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학교에는 서울캠퍼스 이학부 내에 물리학전공이, 수원캠퍼스 전자정보학부 내에는 물리 및 응용물리 전공이 있고, 양 캠퍼스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대학원 물리학과가 있다. 서울캠퍼스 학사과정은 1959년 수물학과로, 수원캠퍼스 학사과정은 1980년 물리학과로 출발한 후 몇번의 편제개편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고,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은 각각 1966년과 1969년에 설치되었다. 2001년 현재까지 배출한 졸업생은 학사 약 1700명, 석사 220명, 박사 40명에 이른다. 2003학년도부터는 서울캠퍼스의 이학부는 문리과대학에서 독립하는 이과대학에 소속된다.
  교수들은 물리학회의 학술활동에 적극 참여해왔을 뿐 아니라, 물리학과에 재직한 전임 교원 중 세명이 물리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학회의 행정적인 면에도 큰 기여를 했다. 1990년에는 수원캠퍼스에서, 2001년에는 서울캠퍼스에서 물리학회 정기총회 및 학술발표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경희대학교는 국내에서는 비교적 빠르게 1990년대초부터 박사후연구원 제도를 도입하였는데, 그동안 근무했던 박사후연구원 15명 가운데 대부분이 지금은 경희대학교와 타교의 전임으로 교육과 연구에 헌신하고 있다.
  연구에 관한 한 경희대학교 물리학과는 유럽형 대학의 연구형태를 지향하고 있다. 숫적으로 많은 교수들에 의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정예 교수들이 특성화된 2, 3개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학과의 연구에 대한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유아기 (1959 - 1965)
 
경희대학교 물리학과는 1959년 2월 경희대학교의 전신인 신흥대학교 문리과대학 내의 수물학과로 신설 발족하였다. 1960년 신흥대학교는 경희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고, 이 당시의 전임교수로는 원자핵물리학 분야의 이영재(李永在, 1960. 9 - 1962. 2, 1971. 8 - 1990. 8), 오세웅(吳世雄, 1961. 4 - 9), 핵물리학의 윤세원(尹世元, 1961. 10 - 1979. 2, 부총장, 물리학회 회장 역임)이 있었다. 1963년 수물학과를 물리학과와 응용 수학과로 분리하여 본격적인 물리학과 체제가 되었으며, 고체물리학 실험의 김태만(金太晩, 1963. 3-1994. 2), 고체물리학의 김희규(1964. 3-1969. 3, 물리학회 회장 역임), 광학 실험의 현재경(玄在慶, 1965. 3-2000. 8)이 새로 부임하게 되었다. 학과의 규모는 수물학과 당시 정원 40명이었으며, 물리학과로 분리할 당시 15명으로 시작하여, 25 - 30명 수준의 입학 정원을 유지하였다.

양적 성장기 (1966 - 1979)
  1966년 3월 대학원 석사과정이 신설되었으며, 1969년 박사과정이 신설되었다. 이 당시 새로 부임한 전임교원으로는 응용물리학 실험분야의 최경석(崔京錫, 1967. 3 - 1995. 2), 원자핵 이론의 전일동(全一東, 1970. 4 - 1971. 2), 고체물리학 분야의 이충희(李忠熙, 1971. 2 - 1977. 4, 물리학회 회장 역임), 원자핵 물리학의 이영재(李永在, 1971. 8 - 1985. 8), 입자물리학 이론의 정복근(鄭福根, 1977. 8 , 학회 이사), 천체물리학의 조경철(趙慶哲, 1979. 3 - 1985. 7)이 있다. 당시에는 20 - 30명 정도 정원의 물리학과를 유지하였다. 대학원은 석사 4 - 10명, 박사 3명의 정원을 유지하였으나, 1977년 계열별 정원으로 통합되어 2002년에 이르고 있다.

질적 도약기 (1980 - 1990)
  1980년 경희대학교 수원캠퍼스에 이공대학 물리학과가 신설되었다. 이 시기에 서울캠퍼스에는 입자물리학 이론의 신현종(申鉉鍾, 1981. 3, 학회편집간사 역임), 고체물리 실험의 장 진(張 震, 1982. 8 , 학회사업간사), 통계 물리의 김 엽(金 燁, 1986. 3, 열 및 통계물리학분과 위원장 역임)이 새로 부임하였으며, 수원캠퍼스에는 하병준(河秉俊, 1981. 3 - 1997. 2), 통계물리학의 한성철(韓誠徹, 1982. 8), 서울에서 수원으로 옮긴 이영재(1985. 9 - 1990. 8), 고체물리학 이론의 임헌화(林憲華, 1985. 9), 비선형물리학의 신규승(申奎承, 1985. 9)이 새로 부임하게 되었다. 대학원은 서울 - 수원이 통합 운영되었고 현재까지도 그러하다. 1980년대에는 어수선했던 당시 사회분위기를 반영하듯 교육편제가 수시로 바뀌게 되었다. 1981년 계열별 모집으로 바뀌어 서울캠퍼스는 수·물·화·생·지리 계열로 260명을 모집하였고, 수원은 수·물·화·환경 계열로 221명을 모집하였다. 또 1982년에는 서울은 수물계열로 104명을, 수원은 수·물·화 계열로 156명을 모집하였고 다시 1983년부터는 학과제로 환원하여 서울 (1983년 - 1985년: 52명 1986년 - 1987년: 50명, 1988년 - 1993년: 40명)과 수원(1984년 - 1987년: 52명, 1988년: 50명, 1989년 - 1998년: 60명)에서 각각 모집하였다.

제2차 도약기 (1991 - 2001)
  1992년 전국 물리학과 평가가 있었다. 이에 따라 전국의 많은 물리학과들에서 교수 충원이 있었는데, 경희대학교에서도 서울 캠퍼스에 고체물리학 실험의 유건호(劉建虎, 1991. 9, 학회편집위원 역임), 입자물리학 이론의 남순건(南淳建, 1992. 3), 입자물리학 이론의 박규환(朴圭煥, 1992. 9 - 2001. 8), 수원캠퍼스에는 반도체물리학의 최석호(崔石鎬, 1991. 3), 원자핵물리학 이론의 이석준(李碩濬, 1992. 3 ), 광전자물리학의 정해양(鄭海陽, 1992. 3 ), 반도체 물리학의 최정우(崔正雨, 1992. 3 )가 1991 - 1992년에 일시에 부임하게 되어 양적, 질적 팽창이 있었다. 이후에도 서울캠퍼스에 고체물리 실험의 김영동(金榮東, 1994. 9, 학회편집위원), 입자물리학 이론의 정진모(鄭珍謨, 2001. 3 )와 수원 캠퍼스에 반도체 분광학의 이호선(李浩善, 1995. 9)이 각각 부임하여 학과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국내대학 최초로 경희대학교에서 연구박사제를 도입하여, 이후 16명의 박사후연구원들이 경희대학교에서 연구하였으며 이중 4명은 경희대, 성균관대, 연세대, 경북대학교의 전임교수가 되었다. 학부 정원은 서울은 1995 - 1996년 65명이었고, 1997년 이후 학부제를 도입하여 현재까지 수·물·화·생 전공의 이학부 총230명의 정원을 유지하고 있으며, 2학년 진급시 전공을 정하게 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매년 40 - 50명의 학생이 물리학 전공을 선택하고 있다. 수원은 1999년 총정원 395명의 전자정보학부내 물리 및 응용물리학 전공으로 되었다. 공학과 함께 있음에 기인하여, 매우 적은 수의 학생이 물리학을 전공하고 있다. 특히 1999년 9월부터 2002년 7월 현재까지 물리학과는 학술진흥재단의 BK21사업의 지원을 받아 대학원 교육환경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총 7명의 교수가 참여하고 있으며, 참여 대학원생은 15명 정도이다.

근황 및 비전
  물리학의 목표는 자연의 기본원리를 실험 및 이론적 방법을 써서 탐구하고, 나아가 얻어진 지식을 새로운 과학기술과 연결시키는 데에 있다. 더욱이 현대과학의 모든 분야에서 물리학은 기본적인 언어의 구실을 하기 때문에 물리학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없이는 이학 - 공학 - 의학계의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 학문을 이해하기 어려워질 것이고, 인문, 사회 계열의 학생들도 현대 과학문명과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리학에 대한 최소한의 소양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경희대 이학부의 물리학 전공은 이와 같은 물리학의 교육 및 연구활동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만들기 위하여, 교수확충 등의 발전 방안을 구축하고 이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2년 현재 물리학과 교수는 총 16인(서울, 수원 각 8인)으로서 충분치는 못하나 학생들에게 양질의 강의를 제공하려 노력해 왔다. 근래에는 BK21 핵심사업에 서울캠퍼스 7인의 물리학과 교수들이 참여하여, 대학원 교육여건을 확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치, 의학 대학원을 지향하는 학생들이 이학부에 들어올 경우를 대비하여 교수 충원이 요구되고 있다.
  경희대학교 물리학과에서 국내외에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분야는 디스플레이 관련 분야이다. 우리나라는 정보디스플레이 분야의 생산 1위국으로 국내 산업생산의 약 7%를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나 소재개발, 장비개발 및 기초연구 등의 인프라 구축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경희대학교 “차세대 디스플레이 연구센터(소장 : 장진)”는 첨단 평판디스플레이산업의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기 위해 5년간 (2000. 6 - 2006. 5) 산업자원부를 비롯한 산·학·연·관으로부터 출연된 사업비를 기반으로 디스플레이용 핵심공정장비 구축, 소형 디스플레이의 시제품 제작, 디스플레이 부품·재료의 성능평가 및 연구인력양성을 지원하기 위해 2002년 3월 설립되었다. 정보디스플레이 연계전공은 물리학과와 긴밀한 연계성을 유지하며 경희대학교에 구축된 차세대 디스플레이 연구센터(ADRC) 및 국가지정연구실(NRL)의 우수한 실험장비와 국내의 산업체 인프라를 이용하여 전문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는 물리학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예로 꼽히고 있다.
  이러한 연계전공인 정보디스플레이 전공과 연계될 수 있는 발전계획과 더불어, 보다 장기적인 발전방안으로 경희대학교 물리학과는 새로운 물리분야의 개척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 수년전 이학부 발전계획안을 작성하였으며, 여기에는 한의물리학분야 또는 의공학 전공이 포함되고 있다. 치, 의학 대학원제도가 정착하게 되면, 이런 분야의 교수가 있는 이학부에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며, 경희대학교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양자암호, 양자 전산 등의 전공이 새로운 분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검토되고 있다. 이를 위해 물리학 심화 전공의 학생들 위주로 만들어져 있는 현재의 교과과정을 앞으로는 치, 의학 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둔 학생들, 또한 정보디스플레이, 또는 나노과학 전공학생들 및 이의 복수전공학생들까지 고려한 새로운 교과과정으로 확충할 것이다. 이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의 교과과정을 제공하여, 다양한 학생들의 선택의 폭을 넓혀줄 것이다.


 

 

 

 

 

 

 

 

 

 

 

경희대학교 물리학전공(서울)은 1959년에, 신흥대학교 수물학과로 시작, 1960년 교명 변경후 1963년 물리학과로 독립. 물리 및 응용물리전공(수원)은1980년에 이공대학 물리학과로 개설되었으며, 양 캠퍼스가 공동운영하는 대학원은 석사과정 1966년 박사 과정 1969년에 설치.

 

 

 

 

 

 

 

 

 

 

 

 

 

 

 

 

 

 

 

 

 

 

 

 

 

 

 

 

경희대학교 이학부 물리전공 교수들. 왼쪽부터 장진, 김영동, 김엽, 현재경, 정복근, 신현종, 유건호, 남순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