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학교는 육이오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 고국의 낙후된 공업을 발전시켜 국가산업과 경제자립 기틀을 조성하고 과학기술 분야의 인재양성을 목표로 하여 하와이 교포들이 모금한 성금을 모태로 인하공과대학으로 출발했다. 학교명 “인하”는 인천과 하와이의 앞글자를 따서 만들었다. 1969년 한진재단에서 인하공과대학을 인수, 1971년 12월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면서 인하대학교로 개명하고, 이때 이과대학이 신설되었다.

여명기
  물리학과는 1978년에 인하대학교 이과대학에 설립되어 1979년 3월에 처음 신입생을 모집했으며, 2002년 현재 14명의 교수가 재직중이고, 약 800명의 학부생을 배출했다. 1980년 12월 교육대학원에 물리교육전공을 개설하였고, 1982년 11월 대학원에 물리학과 석사과정을, 1984년 11월에는 박사과정을 개설하였다. 물리학과의 초창기 설립 멤버는 최동철(崔東哲, 현재 명예교수), 이민희(李旻熙), 공홍진, 이재일(李在一), 박대윤(朴大允) 등이다. 최동철은 1963년 미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고압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1966년부터 1974년까지 메리에타대학(오하이오)에서 부교수로 재직하였다. 1974년 인하대학교 공과대학의 응용물리학과 유치과학자로 부임하여 당시 응용물리학과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1978년에 이과대학의 물리학과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79년에는 한국과학원에서 레이저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민희가 부임하여 물리학과가 첫출발을 하게 되었다. 이듬해인 1980년에 서울대학교에서 고체물리학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재일, 1982년에는 한국원자력연구소의 연구관으로 있던 박대윤이 부임함으로써 어느 정도 물리학과의 틀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같은 시기에 한국과학원에서 광학을 전공한 공홍진이 부임하였다가 1985년에 한국과학기술원으로 이적하였다. 이들 5명의 교수가 1979부터 1985년 사이에 인하대학교 물리학과의 기틀을 다졌으며, 이 시기를 인하대학교 물리학과의 여명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부터 물리학과는 이민희와 박대윤이 주축이 되어 광학분야의 특성화를 이룩하였다. 박대윤과 이민희는 한국물리학회와 한국광학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박대윤은 한국광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한국물리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박대윤과 이민희는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반에 과학원 원장을 역임한 이상수를 도와서 한국에 레이저물리학을 소개하고 발전시킨 산 증인이다. 이재일은 서울대학교에서 최연소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이론자성물리학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기고 있다.

유아기
  1985년에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핵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독일의 KFA에서 연구원으로 있던 차동우(車東祐)가 부임하였다. 같은 시기에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학에서 고체물리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아르곤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있던 이기영(李基永)이 부임하였다. 1989년에 미국 애리조나대학에서 박막광학을 전공하고, 충북대학교에 재직 중이던 황보창권(皇甫昌權)이 부임하였다.
  1985년부터 1990년 사이를 인하대학교 물리학과의 유아기라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물리학과는 광학, 레이저물리학, 박막광학 등의 광학분야와 이론 및 응집물질물리학 이론의 두 분야로 특성화되기 시작하였다.

양적 성장기
  1990년대는 양적 팽창의 시기로, 1991년 미국 로체스터대학교에서 광학이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원자력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있던 김기식(金祺植)이 부임하였다. 1992년에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통계물리학을 전공한 박형규(朴炯奎)가 부임하였다. 1992년에는 한국대학교수협의회 주관의 전국 대학 물리학과 평가에서 우수학과로 평가되었다. 1992년 9월에는 미국 애리조나대학에서 광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석목(李錫穆)과 한국과학기술원에서 통계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재우(李在雨)가 부임하였다.
  1994년에는 한국물리학회 봄 정기총회를 인하대학교에 유치하여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1995년에는 로체스터대학에서 광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노재우(盧載雨)와 미국 퍼듀대학교에서 핵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윤진희(尹珍姬)가 부임하였다. 같은 해에 영국 런던대학교에서 고체물리 실험을 전공한 박제근(朴濟根)이 부임하였다. 이 시기에는 광학 및 레이저물리학 분야, 통계물리학 이론과 핵물리학 분야가 보강되어 물리학과에 전체적인 균형을 이루었으며 광학분야와 응집물질물리 분야가 특성화되었다.

질적 도약기
  1997년에는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고체물리학 이론을 전공한 이병찬(李炳瓚)과 역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산타바바라)에서 고체물리 실험을 전공한

이창희(李昌熙)가 부임하였다. 1997년에는 최동철이 정년 퇴임하였으며, 2001년에 박제근이 성균관대학교로 이적함으로써 2002년 2월 현재 물리학과에 14명의 교수가 재직중이다.
  현재의 물리학과는 양적 팽창의 시기에서 질적 팽창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1998년에 BK21 핵심사업에서 “광과학센터”와 “응집물질물리학센터”의 2과제가 선정되었다. 1999년부터 광과학센터가 설립되어 매년 학계와 산업체를 대상으로 광기술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2001년에는 광과학기술연구소가 설립되어 박대윤이 초대 연구소장에 취임하였다. 2001년에 나노하이테크 연구소를 설립하여 응집물질물리학 교수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으며, 인하대학교 광기술교육센터는 2002년부터 산업자원부의 지원을 받게되어 학계, 연구소, 산업체의 인력을 대상으로 광기술교육을 연중 실시하고 있다.
  인하대학교 물리학과는 1998년에 물리화학부의 물리학과로 개편되었으며, 2000년부터 자연과학계열로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으며, 자연과학계열 물리화학부의 물리전공으로 존속하고 있다. 2001년까지 약 800명의 학부생과 약 120명의 석·박사를 배출하였다.
  인하대학교 물리학과는 인하대학교의 실용 학풍에 따라 실험교육과 응용물리학의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학부제로 개편된 이후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일반물리학의 모든 강의를 멀티미디어로 강의하고 있으며, 다양한 데모키트를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다. 또한 교육개혁사업의 일환으로 물리학실험의 기자재를 현대화하여 학생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또한 국내 최초로 대학물리학 교재를 집필하여 원서를 대체하였다. 인하대학교 물리학과의 장기적 발전계획을 살펴보면 현재의 광학, 레이저물리학, 응용광학 분야를 더욱 보강하여 경쟁력을 높이고, 실용적인 분야의 교육을 강화할 예정이다. 광학 및 레이저 응용 분야를 광전자, 광통신 분야와 접목하여 IT 분야의 기초 및 응용 연구 인력을 배출한다. 특히 광학분야는 공과대학의 정보통신공학 및 전기전자 분야와 연계하여 광정보통신 연계전공을 개설하여 물리전공 및 공과대학의 학생들이 2개의 전공으로 졸업할 수 있게 하였다. 이론 및 응집물질물리학 분야는 고체물리학 이론, 통계물리학 이론, 핵물리학 이론 분야의 연구력을 강화하고, 고체물리학 실험분야의 인력을 강화할 예정이다. 특히, 유기 발광소자, 유기 반도체 분야와 나노 물리학 분야에 집중적인 투자를 할 예정이다. 나노 물리학 분야는 교내의 특화사업으로 지정되어 향후 몇년간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인하대학교 물리학과는 하와이 교포들의 모금으로 1954년 인천에 설립된 인하공과대학이 한진재단에 인수되어 1971년 인하대학교로 승격된 후 1978년 이과대학에 개설. 1980년 교육대학원 물리교육 석사과정, 1982년 대학원 석사과정, 1984년 박사과정 개설.

 

 

 

 

 

 

 

 

 

 

 

 

 

 

 

 

 

 

 

 

 

 

 

 

 

 

인하대학교 2002년도 물리학과 학생들의 졸업사진 촬영때 본관 앞에서 찍은 물리학과 교수 단체사진. 왼쪽부터 박형규, 김기식, 이재일, 윤진희, 황보창권, 이기영, 박대윤, 차동우, 이석목, 이재우, 이병찬, 이창희. 사진에 이민희, 유천열이 빠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