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기 국내적으로는 4·19혁명(1960년)과 5·16군사혁명(1961년)이 일어나면서 극도로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그러나 대학이나 국립연구기관(당시는 한국원자력연구소)은 사회분위기와는 달리 향학열과 연구의욕이 그 어느 때보다도 충만한 시기였다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해방전후 대학에 진학했던 1세대 물리학도들이 한국전쟁의 와중에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하고 일부는 국내에서 일부는 국외에서 석·박사 과정을 이수하고 직업을 찾아 캠퍼스나 연구소에 입소한 30대 중반의 혈기왕성한 청장년의 젊은 과학도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들이 밤낮없이 연구실에서 정열을 쏟으며 새로운 학문분야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고 있을 때, 유학 1세대라 불리는 몇몇 물리학자가 귀국하여 당시로서는 유행처럼 번져있던 현대물리학이나 핵물리학 대신에 “고체물리학”이라는 새로운 강좌가 개설되어 교수, 학생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가 있게 되자 많은 물리학자들이 응용성이 돋보이는 “고체물리학”을 전공하게 되고 이에 따른 실험연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당시 고체물리학은 키텔(Kittel)책을 번역한 250쪽짜리를 학부 2 - 4학년의 선택과목으로 강의가 개설되었는데 서울의 몇 대학의 경우 1960년대 초에 갓 귀국한 김희규(고려대)가 강의한 것이 한국에서의 고체물리학 강의의 효시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어서 연세대 정중현이 CdS, ZnTe, ZnSe 등의 Ⅱ-Ⅵ족 화합물 반도체의 결정성장과 홀효과 측정 등의 장비를 자체 제작하여 이들 반도체 재료의 물성측정 실험을 정열적으로 대학연구실에서 수행하였고, 고려대에서는 김희규의 지도로 Ge, InSb 등과 합금반도체 박막의 홀효과 측정과 아울러 여러가지 고체시료의 마이크로파 영역에서의 유전상수 측정과 X선 회절 분석장비를 이용한 고체시료들의 결정학 연구를 활발하게 연구하였다. 한편 한국원자력 연구소에서는 김기수가 실장으로 재직한 고체물리연구실이 주축이 되어 각종반도체의 검출기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리고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설립된 이듬해인 1967년 미국 벨 전화연구소에 근무중인 정원을 해외유치 과학자로 초빙해서 KIST에 고체물리연구실장으로 임명하자, KIST에서는 정원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반도체 물리학 연구를 수행하게 된다. 정원이 귀국해서 처음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는 Si(실리콘) 반도체의 방사선 조사에 따른 결정결함 생성원인 규명으로 방사선 소스로는 한국 원자력연구소의 TRIGA MARKⅡ 원자로에 Si 시편을 넣어 중성자 조사량에 따른 비저항 측정을 원자력연구소의 도움으로 수행하였고, 또 당시 서울 구로공단 (현재는 서울 디지털 산업단지) 내에 산업박람회에 출품됐던 Co60의 γ선을 조사시키면서도 Si 반도체의 비저항을 측정하였다. 이어 정원이 1969년에 정부 프로젝트로 Si 켜쌓기 결정성장을 자체설계에 의한 에피장비를 제작 실험하는 연구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GaAs 켜쌓기 에피 결정성장 실험은 1970년 시작하였다. 이들 일련의 KIST 반도체 물리학 실험은 당시 국내 여건으로는 획기적인 연구 테마였고, 미국과 일본 등 당시의 반도체 선진국에서도 극히 일부 큰 연구실에서만 시도되던 연구분야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어떻게 보면 당시 한국여건으로는 실효성이 없는 연구테마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새로 설립된 국책 연구소로서 세계 일류연구소와 경쟁키 위한 발판으로 이런 프로젝트를 택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항시 정원은 목적지향의 연구도 중요하지만 국책연구기관은 첨병연구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해온 학자이기에 한국 반도체 산업대국을 위한 첨병연구를 30여년 전에 하지 않았나 하는 점에서 후학들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하겠다. 서울대 응용물리학과의 최병두는 1960년대 후반에 GaAs 및 InP의 단결정을 성장하여 이의 물성연구를 국내에서 최초로 수행하였다. 당시 InP와 GaAs는 새로운 III-V족 화합물반도체로 선진 외국의 몇몇 연구실에서만 행하던 연구를 국내에 이식한 연구인 것이다.
  1968년 4월 25일 고체물리학분과회가 창립되어 한국물리학회 정기총회에서 분과회단독 학술논문발표회를 갖는 등 내면적 역량을 키우는 데 주력하였다.


  1968년 4월25일 고체물리학분과회가 설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