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에 한국과학원(KAIS)이 설립되면서 물리학과에서 광학분야의 정규 석·박사과정 교육과 연구가 정상화되었다. 한편 과학기술연구소, 국방과학연구소 , 기존의 원자력연구소 내에 광학 또는 레이저 전문 연구실이 설립되고, 대학에서도 레이저 관련 연구에 큰 관심을 갖게 되면서 광학-레이저 분야의 기초 및 연구개발은 가속도를 지니게 되었다. 특히 과학원은 광학 및 광공학 전공의 석·박사를 배출하게 되어 대학, 정부출연기관연구소, 기업체 현장에까지 우수 전문인력을 공급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당시 과학원 광학연구실에서는 홀로그래피 영상처리, 요오드 광해리 레이저(pulse형 및 CW형), TEA 레이저(pulse형), 복사압연구 그리고 렌즈디자인과 실험(Lens Design & Testing) 등의 연구가 있었으며, 한국과학기술연구소, 국방과학연구소 및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고출력 CW 레이저, TE 레이저, 루비와 YAG 레이저의 응용연구 등의 연구개발 사업이 있었다. 서울대에서는 홀로그래피 물질 연구, 레이저 연구 등이 있었고, 여러 대학에서 레이저 및 레이저 광속을 이용하는 연구가 추진되었다.
  1974년 9월초에 한국의 광학-레이저 전공학자들은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 다름이 아니라 프랑스 광과학자 일행(10명)이 일본에서 개최하였던 ICO (International Commission for Optics) 총회를 마치고, 당시 ICO 사무총장인 비에놋(Vienot)의 인솔하에 한국을 방문한 사실이었다. 우리들은 한국과학원에서 심포지엄을 열면서 프랜콘(Francon)의 강의, 로웬탈(Lowental)의 연구 발표 등을 듣고, 양국 광과학자의 교류를 협의하였다. 이들의 내한은 국내 광학계에 큰 격려가 되었다. 이때 우리나라는 ICO 회원가입을 사무총장 비에놋에게 정식으로 요청하였고, 이것이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져서 1975년 ICO 총회(프라하, 체코슬로바키아)에 상정하기로 합의했다. 결국 1975년 8월 25일 프라하에서 개최된 제 10차총회에서 한국의 가입이 정식 승인(만장일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7년 1월 9일부터 며칠동안은 재미 한인 레이저 과학자를 초청하여 국내 광학자들과 함께 서울 레이저심포지엄(Seoul Laser Symposium)을 국방과학연구소와 한국과학원에서 개최하였다. 김대만(Rice대학), 김용욱(Leheigh 대학), 김진중(North Carolina 주립대학), 노원병(System Research Lab. Inc.), 강민호(Taxas 대학, Austin) 등이 모국을 방문하여 그들의 연구결과 발표와 레이저 연구개발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교환하는 바람직한 시간을 가졌다. 이 심포지엄의 개최는 국방과학연구소와 한국과학기술원이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1975년 8월25일 ICO회원국 가입이 승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