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혁
  수원에 위치한 아주대학교는 1965년 한국과 프랑스 정부사이에 체결된 “한불 문화 및 기술협력에 관한 협정”과 1971년 12월에 체결된 “한불 기술 초급대학 설립에 관한 협정”에 의거하여 1973년 3월 2년제 공업초급대학으로 설립되었고, 1년 뒤인 1974년 3월 4년제 아주공과대학으로 승격하였다. 1977년에는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이 학교법인 대우학원을 설립하여 아주공과대학을 인수하였고, 4년 후인 1981년 3월부터 종합대학인 아주대학교로 발전하게 되었다.
  종합대학으로 승격된 아주대학교에는 당시 공과대학, 경영대학 및 인문사회대학의 3개의 단과대학과 대학원만이 있었으며 공과대학내에는 물리 및 화학공학계, 환경 및 생물공학계, 수학 및 정보공학계의 3계열을 두었다. 물리 및 화학공학계는 다시 기계 및 재료공학부, 물리 및 전기전자공학부, 화학 및 화학공학부로 세분화시켜 학생들의 희망에 따라 전공을 선택하게 하였다. 이는 오늘날의 학부제와 매우 유사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특정분야에 학생들의 선호가 집중되는 등 장점보다는 단점이 지적되어 2년 후 백지화되고 모든 학과가 분리 독립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84년 3월 문리과대학 내에 물리학과가 신설되어 30명의 학생이 입학하였다. 1987년에는 이과대학이 설립되어 소속이 변경되었고, 이해에 물리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이 신설되었다. 1989년에는 대학원 박사과정이 설치되어 교육과 연구 모두가 가능한 학과로 발전하였다. 1991년에는 이과대학의 명칭이 자연과학대학으로 변경되었다. 1992년에는 전국 대학의 물리학과의 평가가 대학교육협의회에 의해 이루어졌고 아주대학교의 물리학과는 학부, 대학원의 평가에서 모두 10위권 이내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96년도에는 아주대학교 내에 학부제가 도입되었다. 이해부터 물리학과는 수학과, 화학과, 생명과학과와 함께 자연과학대학 기초과학부로 통합되어 신입생을 선발하였다. 1997년도에는 학부의 명칭이 자연과학부로 변경되었다. 1999년 9월 아주대학교 내에 교육부 BK 사업의 일환으로 분자과학기술 사업단이 설립되었고 물리학과 교수 8명이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아주대학교에 물리학과가 설립된 1984년에는 입학정원 30명으로 출발하였다. 그 이후에 입학정원은 1988년 40명, 1994년 50명으로 증가하였다. 학부제가 시행된 1996년에는 4개 전공(학과)이 소속된 기초과학부는 200명의 정원을 갖고 있었으나, 1998년에는 자연과학부 190명으로 감소하였고, 1999년 9월에 참여하게 된 BK사업의 결과로 인해 자연과학부의 정원은 2000년에 184명, 2001년에 178명, 2002년에는 172명으로 감소하게 되었다. 아주대학교의 물리학과는 1988년에 10명의 졸업생을 최초로 배출하였고, 졸업인원은 그후에 9명(1989), 13명(1990), 22명(1991), 30명(1992) 등으로 증가하였고 그 이후 매년의 졸업생 수는 30여명으로 정상화되었다. 2002년 2월까지의 총 졸업생 수는 403명이다. 2002년 현재까지의 배출인력은 많지 않으나 사회 각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아주대학교 물리학과 졸업생 중에서 김양수, 김용기, 김기출, 이영주, 박경호(2002.8)가 모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타대학으로부터는 이응직(과학기술원), 이민원(Besancon, 불), 홍준기(Nantes, 불), 황창순(러)이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특히 1997년 11월에는 물리학과 동창회가 발족되었다. 김용기가 초대 회장, 전주천이 초대 총무를 맡고 있으며 매년 가을에 동창회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교육, 연구, 교내 교외의 활동
  아주대학교 물리학과는 교육과 연구의 특성화 분야를 광학과 고체물리에 집중하였다. 이는 학생들의 취업을 고려하여 물리학 분야 중 실용적인 분야를 특성화하여 교육한다는 것이 하나의 취지이고, 교수들의 연구가 그룹화 대형화하는 국가적 또는 세계적 취지에 부응하는 것이 두번째이다. 이같은 특성화 정책에 따라 현재 교수진의 구성은 고체물리 이론전공 2인과 실험 7인(겸임교수 1인), 광학 이론 1인, 광학 실험 4인, 플라스마 1인의 교수를 확보하고 있다. 교수들의 임용기록은 다음과 같다.
  김현남(고체물리)은 1973년 초에 부임하여 그해 4월 아주공업초급대학이 개교할 당시에 초대 학장의 업무를 맡았고, 원영희(광학)는 1974년 8월에 교양학부에, 임한조(고체물리)는 1975년 5월에 전자공학과에, 임우영(고체물리)은 1976년 3월에 교양학부에 임용되었다. 그후 전공의 유사성을 고려한 교육, 연구의 협력을 위하여 물리학 전공의 교수들은 1977년 5월 30일에 전자공학과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송용진(고체물리)은 1978년 3월에 전자공학과에, 오수기(고체물리)는 1983년 5월에 전자공학과에 임용되었다. 1981년 2월에 임우영은 고려대학교로 전보하였다. 1984년 3월 물리학과가 독립하게 되면서 김현남, 원영희, 송용진, 오수기의 4인은 물리학과로 소속을 옮겼고 임한조는 전자공학과에 잔류하였다. 원영희는 물리학과가 소속된 문리과대학의 부학장을 맡아 수학, 물리, 화학 3과의 발전에 역할을 하였다. 고근하(고체물리)는 1986년 9월에 부임하였다. 1987년에 문리과대학이 문과대학과 이과대학으로 분리되면서 원영희는 이과대학의 초대학장을 역임하게 되었고 2대 학장에 연임되어 4년간 초창기의 이과대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1991년 3월에는 이과대학의 명칭이 자연과학대학으로 변경되었고 2002년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고근하가 임용된 후에도 물리학과 교수진의 확대는 계속 이루어져 1987년 9월에 신희균(고체물리)이 부임하고, 1988년 8월에는 김상열(고체물리, 광학)이 부임하였다. 정근모는 아주대학교의 시스템공학과에 1987년 3월에 부임하였으나 1989년 10월에 물리학과에 중복 배속하게 되어 겸임교수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어서 1990년 8월에 김영태(고체물리)가 부임하였고, 1991년 3월에 조두진이 부임하였다. 1992년 3월에는 안성혁(광학)과 이순일(고체물리)이 초빙되어 1992년 중반에는 물리학과 교수진의 크기가 12인 규모로 확장되었다. 정근모는 대학원 학과인 에너지학과가 창설되어 1992년 10월에 에너지학과로 전보하였다.
  1993년 9월에는 물리학과가 독립할 당시 전자공학과 소속이던 임한조가 중복배속으로 겸임교수직을 맡게 되었다. 초대 학장을 역임한 김현남은 1994년 2월에 정년 퇴임하고 명예교수로 임용되었다. 그 후임에 김기홍(고체물리)이 초빙되었고 이후 3년간 교수진 11인의 규모를 유지했다. 1997년에는 엄환섭이 대학원(플라스마)으로 초빙되었고, 2002년 3월에는 김범준(고체물리), 이상민(광학)이 임용되었다. 이 결과 물리학과 교수진은 교수 14명, 겸임교수 1명, 명예교수 1명으로 확대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아주대학교의 연구활동은 1978년 3월에 부설기관으로 “종합연구소”가 설치되었고, 교내에 물리과, 화학과가 설치되기 이전인 1980년 8월에 “태양에너지 전환용 재료”를 특성화 분야로 하여 문교부 기초과학연구소 지원사업의 지원대상으로 선정되었다. 그후 1981년 6월 특성화 분야를 “물성과 분자구조”로 하여 교육부의 지원이 지속되었고 물리학과가 1984년에 설립된 이후 1986년 4월에 기초과학연구소가 교내에 설립되었다. 아주대학교 물리학과는 기초과학연구소 지원사업에 의한 지원을 1993년까지 받았고, 1994년부터 3년간은 교육부의 “대학 부설연구소 중점지원 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물리학과의 교수들은 현재 기초과학연구소의 물리학 연구부에 고체물성 연구실, 박막물성 연구실, 이론물리 연구실, 광학연구실, 플라스마과학 연구실의 연구그룹을 구성하여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교수 등의 학회활동 또한 활발하다. 임한조는 물리학회의 편집위원(1993. 4 - 1997. 3), 응용물리 편집간사(1995. 4 - 1997. 3)를 역임했다. 고근하는 물리학회 홍보잡지의 편집위원(1995. 5 - 1998. 4), 원영희는 물리학회의 감사(1999. 3 - 2002. 12)의 직책을 수행하였다. 오수기는 1999년도에 JKPS의 편집간사로 활동하였고, 김영태는 물리학회의 섭외간사(1997. 5 - 1999. 4)와 2001년 1월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총무담당 실무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상열은 물리학회의 홍보잡지 편집위원(1995. 5 - 2001. 4), 광학회의 총무이사, 편집위원 활동을 하였다. 조두진은 한국광학회 편집위원(2000. 5 - 2002 현재), 한국광학회 광정보처리분과 위원장(1999. 9 - 2001. 2), 한국물리학회 광학 및 양자전자학 분과 간사(1998. 5 - 2000. 4), 한국물리학회 광학 및 양자전자학 분과 웹마스터(2000. 5 - 현재) 등의 활약을 하고 있다.
  교수들은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1998년 7월 과학영재교육센터가 교내에 설치되었다. 수학, 정보과학의 두 분야의 교육으로 출발하였으나 물리학 교육은 2001년에 참여하여 오수기가 수고하고 있다. 1998년부터는 경기도 교육청의 위탁을 받아 공통과학 부전공연수, 물리1정 자격연수 과정을 교육하고 있다. 공통과학 부전공 연수는 1998학년도 여름-겨울방학의 기간에 1회 연수를 시행하였고, 2000학년도 겨울 - 2001학년도 여름방학 기간에 다시 1회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물리1정 자격연수는 1999학년도 겨울방학에 그리고 2001학년도 여름방학에 각각 1회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교수들의 교내외 활동사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김현남은 초대학장, 도서관장을 역임하였고, 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전신인 기초과학지원센터(서울 소재)의 초대 센터장(1988. 8 - 1991. 8)을 역임하였다. 이 기간 중에 원영희는 기초과학지원센터 제1기기부장(물리분야)을 맡아서 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기여하였다. 기초과학지원연구원은 1992년 12월에 대덕본소가 완공되어 이전하게 되었다. 김현남은 과학재단이사장(1993. 10 - 1999. 3)을 역임하였다.
  정근모는 과학기술처 장관을 2회(1990. 3 - 1990. 10, 1994. 12 - 1996. 7)역임하였고, 이 기간 중 특기할 업적은 국가핵융합 프로젝트의 실현, 고등과학연구원의 설립 등을 들 수 있다. 정근모는 대우그룹의 종합연구소인 고등기술연구원을 설립하는 데 중심역할을 하였고 고등기술연구원이 설립된 1992년 7월부터 1995년 4월까지 초대 원장직책을 맡았다. 그는 2000년 2월에 아주대학교의 교수를 사임하고 호서대학교의 총장으로 부임하였다.
  원영희는 아주대학교 문리과대학 부학장, 초대 및 2대 이과대학장(1987. 3 - 1991. 2)을 맡아 신설된 이과대학(자연과학대학)의 기초를 다지는 데 기여하였고, 송용진은 5 - 6대 자연과학대학장(1995. 3 - 1999. 1)으로 자연과학대학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고근하는 아주대학 부설연구소인 영상표시연구소를 설립하여 초대 연구소장(1995. 9 - 1999. 3)으로 활동하였고 대우그룹 내의 오리온전기와 아주대학교의 산학협동연구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후 영상표시연구소장은 조두진(1999. 3 - 2000. 3), 고근하(2000. 4 - 2002. 2), 이순일(2002. 3 )이 수행하고 있다. 김상열은 2000년 6월 벤처기업인 엘립소테크놀로지(Ellipso Technology)를 창업하여 연구의 성과를 첨단기업화하였고 이 사업은 성공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아주대학교 물리학과는 1973년 설립된 아주공업초급대학이 1974년 아주공대로 승격되고 대우그룹에 인수되어 종합대학이 된 아주대학교의 공과대학 물리 및 화공학계열로 출발. 물리 및 전기전자 공학부를 거쳐 1984년 물리학과로, 1996년 기초 과학부에 통합, 1997년 자연과학부로 변경. 1987년 석사과정과 1989년 박사과정이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