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삼성전자(주), 현대전자(주)(하이닉스의 전신), LG반도체(주)가 D램 반도체 가공을 일제히 시작함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일대전기를 맡게 됨에 따라, 국내 많은 대학의 고체물리학 교수들은 반도체물리학으로 전공을 바꾸거나 새로 이 분야 연구를 시작하는 경향이 두드러진 시기였다. 그 한 예로 동국대 물리학과의 반도체 그룹도 이 시기에 탄생되었는데, 획기적인 일은 100만 달러 상당의 MBE(molecular beam epitaxy) 장비를 학교에서 구매, 강태원이 이 분야의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한 사실이다. 이 MBE가 씨앗이 되어 동국대 물리학과는 국가지정 우수연구센터인 ‘양자기능 반도체연구센터’(1999년)를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또 서울대 물리학과의 우종천은 교육부 지원으로 국립대학으로는 처음으로 MBE를 설치, 가동시켰다.
  또 1980년대 초부터 전북대 물리학과의 김영기, 이형재, 신영진, 이춘호 등은 각기 AlGaAS MOCVD, GaAS bulk 결정성장 등의 화합물 반도체분야 연구를 시작하여 1990년에는 한국과학재단의 국가지정 제 1차 우수연구센터 “반도체물성연구센터(Semiconductor Physical Research Center: SPRC)”로 지정받기에 (1990년) 국내의 대학 반도체 물리학 연구 그룹으로는 가장 큰 연구집단을 형성, 많은 연구업적을 내놓았다. 9년간의 SPRC에 대한 정부지원이 끝난 후도 정부지정 대학부설 “반도체물성연구소”로서 반도체물리학 분야의 연구와 인력양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1989년 여름 고체물리학 심포지엄이 “반도체물리학” 토픽으로 동국대 주관으로 동국대 낙산학사에서 300여명의 이 분야 연구인력이 모여 아침부터 밤 10시가 넘도록 성황리에 심포지엄을 가졌으며, 이 자리에서 과학재단의 우수연구센터 응모에 전북대 반도체 물리학 연구팀을 지원하기로 원로교수들이 합의함에 따라 전북대가 국가 지정의 제1차 우수연구센터로 선정되게 되었다. 그리고 1980년 후반 그간 수입에만 의존하던 실리콘웨이퍼를 실트론(주), 포스크휼즈(주) 등의 국내 업체가 생산하여 국산화함에 따라 반도체재료 산업도 크게 발전하는 단계에 접어들게 되었다. 한국물리학회가 처음으로 주관하는 국제심포지엄인 “서울국제 반도체물리학 심포지엄(The 1st Seoul International Symposium on the Physics of Semiconductors and Its Applications: ISPSA)”도 1982년에 열렸다. 이주천이 위원장인 이 심포지엄은 일본, 미국, 대만에서 각각 7명, 3명, 1명씩의 연사를 초청하여 강연을 듣는 것이었으며 이때 약 130명이 참석하였다. 국내연사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그 당시 국내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984년에 열린 제2회 심포지엄도 역시 11명의 초청 강연으로 되어있고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외국으로부터 초청된 연사들이다.
  한국물리학회 30주년 기념사업으로 1982년 처음으로 시작된 “서울 국제 반도체물리학 심포지엄”이 2002년에 11회가 되었다. 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학술대회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 학술회의일 뿐만 아니라 한국물리학회가 주최하는 가장 역사 깊은 국제학술행사다. ISPSA를 통하여 지난 20여년간 반도체물리학 분야의 유수한 외국의 학자들이 다녀감으로써, 국내학자와의 학문적 인적 교류를 통하여 국내 반도체물리학의 학문수준을 국제화시키는데 획기적인 역할을 했다. 또 이 국제학술회의를 매개로 하여 1990년대 이후 수많은 반도체분야 국제학술대회를 국내에 유치하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이로 인한 한국 반도체 산업기술이 단순모방 조립기술이 아닌 학문이 뒷받침되어 뿌리내린 산업기술이라는 것을 국내외에 과시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학문적으로 기술적으로 한국이 반도체산업의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서울국제 반도체물리학 심포지엄’이 크게 공헌하였다.


 

 

 

 

 

 

 

 

 

 

 

 

 

 

 

 

학회30주년 기념사업으로 1982년 제1회 서울 국제 반도체 물리학 심포지엄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