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물리학과와는 별도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는 물리화학과가 설립되었는데, 이 학과는 1947년부터 물리학과와 화학과로 분리하여 신입생을 모집하였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의 전신은 경성사범학교 본과 과정이다. 해방 직전에 경성사범학교 본과는 3년제 전문학교 과정으로 개편되어 한국인과 일본인을 반반씩 선발하였다. 학비는 전액 국고에서 지출되었으며 학생 1인당 상당액의 금액을 보조하였다.
  8·15 해방후 경성사범학교는 대학 승격을 목표로 예과부를 신설하여 문과와 이과를 두었다. 그런데 일본인 학생들의 귀국으로 재학생수가 정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자, 해방되던 해 11월에 편입생을 모집하였다. 이과에서는 80명을 모집하여 2개반을 편성할 예정이었는데 400명이 지원하는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당시 이과에는 1개반이 있었는데 모두 3개반을 편성하여 강의를 시작하였다. 개학 당시 교수는 일반물리학 담당의 신효선(辛孝善), 수학을 담당한 정봉협(鄭鳳浹)·정의택(鄭義澤), 국어를 담당한 이택(李澤) 등 이었다.
  1946년 국립서울대학교가 드디어 개교하였다. 하지만 당시 학생들의 등록을 지도하던 교무과장 이종수(李鐘洙: 후에 사대학장 역임)로부터 의외의 사실이 통고되었다. 예과부(豫科部) 이과 1년 수료자 120명 중에서 학업성적이 상위 10%에 속하는 자는 학부 1학년으로 진급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례조치를 받은 자는 10여명이었는데, 물리화학과(내용적으로는 물리전공과 화학전공으로 분리) 1학년에 5명, 수학과 1학년에 1명, 생물학과에 몇명이 있었다. 서울대학교 개교당시 사범대학의 재학생은 학부 3학년까지만 있고 4학년에는 재학생이 없었다. 1947년 9월에 열린 졸업식이 서울대학교의 제1회 졸업식이었으나, 사범대학에서는 다음해인 1948년에 제1회 졸업생이 나오게 되었다. 따라서 서울대학교 전체와 사범대학과는 1회의 졸업 회수의 차이가 생겼다. 서울대학교 개교 당시 사범대학 물리학과 학과장에는 김장석(金章石: 화학전공)이 담당하였으며 3학년에는 재학생이 없었고, 2학년에는 2명 유경로(兪景老: 물리전공, 서울대학교 천문학과 교수)와 강용환(姜鏞煥: 화학전공, 공주사대 교수)이 있었다. 물리화학과 1학년에는 5명(물리전공 2명, 화학전공 3명)이 재학하였다. 사범대학 물리화학과 제3회 졸업생이 된 이들 5명 가운데 물리전공자 2명은 정창희(鄭昌熙: 서울대학교 기상학과 교수)와 김순식(金淳植: 건국대학교 교수)이며, 화학전공자 3명은 이원식(李元植: 서울사대 화학과 교수), 한용국(韓龍國: 서울사범대학 교수, 부산공전 교장, 동양공전 교장), 최순백(崔淳伯: 재학중 국가약사시험 합격, KBS 방송요원 시험합격 등 다재다능했던 인물)이었는데, 최순백은 육이오전쟁 중 젊은 나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개교와 동시에 신학기가 시작되었으나, 국대안 반대 동맹휴학, 교수 부족 등으로 강의는 지지부진하였다. 당시 사범대학 물리화학과에는 물리전공 교수가 전무한 상태여서 서울대학교 종합안에 따라 문리과대학 물리학과 강의를 청강하게 되었다. 일반물리학 강의는 박철재가 담당하였다. 물리학실험은 김종철이 담당했으며 실험실은 공업연구소 안에 마련되었다. 고등미적분은 최윤식(崔允植)이 담당하였다.
  1947년이 되면서 사범대학에도 물리학 전임교수들이 부임하게 되었다. 이낙복(李樂馥: 도쿄대학 천문학과 졸)이 일반역학을 담당했으나, 육이오전쟁 중 월북 평양천문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고신득(高辛得: 일본 기상기술원양성소 졸)은 열역학을 담당했는데, 그 역시 육이오전쟁 중 북으로 갔다. 국대안 반대로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떠나 연희대학교로 옮겨갔던 한인석을 사범대학 강사로 초빙하여 전자기학 강좌를 개설하게 되었으며, 문리과대학 물리학과 학생들도 이 강의를 청강하였다. 이기억이 담당하던 양자역학 강의는 청량리 구 예과교사에서 청강하였다. 1946년 특례조치의 혜택을 받지 못해 1년 후배가 된 동기 입학생들은 육이오전쟁으로 대부분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고 남북으로 각기 흩어지는 신세가 되었는데, 김근수(金根秀: 서울출신)와 장세희(章世熙: 경남출신)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1950년 5월 12일, 육이오전쟁이 발발하기 한달여 전에 서울대학교 제4회 졸업식(사범대학은 제3회 졸업식)이 동숭동 문리과대학 교정에서 거행되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물리학과는 1946년 물리화학과로 설립된 후 1947년에 물리학과로 분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