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국 근대화를 위한 경제부흥정책에 따라 학문과 산업간 연계의 필요성 대두와 때를 같이한 학회지 「새물리」의 창간(1961)으로 한국물리학회 회원들의 연구활동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1964년에 학회 회원수가 424명에 달하였고[1] 10월 30일 전남대학교에서 개최된 추계임시총회 발표논문이 12편에 달하여, 이것을 제1부 “원자핵물리학 분야”와 제2부 “물성물리학 분야”의 둘로 나누어 발표를 병행하기에 이르렀다. 이 “물성물리학 분야”로 구별된 것이 응용물리학 분야의 독립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분과회 설립규정은 1963년 8월 31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개최된 1963년도 제2차 평의원회에서 제정된 회칙을 동년 10월 25일 경북대학교에서 개최된 추계임시총회에서 제3조의 “소분과”를 “분과회”로 수정하고 세칙 3 분과의 제1조에 “분과회는 동일 분야를 전공하는 정회원 15명으로 구성한다”로 규정하였다. 이 규정은 1969년 4월 25-26일 건국대학교에서 개최된 제18회 정기총회에서 회칙이 개정되어 분과회 구성은 동일분야를 전공하는 20명 이상의 정회원으로 상향 조정하였다. 그러나 그후에도 “고체 및 응용물리학” 부문의 합동 학술발표 활동이 계속되었다.
  1968년 제16회 정기총회(4. 25-27, 경희대학교)에서 “고체물리학분과위원회”가 설립되었고, 1970년 제20회 정기총회(4. 17-18, 서강대학교)에서 “물리교육분과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이에 따라 제21회 정기총회(1970. 10. 30-31, 부산대학교)부터는 응용물리학 부문은 독자적인 학술발표장을 운영하게 되었다. 따라서 제1부 “핵 및 입자물리학분야” 15편, 제2부 “고체물리학분야” 16편, 제3부 “응용물리학분야” 8편 및 제4부 “물리교육분야” 2편의 총회 연구발표가 병행되었다. 1971년에 이르러 각 분야별 학술활동이 형평을 이루게 되었고, 10월 22-23일 경북대학교에서 개최된 제23회 정기총회에 발표된 논문편수는 입자 및 핵물리학분야 17편, 고체물리학분과 17편, 응용물리학분야 17편 및 물리교육분과 8편이었다.


 

 

 

 

 

 

 

 

1970년 4월 27일 응용물리학분과위원회가 창립되었다. 1970년 10월 제 21회 정기총회부터 응용물리 부문은 독자적 학술발표장을 운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