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물리학회가 한국과학재단의 후원으로 주관해오던 이휘소 기념강연(B. W. Lee Memorial Lecture on Physics)의 제3회(1981년) 주제를 레이저 물리학 분야로 결정하였고, 이에 따라 1981년 10월 30-11월 4일까지 한국과학기술원 대강당과 강의실에서 미국의 저명한 레이저 과학자인 스탠포드대학의 시그먼(A. E. Siegman)이 강좌를 맡아주었고 우리 광학계의 국제교류에도 적극 협력하였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광학, 레이저(양자전자학)분야의 연구가 점차 늘어, 한국물리학회의 대부분의 광학자들이 참가하고 있는 응용물리학분과회는 회원수가 크게 늘어 봄, 가을 총회에서 폐회시각 넘어서까지 논문발표가 지속되는 등 분과의 크기와 활동이 다른 분과회에 비해 너무 커졌다. 결국 1981년 10월 19일 제31회 이사회에서 플라스마 물리학분과회와 광학 및 양자 전자학분과회를 신설하는 것이 의결되어 1982년 춘계학술발표회부터 응용물리학분과회로부터 독립된 분과로 활동하게 되었다. 초대 분과회 위원장을 이상수가 맡아 1985년까지 분과를 이끌어갔으며 분과 운영위원회를 두고 위원으로는 김웅, 박대윤, 윤수인, 이민희, 임동건, 장보현, 장준성, 한필순, 홍경희가 임명되었다.
  1983년 7월 1 - 21일에는 시그먼의 적극적인 협조와 한국과학원 레이저연구실의 의지 그리고 당시 레이저 응용기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대우중공업 및 금성사, 레이저 제품의 대리점인 우양교역, M-C 인터내셔널 등 기업체와 한국과학재단, 산학협동재단 등의 재정적인 후원으로 국내 최초로 “극동 레이저스쿨(Far Eastern Laser School-Seoul ’83)”을 개최하게 되었다. 중국, 태국 등 9개국에서 20여명, 국내 대학, 연구소, 산업체 등의 학생과 연구원 40여명이 정식으로 등록하였고, 한국과학기술원내의 레이저 관련 실험실이 이용되었다.
  레이저 스쿨은 당시 선진국에서만 주로 개최하였기 때문에 국내 개최는 광과학 기술분야에 상당한 자부심도 갖게 하였다. 강사로 참여하여 주었던 웰포드(Welford, Imperial 대학, 영국)가 결맞음광학(Coherent Optics), 발터(Walter, 뮌헨대학, 서독)가 레이저응용, 시그먼이 레이저 동태(Laser Behavior), 시모다(게이요대학)가 레이저분광학에 대해 각각 강연하였으며, 또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11종의 레이저 관련실험을 병행하였다. 이들 교수 외에 국내의 연구원 및 교수들이 헌신적으로 봉사와 협조를 아끼지 않아 성공적으로 이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1983년 12월 10일에는 육군사관학교에서 처음으로 산학협동을 위한 제 1회 광학 및 양자전자학분과 워크숍을 개최하였다. 홍경희(육사)가 렌즈 설계, 김철중(에너지연구소)이 광계통 성능평가, 한성홍(울산대)이 광학박막 설계에 관해 발표하였고 대학원생, 연구원 및 기업체 실무자들이 70여명 참석하여 토의를 하였다.
  1984년에는 쉬고 1985년 9월 21일에 제2회 광학 및 양자전자학분과회 워크숍을 한국과학기술원에서 한국과학기술원 후원으로 개최하였고 이때부터 참가비도 받고 요약된 프로시딩도 출판하였다. 1986년 8월 17-19일 강릉대학에서 제3회 광학 및 양자전자학분과 워크숍을 가졌으며 이때 120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고 특히 중간에 야간시간을 이용하여 비공식그룹회의를 가지는 등 실질적인 산학 협동의 장을 열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이 워크숍은 매년 여름철에 광 관련 기업체의 협찬을 받아가며 1990년까지 이어 왔으나 한국광학회가 1989년 10월에 설립되어 1990년에 본격적인 학회 활동을 시작하면서 여름 워크숍이 한국광학회 정기 학술 발표회로 전환되어 물리학회의 활동 범위를 벗어나게 되었다.
  1986년 2월 14일에는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제1회 파동 및 레이저 학술발표회를 대한전기학회 파동 및 양자전자 연구회와 대한 전자공학회 광파 및 양자전자 연구회 및 대한 전자공학회 마이크로파 및 전자파 연구회와 공동 주최로 열게 되어, 1990년까지 매년 2월에 개최하였다. 이를 통해 광학 및 양자전자학분과는 타 학회의 유사한 분야의 분과 또는 연구회와 긴밀한 유대를 가지고 학술 교류를 하게 되었다. 광학 및 양자전자학 워크숍과 마찬가지로 한국광학회가 1990년부터 이를 정기적인 정기총회 및 학술발표회로 전환하여 파동 및 레이저 학술발표회도 물리학회의 활동 범위를 벗어났다. 한국광학회가 탄생하여 물리학회 광학 및 양자 전자학분과 활동이 위축되는 듯하여 많은 우려를 하였으나 그렇지는 아니하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선진국의 레이저융합, 레이저플라스마 연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일본 오사카대학의 야마나카(Yamanaka)를 초청하여 일본의 레이저융합 연구 현황에 대한 강연(1987년 7월 5일)을 듣게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나라의 고출력, 고에너지 연구가 더욱 추진되고, 세계적 추세와 합류해야 하겠다는 느낌이 새삼스러웠다. 이즈음 기존의 광학 및 레이저 연구실들은 연구목표나 과제가 더더욱 전문화되거나 특성화되어 안정된 연구활동이 전개되어 나갔다. 즉, 한국과학기술원, 한국원자력연구소, 한국과학기술연구소,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소 등의 정부출연 연구소와 전국 각 지역의 대학 그리고 대기업, 중소기업체의 광 관련 연구·개발실까지 점차 광과학, 광기술, 광산업의 R&D 과제가 질적, 양적으로 확대되어 나가게 되었다. 특히 광전자공학(Opto-electronics), 광정보처리(Optical Information Processing), 광통신, 광센서 분야의 산업분야에서의 요구는 한층 더 커져갔다.


 

 

 

 

 

 

1981년 10월23일 광학 및 양자전자학분과회가 응용물리학분과회로부터 독립분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