물리
  김덕주는 다체론을 이용한 금속전자계의 물성이론 연구에 일생을 바쳤으며, 우리나라에 이러한 분야가 도입되고 발전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그는 생전에 이 분야 관련 101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하였고 「금속전자계의 다체이론」 (민음사간, 1986)을 발간하였다. 유고로서 남겨진 영문판 “New Perspectives in Magnetism of Metals”이 1999년에 Kluwer Academic Publishers에서 출간되었다. 그의 연구주제는 금속자성(itinerant electron magnetism등), 교환 상호작용, 전자-포논 상호작용, 전자기체(jellium model), 자성-포논 상관관계, invar 현상들이며 그중에서도 자성과 전자-포논 상호작용 연구는 기존 이론과는 상반된 매우 획기적인 결과를 예측하여 많은 주목을 받았다. 김덕주가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지도교수 구보(Kubo)와 함께 전도전자와 국소스핀간의 상호작용이 자기 감수율에 미치는 효과를 학회에서 발표하였는데, 여기서 콘도(Kondo)가 콘도효과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한다.
  그는 MIT-링컨연구소에서 슈바르츠(M. Schwartz), 프라도드(Praddaude) 등과 함께 교환-상관 상호작용 효과가 큰 강자성 금속계에서의 스핀과 전하 감수율(spin, charge susceptibility)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였다.
  그가 1971년 일본 아오야먀 가쿠인(靑山學院)대학에 부임하여 독창적인 업적이라 할 수 있는 금속자성계에서의 전자 - 포논 상호작용, 자기탄성, 자기변형 특성 등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다. 자기탄성과 강자성 금속계의 자기상전이 근방에서 교환상호 작용에 의해 포논의 진동수가 감소하는 포논 무르기 현상이 일어남을 이론적으로 고찰하였으며, 계속하여 전자 - 포논 교환상호작용이 큰 물질에서 포논 무르기 등에 의해 전자-포논 상호작용이 크게 증가하는 효과를 발견하였다. 이 효과는 A15 물질에서 보이는 초전도 현상을 이해하는 데 성공적으로 적용할 수 있었다.
  포논에 대한 자성 효과의 역방향인 자성에 대한 포논효과에 대해 독창적인 이론을 발표하였다. 강자성 금속계에서 보이는 자기감수율의 퀴리-바이스 온도 의존성이 포논효과에 기인함을 보였고, 스토너(Stoner) 이론에서 너무 크게 예측되는 상전이온도가 포논효과를 고려하면 실험값과 부합한다는 사실을 보였다. 또한 이 효과가 상전이온도와 자기화의 동위원소(isotope) 효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예측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인 invar 현상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김덕주가 예측했던 초거대 자기저항 (CMR)의 여러 현상, 즉 자성 전이에 따른 포논의 변화와 동위원소효과 등이 매우 크게 관측된다. (1997년 작고)

강유전체 연구
  강유전체 연구자들의 국제 학술회의는 국제 강유전체학회(IMF; International Meeting on Ferroelectrics)가 가장 큰 규모로서, 4년마다 개최되고 있다. 서울대 권숙일은 국내학자로서는 처음으로 제2회와 제3회 국제 강유전체학회(IMF-3)에 참석하여, 그 참가후기를 1973년도의 「새물리」에 게재하였다.
  그로부터 8년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에서 개최된 IMF-5에 장민수, 조성호와 김종진이 참석하였다. 이 대회의 마지막 세션에서 중국(그 당시는 중공)대표인 상해규산염연구소의 옌(Yin)이 중국의 강유전체 연구현황에 대하여 단결정 성장을 중심으로 발표하였으며, 옌은 그때 국제강유전체학회 자문위원으로 피선되었다. 국제강유전체학회의 자문위원으로 아시아에서는 일본인 두명에 이어 처음으로 중국인이 선출되어 중국의 강유전체 연구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 그리고 차기 IMF-6의 개최지가 일본의 고베로 결정되었다는 발표와 함께 나카무라(T. Nakamura, 동경대학)가 차기 대회에 대한 장소 소개와 환영인사를 하였다.
  유전체 연구회의 태동과 한국과학재단의 연구 프로젝트 수행 등으로 연구풍토는 조성되었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연구 인력은 인접한 일본과 중국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빈약했다.
  그러나 4년 동안의 준비로 IMF-6에 참석하여 12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국제강유전체학회 자문위원은 4년마다 개최되는 차기 학회장소 선정과 운영위원을 선출한다. 이러한 일들은 학회 기간 중에 이루어진다. 나카무라(IMF-6 위원장)의 제안에 따라 권숙일이 참관인 자격으로 국제강유전체학회의 자문위원회에 참석하였는데, 그 회의에서 곧바로 권숙일이 자문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국제강유전체학회의 우리나라 자문위원의 탄생은 우리 강유전체 연구원들의 큰 영광이었으며 국제학회에서 한 표의 의결권을 갖게 되었다.
  다음 국제강유전체학회는 1989년 8월 28일부터 9월 1일까지 독일(그당시는 서독)의 자르브뤼켄에서 개최되었는데, 한국학자 10여명이 참석하여 22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학회는 강유전체 연구의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였다. 이제까지는 bulk(단결정 또는 세라믹스)에 대한 연구가 주종을 이루었지만 콜로라도대학의 스콧(Scott)의 강유전체박막에 대한 연구발표는 강유전체연구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었다.
  권숙일의 관심분야는 질서-무질서 상전이를 하는 KDP물질이나 C-INC 상전이를 하는 NaNO2물질에 관한 연구였지만, 이 학회에서 PZT 강유전체 박막의 물성과 응용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어 귀국 후 국내에서 강유전체 박막 물성 연구를 강조하였다.
  매년 2월과 8월의 유전체 월례회는 부산에서 가졌으며 특히 2월은 연구년도의 마지막 달이기 때문에 1년간의 연구결과를 총정리하는 심포지엄과 겨울학교를 병행하였다. 논문발표가 끝난 뒤풀이의 자리에서 용기를 발휘한 몇몇이 IMF-9을 한국에 유치하자는 제의를 하였다.
  유전체 월례회 창립 멤버들은 오래전부터 국제강유전체학회의 유치에 대한 논의를 해왔지만 국제적인 큰 학술회의를 유치했을 때 국내의 연구인력이 적기 때문에 외국 학자들만의 학회가 될 것이 가장 큰 염려가 되어 망설이고 있던 때였다. 그리고 국외적으로 중국이 지난 IMF-5 대회 때부터 IMF-6를 유치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성사시키지 못하였으며 IMF-7은 독일에, IMF-8은 미국에 밀려 유치에 실패하였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유럽, 미주지역에서 순차적으로 학회가 개최되었기 때문에 다음의 IMF-9은 당연히 아시아지역인 중국에서 개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국제자문위원들까지도 그 타당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연구인력면과 그동안 중국의 국제적인 입장을 고려했을 때 한국이 IMF-9을 유치하기는 대단히 힘든 사정이었다. IMF-9을 유치하는 데 대한 찬성과 반대가 대립되는 격론 끝에, 결국 IMF-9을 유치하기로 하고 준비위원장으로 권숙일을 추대하였다. 다음달 월례회에서 더 구체적인 방법으로 국제자문위원에게 한국과 한국의 강유전체 연구를 홍보하기로 하였으며, 가장 좋은 방법은 각자가 성실히 수행한 연구의 결과를 알리면서 학문적으로 인정을 받는 일이었다. 그리고 IMF-9의 개최지는 IMF-8 학회기간 중에 결정되기 때문에 모두들 학회발표 준비를 충실히했다.
  충실한 준비로, IMF-8에는 물리와 재료분야에서 모두 50여명이 참석하여 70여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참가자 수와 논문 발표 수는 미국, 일본 다음으로 많았다. 권숙일은 서울에 대한 홍보책자, IMF-9의 개최지로서의 적합성을 담은 비디오테이프 등 완벽한 준비를 하였다. 결국 IMF-9의 유치경쟁은 예상했던 것과 같이 16세의 중국과 4세의 한국으로 압축되었다. 마침내 자문위원회가 개최되어 중국측 옌과 우리측 권숙일의 경쟁에서 예상을 깨고 우리가 신승하였다. 한국 참가자들은 축배를 들었고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결코 잊을 수 없는 쾌거였다.
  한국의 강유전체 연구분야는 권숙일과 조성호 같은 이들이 없었다면 이와 같은 기쁨도 나눌 수 없었을 것이며 1997년 8월 서울에서 IMF-9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로써 한국의 강유전체 연구는 꽃망울 수준에서 탈피하여 크고 아름다운 꽃잎을 한장씩 힘있게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제15회 고체물리심포지엄 포스터

 

 

 

 

 

 

 


김덕주는 다체론을 이용한 금속전자계의 물성을 연구한 이론물리학자이다.

 

 

 

 

 

 

 

 

 

 

 

 

 

 

 

 

 

 

 

 

 

 

 

 

 

 

 

 

 

 

 

 

 

 

 

 

 

 

 



제9차 강유전체학회(IMF-9)를 1997년 서울에 유치 개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