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동과 출범(1946 - 1959)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물리교육과는 1946년 대구사범대학 물리화학과로 시작하였다. 물리화학과는 1949년까지 물리학과와 화학과가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어 있었다. 당시는 해방 직후의 혼란 속이라 일정한 교과과정조차 없이 강사 중심의 강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초창기의 혼미한 상태는 전임교수의 취임으로 조금씩 정상궤도를 찾기 시작했다.
  1946년에 정기호, 1947년에 손계술, 1948년에 최종락이 취임하여 물리학과의 기반이 만들어졌으며, 학생들은 교과서와 참고서적을 구하기가 어려워 교재를 사진판으로 복사하여 사용하면서도 새로운 지식의 습득에 전력을 다하였다. 당시 학장서리였던 손계술은 물리교육과를 충실하게 운영하기 위해 우수강사 초빙에 동분서주하였다. 한준택(韓俊澤), 조병하 등 저명한 인사들이 강사로 초빙된 것도 바로 이 때였다.
  당시 학과 주임이었던 정기호는 역학, 열역학, 양자역학 등 주로 이론과목을 담당하였고, 최종락은 광학과 전자기학을, 손계술은 일반물리학과 분광학 등 주로 실험물리 과목을 담당하였다. 당시에는 실험 학습이라고 해도 구대구사범학교에 남아있던 약간의 실험기구로 실험을 하는 정도였다. 6인치의 오실로스코프, 일제 소형 분광기 등에 의한 실험이 고급 실험에 속할 정도였다. 교수와 학생은 혼연일체가 되어 면학에 열중하여 물리학과의 기반을 굳혀 나갔다.
  이처럼 빈약했던 초창기 물리학과가 육이오전쟁과 그 후유증 속에서도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51년 10월 경북대학이 국립대학으로 정식 출범하고, 1953년부터는 학과에 UNKRA 원조에 의하여 실험기기가 도입되면서부터였다. 요즘 기준으로는 학생실험용에 불과했지만 당시 이 기기는 학생실험은 물론 교수연구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실험기기의 도입과 함께 1955년 구과학관이 신축되었다. 이때부터 비로소 교수들은 연구실과 분리된 실험실을 갖게 되었고, 물리학과로서의 면모를 조금씩 갖추게 되었다.
  이 외에도 외국으로부터의 연구 기자재의 도입이 이어졌다. 1956년에는 미국 밴더빌트대학에서 실험기기(주로 교육용)를 기증했고, 방사능측정 계수장치와 영국 힐저회사의 분광기, 미국 테크트로닉스사의 7n초 오름시간을 가지는 오실로스코프, 기타 정밀측정기기들을 갖추게 됨으로써 본격적인 연구활동이 가능하게 되었다. 당시의 교수진은 앞에서 언급한 손계술, 정기호, 최종락 외에 박봉두(朴奉斗, 1954년 취임, 3회 졸업생), 이자현(李自鉉, 1955년 취임, 1회 졸업생)이 보강되었다. 특히 이때 풀브라이트 교환교수로 근무했던 허드슨은 물리 학과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에서 기체방전(Streamer 이론) 연구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허드슨은 1958년에 내한하여 경북대학교 물리학과에서 기여 하였다. 처음 4년 동안은 풀브라이트 교수로, 그후 1년간 일시 귀국하였다가 다시 내한하여 1966년 영구 귀국할 때까지 외국인 교수로 근무한 허드슨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전자공학 및 전자공학 실험 강좌를 개설하였다. 미국인으로서는 그리 크지 않은 체구에 일생 독신으로 지낸 그는 물리교육과, 나아가 육이오전쟁으로 황폐했던 당시 우리나라의 전자공학 발전을 위해 헌신적인 수고를 하였다. 그는 미군부대에서 불하받은 많은 기자재와 측정장치를 전자공학 실험에 도입하여 한국에서 전자공학과 창설의 태두적 역할을 하였다. 당시 이 벽안의 교수로부터 배운 사람들 중에는 이우일(李宇一, 전자공학과 명예교수), 오철한(吳喆漢, 물리교육과 명예교수), 손병기(孫炳基, 전자공학과 명예교수), 김삼묘(金三卯, 컴퓨터공학과 교수)와, 정대현(鄭大鉉, 전 IBM 기술상무) 등 오늘날 우리나라 전자공학계의 지도자들이 다수 있다.
당시 교수들의 연구분야는 다음과 같았다. 손계술은 학장직(1952 - 1957)을 겸하면서도 연면방전(沿面放電)에 따르는 초고주파 발생에 관한 연구를, 정기호는 광자산란 이론을, 광학연구실의 최종락은 전해질용액 내의 방전현상의 분광분석 및 무기물질의 분광분석 등을, 박봉두는 Ni막대의 자왜진동(磁歪振動) 및 초음파가공기의 제작에 관한 연구를, 그리고 이자현은 플라스마 물리학에 관한 연구를 주로 하였다.

물리교육 혁신의 선봉(1960 - 1971)
  1960년대는 우리나라에 새로운 미국의 과학교육 사조가 도입된 시기이다. 물리교육과에 소속된 교수들은 이 교육사조 도입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허드슨은 당시 미국 과학교육 개혁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던 PSSC 교과서와 교사지침서, 실험지도서를 국내에서는 최초로 입수하여 물리교육 학과 교수들에게 소개하였다.
  PSSC 교육과정은 1955년경 미국과학재단(NSF)의 지원으로 MIT 물리학 교수들을 중심으로 개발된 것으로서 종래의 교육과정과는 전혀 다른 방향과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PSSC의 내용과 철학이 우리나라의 과학교육 발전에 크게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되어 물리학과의 교수들은 이 교육과정의 연구와 국내 소개에 전력을 기울였다. 허드슨, 최종락, 이자현, 박봉두 등의 노력은 마침내 주한 USOM의 지원을 받아 1959년 국내에서는 최초로 과학교사들에게 이 과정의 소개강습을 하게 되었다. 이어서 아시아재단, 유네스코, 유니세프 등의 외국기관의 지원을 받아 처음으로 강습회 및 세미나를 개최하였고 이 운동을 전국적으로 파급시키는 진원지의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1969년 12월 18일 “과학교육과정연구소”(초대 소장 최종락)가 시작되면서 좀더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운동에 참여한 교수들의 노력은 마침내 문교당국을 움직였고, 그 후원으로 과학 교사들을 정기적으로 연수 또는 재교육을 하게 되어 우리나라 과학교육 혁신의 계기를 조성하였다. 연구소에서는 문교부와 유니세프의 후원으로 1970년 5월 14 - 16일까지 “과학교육과정 개편에 관한 협의회”를 개최하여 “과학교육과정 개편의 기본방침”을 정하여 문교당국에 건의하였다.
  물리교육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물리학 분야에 대한 교수들의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최종락은 광학 및 분광학을 연구하였고, 이자현은 1964년 미국 밴더빌트대학에서 “Flux Transport by a Plasma”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귀국 후 물리전공 주임직을 역임하다가 1969년 사임하고 재차 도미,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플라스마에 관한 연구를 하였다. 1966년 11월 1일에는 손병기가 부임하였으나 문리과대학 전자공학과 신설과 함께 1969년 2월 26일자로 전근하였다. 그후 공과대학의 창설과 더불어 손병기는 공과대학 전자공학과에서 근무하다가 2001년에 정년퇴임하고, 현재는 대구예술대학교 총장으로 있다. 손병기의 뒤를 이어 1969년 3월에는 사대부고에 근무하던 오철한이 전임강사로 부임하였고, 그 뒤를 이어 1971년에는 고재걸(高在杰)이 부임하여 이론물리학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한편, 1962년에는 정부의 방침으로 사범대학이 없어짐에 따라 물리교육과도 폐지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과학교육학과 물리전공으로 부활하는 사건을 겪기도 하였다. 학과의 창립 25년을 지나면서 물리교육과는 활발한 물리교육 및 물리학 분야에서의 연구와 더불어 국내외 교육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동문들을 엮을 동문회 발족의 필요성이 점증하였다.

물리학 연구의 박차(1972 - 1987)
  1970년대에는 학과의 교수들을 중심으로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의 개편을 위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최종락은 “과학교육과정연구소” 소장(1969. 12 - 1972. 1), 사범대학 학장(1971. 9 - 1973. 9)을 역임하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과내 교수들과 공동으로 초·중등 과학교육과정 및 평가, 현황조사 등의 연구를 수행하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연구는 당시 우리나라의 과학교육과정 개편 작업에 결정적으로 공헌하였을 뿐 아니라 일선 교사들의 학습지도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1973년에는 17회 동문인 박덕규(朴德圭)가 부임하였고, 본격적인 연구활동과 함께 과학교육에 대한 종합적인 계획이 수립되었다. 또한 국제개발협회(IDA) 차관에 의한 실험기기의 도입, “과학교육과정연구소”를 “과학교육연구소”로 개칭하는(1973. 4. 1) 등 물리교육 및 물리학 연구가 현저하게 강화되어 학과가 발전하게 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특히 실험기기는 학생 실험뿐만 아니라 교수 연구에도 사용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도입되었다. 실험실도 일반물리실험실, 전자기실험실, 광학실험실, 현대물리실험실, 공작실 등으로 확장되었으며 시청각 교재와 같은 교육공학적 시설도 구비되어 학습지도 방법이 다양해지고 탐구수업에 대한 훈련도 더욱 충실해졌다.
  한편 각 교수들의 일선교사 현장지도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최종락은 일선교사 장학지도를 통해 탐구수업 방법의 보급에 힘쓰는 한편 저서 『과학교육신강(科學敎育新講)』을 통해 탐구학습의 이론과 지도방법을 널리 소개하였다. 또한 박봉두와 오철한도 과학교육연구소의 제반사업을 발전시키는 한편, 일선 학교를 방문하여 탐구수업법을 직접 지도하고 새로 도입된 과학기기의 조작에 대한 지도를 하는 등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1977년 11월에는 20회 동문인 석호천(石鎬千)이 학과 조교수로 부임하였다. 당시에 흔치 않았던 실험 핵물리학으로 캐나다 오타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석호천은 1979년 3월 모교를 사임하고 대덕 “핵공단”으로 임지를 옮겼다.
  1981년부터는 졸업정원제의 채택으로 학부의 모집정원이 39명이 되었는데, 남자들은 군입대를 제외하고는 전원 교사발령이 났을 뿐 아니라 사립학교에서의 구인 의뢰에 응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교수들의 연구활동도 괄목할 만하게 증가하였는데, 최종락, 박봉두는 과학적 사고력 신장을 위한 학습지도 방법이나 과학교육의 성취도 평가에 관한 연구활동을 통해 과학교육 발전에 진력하였다. 오철한은 1981년에는 교환교수로 도미하여 햄프턴대학에서 양자전자공학을 연구하여 HCP를 이용한 색소레이저 개발에 전념하였다. 고재걸은 1970년 하와이대학에서 소립자론을 연구하였으며, 1975년엔 이탈리아 로마대학에서 이론물리학(소립자론)을 전공하여 이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박덕규는 1976년부터 4년간 일본 교토대학에서 플라스마 연구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83년에는 이 학과 30회 동문으로 한국과학기술원에서 반도체물리학을 전공한 양승훈(梁承勳)이 조교수로 부임하였다.

1세대의 교체와 도약(1988 - 2001)
  창립 40여년의 성상을 지나면서 물리교육과에도 세대교체가 시작되었다. 학과 발전과 역사의 산 증인인 최종락은 1988년에 정년퇴임을 하였다. 그는 경북대학교 물리교육과의 발전에만 공헌을 한 것이 아니라 국내 과학교육에 이바지한 바가 지대하였기 때문에 1987년 8월에 정년퇴임을 기념하여 한국물리학회에서는 퇴임기념 물리교육 학술발표회를 열었다. 또한 4년 뒤에는 박봉두가 정년퇴임을 하였다(1992. 2). 그의 물리교육 분야에 대한 공로를 기려 1991년 8월에는 물리교육분과 주관으로 정년퇴임 기념 물리교육 학술발표회가 열렸다.
  두 원로교수의 정년퇴임에 이어 새로운 교수들을 영입함으로 학과는 또 한번 힘찬 도약을 시작하였다. 물리교육과 28회 동문인 이상법(李相法)이 1987년 미국 퍼듀대학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을 거친 후 조교수로 부임하였다.
  양승훈은 1990년 8월부터 2년간 유학하고 귀국후에는 기존의 고체물리학 연구에 더하여 과학사에서 창조론 논쟁을 포함한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과학교육에서 과학사적 학습지도에 관한 연구를 하였다.
  1993년에는 손상호(孫相豪)가 부임하였다. 일본 오사카대학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경북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였다. 초창기의 몇몇 교수들을 제외하면 40여년 만에 처음 타학과 출신으로 물리교육과 교수가 된 손상호는 학과에 부임하기까지 이미 전기장에 의한 반도체 발광소자에 대한 연구로 20여편에 가까운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한 바 있다.
  오철한은 색소레이저 펌핑 물질과 물리교육에 관한 여러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고재걸은 입자물리학 및 물리교육을 연구하였다. 이 기간 동안 최종락, 고재걸, 양승훈과 신병현은 제 5차 교과과정에 따른 고교 물리교과서를 공저하여 교육부 검인정 교과서로 채택되었다. 이상법은 미국 퍼듀대학 및 에머리대학에서 방문교수로(1995.3 - 1996.2) 근무하면서 전산모사 방법으로 분자살을 이용하여 반도체박막을 제작하는 과정을 연구하였다.
  물리교육과는 물리교육 분야에서도 명실공히 전국 최고의 학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였다. 최종락, 고재걸, 이상법, 신병현이 제6차 교육과정에 따라 공저한 고등학교 물리 I, 물리 II 교과서가 교육부 검인정 교과서로 채택되었다. 양승훈은 과학사적 학습지도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여 『과학교육과 과학사』란 책을 출간하였다. 개별적인 연구에 더하여 학과 교수 전원이 연구원으로 참여한 “과학교육연구소”를 통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교육부로부터 우수연구소로 지정된 경북대학교 “과학교육연구소”를 중심으로 중등 물리교육 현장에서 필요한 탐구실험 세트를 개발하는 연구가 3년간의 과제로 수행되었다.
  한편, 만 14년간 근무해 오던 양승훈은 1997년 10월에 물리교육과를 사임하였다. 그 후임에는 박윤배(朴允培)가 조교수로 부임하였다. 박윤배는 물리교육과 30회 동문으로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1990년에 과학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 부산에 있는 고신대에서 6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경북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근무한 최초의 교과교육학 박사학위 소지자이다.
  이 시기에는 학부 학생들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1997년에는 학과가 교육부의 구조조정으로 과학교육학부 물리교육전공으로 개편되었으며, 중학교 과학과목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공통과학자격증이 새로 생기게 되어 그에 따라 학생들은 물리교육 전공과목 외에 공통과학 자격증을 위한 과목들을 이수하게 되었다. 학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새로 만들어진 교사임용시험에도 매년 좋은 합격률을 보이고 있다.
  이 기간동안에 물리교육과 교수들의 교내 행정봉사를 보면, 박덕규가 기획연구실장(1998)으로, 고재걸이 사범대학장(1997 - 1999)으로, 오철한이 과학교육연구소장(1997 - 1999)으로, 이상법이 과학영재교육센터 소장(1999 - 2000)으로 각각 재임한 바 있다. 여러 가지 일로 분주한 가운데서도 학생들의 MT때는 전교수가 참가하여 사제간의 정을 나누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박윤배는 과학교육에 대한 연구로서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중등 과학과에서 수준별 교육과정의 학습지도 방안”, “물리과 교육학 교재개발연구”, “중학교 과학교과서의 국제비교”, “교실붕괴현상의 실태분석과 그 대책”과 같은 연구를 수행하였다. 교육대학원 석사과정생들로 이루어진 연구원 대부분이 현장 교사인 관계로 그들과 함께 학교현장의 문제들을 연구주제로 삼고 있다.
  한편, 1998년 3월 동문회 총회에서는 도태기 교육장(13회)을 동문회장으로 추대하였고, 2000년 6월 총회에서는 안동대 손연규(14회)를 동문회장으로 선출하였다. 교육현장에서 학과 출신 동문들의 활약도 뛰어났는데, 대구시 교육청의 경우 시교육청 과학평생교육과장, 대구시 교육과학연구원장, 대구과학고 교장이 모두 물리교육과 출신들로 이루어질 정도였으며, 동문들로 구성된 물리나루팀은 홈페이지를 통한 사이버활동과 문제집 발행, 연구회 활동 등의 탁월한 업적을 기록하고 있다. 한편, 남효덕(23회)은 후배들을 위해 매년 지급되는 덕성장학금을 출연하기도 하였다.

2세대의 교체와 재도약(2002 - )
  2002년 2월에는 이 학과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왔던 오철한과 고재걸이 정년퇴임을 하게 되었다. 이들의 동시 퇴임은 학과의 2세대의 퇴진을 의미한다. 이들의 빈 자리를 채울 새로운 신임교수는 학과의 재도약을 위해 좋은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1969년에 시작된 동문회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여 지금까지 1000여명의 동문을 배출하였다. 이중에서 중등학교 교장급 45명, 교감급 42명, 대학교수 48명 등으로 대부분 학교에서 교육과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동문회원들 중 박사학위 소지자가 65명, 석사학위 소지자가 122명에 이르고 있다. 교육대학원 물리교육전공은 그동안 1971년 첫 졸업생을 낸 이후로 100명이 넘는 석사를 배출하였으며, 2002년 현재 30명의 재학생을 보유하고 있는데 매년 학생이 늘고 있다. 교육대학원은 입학 경쟁율이 2 - 3대 1이 될 정도로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경북대학교 물리교육과는 교육대학원을 통한 후진양성에 머물지 않고, 과학교육학을 전공하는 인력의 양성을 위해 2003학년부터 일반대학원에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가진 과학교육학과를 신설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물리교육과로서 지난 반세기동안 최고의 물리교사와 물리학자를 양성하는 데 전념해 온 경북대학교 물리교육과는 이제 다음 반세기를 향한 또 한번의 힘찬 도약을 시작하고 있다.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물리교육과는 1946년 대구사범대학 물리화학과로 시작, 1951년 경북대학교에 병합 물리학과로 분리.

 

 

 

 

 

 

 

 

 

 

 

 

 

 

 

 

 

 

 

 

 

 

 

 

 

 

 

 

 

 

 

 

 

 

 

 

 


1962년 폐과 1963년 과학교육학과 물리전공으로 복과. 1981년 물리교육과로 개편. 1997년 과학교육학부 물리교육 전공으로 개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