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업도시 울산을 배경으로 한 울산대학교는 조국근대화의 역군을 교육하기 위하여 제3차 경제개발계획이 한창 진행중이던 1970년에 한국정부, 영국정부 그리고 현대건설주식회사 정주영의 공동노력으로 설립되었다. 울산대학교는 설립 당시부터 교육개혁의 선구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선구자적 개척정신을 바탕으로 1972년에 영국의 산학협동교육제도를 도입하여 국내 최초로 현장실습교육 실시, 1974년 전산학, 영어 부전공제도 시행 등 실험대학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면서 국내 대학 교육을 선도해 왔다. 공학 교육에 있어 물리학, 수학 등 기초과목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여 한때는 물리학을 주당 5시간(공업계열 입학자는 7시간)으로 교육하기도 하였다. 2002년 현재에도 공과대학의 모든 학과가 일반물리학과 일반물리실험을 기초 필수로 지정하고 있다. 울산공과대학은 9명의 교수진으로 출발하였는데, 특히 서말순이 설립멤버로 참여하였다.

유아기
  윤석길, 서말순을 전임교원으로 1972년 공과대학 내에 응용물리학과가 신설되고, 그해 10월에 미국 미주리 - 컬럼비아대학교에서 학위를 취득한 나상균이 학과에 합류하여 학과 발전에 힘썼다. 신설 이듬해인 1973년에 금속공학과와 통합하여 재료공학과로 변신하였다. 그후 1979년에 다시 물리학과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울산공과대학 응용물리학과로 재설립되었다. 당시 부학장이었던 나상균, 초기 학과장 임무빈, 조화석의 노력으로 현재 물리학과의 기반을 이루었다. 학과 신설시 정문성, 김성규, 한성홍, 강준희가 함께 수고하였고, 1980년 고승국, 이주열, 1981년에 윤병국, 1982년에 홍순철, 최정우, 이성재가 부임하였다.

변동기
  1981년 8월에 정문성, 김성규가, 1982년 8월에 강준희, 1983년 8월에 홍순철, 1985년 8월에 이주열, 이성재, 최정우가 유학을 떠나 교수진의 변동을 겪게 된다. 김성규는 1981년 9월에 UCLA로 유학한 후 현재는 한국원자력연구소에, 강준희는 1982년에 미네소타대학으로 유학한 후 인천대학교에, 이주열은 1985년에 아이오와주립대학에 유학한 후 호서대학교에, 최정우는 피츠버그대학에 유학한 후 경희대학교에, 이성재는 노스웨스턴대학에 유학한 후, 한국전자통신연구소에 재직하고 있다.
  1983년에 해군사관학교 교관으로 재직하던 김갑진이 부임하여 후진양성에 노력하였다. 1984년 조화석이 영남대학교로 옮긴 후 엄영호가 합류하였으며, 1985년 이성재, 최정우가 미국유학을 감에 따라 그 자리에는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근무하던 김태수가, 1986년에 김일원이 합류하여 후진교육에 힘쓰고 있다. 학과의 역사는 1972년에 응용물리학과로 신설되었다가 1973년에 금속공학과와 통합하여 재료공학과로 변경된 후 다시 1979년 응용물리학과로 신설되어 1980년에는 응용물리학과에 교직과정을 설치하였고, 1982년에는 학과명을 물리학과로 변경하였다. 1983년 2월에 처음으로 10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이래로 매년 4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여 2002년 현재에는 정원 50명의 학과로 발전하였다.

발전기
  1985년에는 종합대학교로 승격되어 자연과학대학 물리학과로 발전되면서 대학원 석사학위 과정을 인가받아 3명의 대학원생을 받았다. 1988년에는 박사학위 과정을 개설하여 석사과정을 졸업한 3명을 받아 기본 골격을 갖추게 되었다. 1990년에는 교육대학원 설치 인가를 받아 물리교육전공 석사학위 과정도 개설함으로써 지역사회 일선 교사의 재교육과 첨단과학 발전연구에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1992년 대학교육협의회에서 주관한 학과 평가인정제에서 우수학과로 인정받은 이듬해인 1993년에 한국표준연구원에 근무하던 김석원이 물리학과의 발전을 위하여 합류하였다. 1997년에는 나상균이 울산과학대학 학장으로 영전해나갔고 4년간의 업적을 인정받아 2001년에 연임되어 울산과학대학을 국내 최고의 전문대학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하고 있다. 2000년 2월에 김갑진이 정년 퇴임하였고 그자리에는 노스웨스턴대학에서 수학한 조성래가 부임하였다.
  1999년에는 수학 및 물리기술학부의 광·전자물리학 전공으로 발전하여 2001년 9월 현재에는 1학년 50명, 2학년 48명, 3학년 60명, 4학년 35명으로 학부 총 재학생수는 193명이다.
  배출된 졸업생도 2001년 2월로 19회를 맞아 총 7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여, 이들 중 절반은 전공과 관련이 있는 대기업, 중소기업 또는 교육에 종사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고 있으며 일부는 금융계, IT 산업계 등으로 진출하고 있고 나머지는 물리학과에서 익힌 지식을 바탕으로 자영업을 운영하고 있다. 재학 중 성적이 우수한 졸업생은 대체로 모교를 비롯하여 유수 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하고 있는데 매년 10명 정도에 이른다. 2001년까지 대학원을 진학한 인원수는 70여명이고 전과정을 마친 박사학위 소지자도 10명에 달하고 있고 이 중에는 미국 유타대학교 연구교수, 부산의 동의대학교, 대전의 목원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울산과학대학 반도체공학과에도 재직하고 있다.

학회 및 사회봉사 활동
  물리학과 신설을 기념하여 한국물리학회를 1979년 가을에 유치하여 원만히 진행하였고, 1996년 10월에도 한국물리학회를 유치하여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지역활동으로는 한국물리학회 부산·울산·경남지부의 활동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으며 1986 - 1987년에 지부장, 1987 - 1989년에 부회장으로 나상균이 활동하였고, 2001 - 2002년에 지부장을 맡은 서말순은 회원의 정보교환과 친목에 많은 열정을 갖고 2000년 6월에 울산대학교에서 지부학회 개최를 하였다.
  울산시에 위치한 유일한 4년제 종합대학인 울산대학교는 지역사회 봉사에도 각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1996년에 울산시 소재 고등학교 교사들과 물리교육을 논의하기 위해 제1회 물리교육세미나를 개최한 이후 매년 1 - 2차례 모임을 가져 왔다. 2002년 6월 20일에는 제8차 물리교육세미나를 개최하여 현재 어려운 실정에 있는 물리교육 문제를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2002년에는 울산광역시 교육청과 공동으로 영재교육센터를 설립하여 학과의 많은 교수가 참여하여 물리의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이 한국우주전파관측망 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2005년까지 200억원을 투입하여 첨단 우주관측망을 울산대학교 내에 설치 중에 있다. 전파 망원경과는 별도로 울산시 예산으로 광학망원경도 설치하여 울산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시민들을 위한 과학강연 등을 개최하여 울산시민이 천문과학뿐 아니라 과학 전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현재상황과 미래비전
  2002년 현재 울산대학교 물리학과는 위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11명의 교수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공별로 분류해 보면, 광학 전공 3명, 핵·원자물리 전공 2명, 응집물리 전공 6명이다. 대학원 장학제도 개선과 교수들의 연구에 대한 열정의 결과로, 최근 대학에서 나타나는 대학원 진학 기피현상과는 달리 대학원 진학 학생수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약간 늘어나 최근 몇년간 매년 약 10명의 학생이 석사과정으로 진학하고 있다. 울산 주변에 위치한 원자력발전소와 협력하여 핵물리 연구를 활성화할 계획이며 타 대학교에 비해 비교적 많은 광학 전공 교수들은 응용광학 분야를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고 6명의 응집물질 전공 교수는 지금까지 왕성한 연구 활동을 전개하여 왔으며 2002년 8월에 MBE 장치 설치를 계기로 세계를 선도할 연구를 준비중에 있다. 울산대학교 내에 설치되는 우주관측망을 고리로 하여 한국천문연구원과 공동연구를 통해 천체물리에 대한 연구를 활성화하고자 한다.



울산대학교 물리학과는 1972년 공대 응용물리학과로 시작, 1973년 재료공학과로 변경, 1979년 응용물리학과로 환원, 1982년 물리학과로 변경. 1985년 학교의 종합대학 승격과 함께 석사과정 개설, 1988년 박사과정 개설. 1990년 교육대학원 물리교육 석사과정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