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대학교 물리학과는 1984학년도에 신설되었으며, 1990학년도와 1994학년도에는 각각 대학원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이 신설되어 있다.

여명기
  1984년 3월에 신설된 물리학과는 제주대학교 해양과학대학 소속으로 시작되었다. 같은 해 3월에 홍성락이 물리학과 학과장으로 임용되었으며, 입학 정원은 40명이었다. 물리학과 사무실과 교수 연구실은 현재의 공과대학 1호관 1층에, 전공 실험실은 현재의 해양과학대학 2호관 2층에, 일반물리학 실험실은 교양과정동 3층에 있었다. 그러다가 1984년 10월에는 이공대학이 분리 개편되면서 “해양과학대학 물리학과”에서 “이공대학 물리학과”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유아기
  1985년 3월에 사범대학에서 물리학과로 이론물리학을 전공하는 최치규가 소속을 변경하였다. 그해 9월 홍성락이 미국의 퍼듀대학 객원교수로 가게되어 최치규가 학과장직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1986년에 입자물리학 이론 전공의 현남규가 전임강사로 발령 받았다. 그해 가을에는 교양과정동 3층으로 물리학과 사무실을 옮겼고, 교수 연구실 및 실험실들을 같은 건물 2, 3층으로 이사하였다. 1987년 3월에는 응용물리학을 전공하는 김두철, 응집물리학을 전공하는 고정대가 동시에 발령받아 물리학과는 5명의 전임교수를 확보하였다. 1987년 8월에는 홍성락이 “뫼스바우어효과에 의한 제주도 화산암의 미시적 연구”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88년 2월에는 제1회 졸업생 17명을 배출하였다.

양적 성장기
  1988년 10월에 이공대학이 자연과학대학과 공과대학으로 분리됨에 따라 자연대학 물리학과로 소속을 바꾸게 되었으며, 1989년에는 자연과학대학 1호관으로 사무실과 교수연구실들을 임시로 옮겼다. 1990년도에는 자연과학대학 1호관 1층으로 학과 사무실 및 연구실과 전공 실험실들을 옮기고 나서, 2002년 현재까지 부분적인 연구실과 실험실 등의 이동 이외에는 큰 변화가 없는 실정이다.
  1989년에는 현남규가 이론물리학으로, 김두철이 응용광학으로, 1990년에는 최치규가 표면물리학으로, 1993년에는 고정대가 응집물리학으로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함으로써 교수 전원이 박사학위를 소지하게 되었다.
  1990년에는 고체물리학 이론 전공의 류재연이 부임함으로써 학과는 활기를 찾기 시작하였는데, 그해 3월에는 대학원 물리학과 석사과정이 신설되었다. 1991년 3월에는 대학원 석사학위 과정에 4명이 입학하였는데, 이들 중 3명이 1993년도에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92년에는 핵물리학 이론을 전공하는 김용주가 임용되었으며, 1993년 3월에는 고체물리학 이론을 전공하는 오상식이 전임강사로 발령받았다. 따라서 물리학과는 실험과 이론을 전공하는 교수가 각 4명씩 근무하게 됨으로써 균형잡힌 학과 발전의 기틀이 다져지게 되었다.
  1994년 3월 대학원 박사과정에 물리학과가 신설되어 1명이 진학하였고, 1998년 2월에는 물리학과에서도 첫 박사학위 소지자를 배출하게 되었다. 그런데 물리학과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성장을 가속화하던 차에, 1996년 5월에 장래가 촉망되던 오상식이 지병으로 타계하여 과는 큰 충격을 받게 되었으며, 충격에서 벗어나는 데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1984년 이후로 교수들뿐만 아니라 그동안 10여명의 시간강사(이승국, 정성헌, 김두철, 현동걸, 김용주, 홍만표, 강동식, 강명화, 김순희, 이상칠, 양수정, 고호정 등) 들도 물리학과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또한 초창기에는 2명의 조교가 근무하다가 1992년 5월부터 2001년 8월까지는 3명의 조교가 근무하였는데,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조교 정원이 수년간 증원되지 않고 동결됨으로 인하여 2001년 9월부터는 다시 2명의 조교가 근무하게 되었다. 물리학과에서는 1988년도 이후부터 2002년도까지 399명의 학사, 18명의 석사와 1명의 박사를 배출하였다.

질적 도약기
  1997년에 양자광학을 전공하는 유영훈이 부임하면서 물리학과는 실험 연구가 활성화하였고 그와 함께 질적인 도약기를 맞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교수의 해외연수도 활발해졌다. 1994년에는 류재연이 미국의 루이지애나대학에, 1996년에는 김용주가 미국의 퍼듀대학에, 1997년도에는 현남규가 미국의 브라운대학에, 1999년도에는 다시 류재연이 미국의 휴스턴대학에, 2001년도에는 유영훈이 영국의 리즈대학에, 2002년도에는 김두철이 호주(울릉공대)에 홍성락이 미국에 1년간 장기 파견되었다. 이렇게 물리학과 교수들의 장기 해외연수가 활발하게 이루어짐에 따라 물리학과는 연구와 교수 부문에 있어서 팽팽하게 당겨진 줄처럼 항상 긴장감이 계속되었다.그런데 매년 석사과정에 2 - 3명, 박사과정에 1명 정도가 진학하기는 하였으나 이러한 연구보조 인력으로는 교수들의 연구를 충분하게 뒷받침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실험 기자재 및 실험 재료를 구하는 것이 무척 어려운 섬지방이라는 불리함 속에서도 물리학과 교수들은 피눈물나는 노력을 계속한 결과, 1993년도 이후 한 해도 빠짐이 없이 매년 10여편의 논문을 SCI급 학술지에 게재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그리고 2001년도에는 제주대학교에서는 처음으로 최치규의 나노박막재료연구실이 NRL(국가지정 연구실)로 지정되어 교수 연구뿐만 아니라 대학원 교육이 활성화되는 계기를 맞았다. 그리고 2002년 현재 물리학과에서는 뫼스바우어 분광학 실험실, 나노박막 연구실, 신경동역학 및 과학철학 연구실, 광학 연구실, 자성물리 실험실, 핵물리학 연구실이 있으며, 해당분야의 첨단 연구를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

전과 무제한 허용제도 도입과 물리학과의 위기
  1999학년도에는 제주대학교 차원에서 신입생의 학부제나 학과군 모집이 전반적으로 실시되면서, 물리학과는 해양과학대학의 해양학과와 학과군을 형성하여 “물리지구해양학과군”으로 80명을 모집하였다. 그러나 2000학년도에는 제주대학교 해양대학 전체가 BK21 지원을 받게 되어서 해양과학대학 해양학부로 신입생을 모집하게 됨으로 인해, 물리학과는 2000학년도부터 단독학과로 모집하었다. 그러나 제주대학교 학칙에서 2, 3학년 진급자들에게는 전과 기회를 무제한 부여함에 따라, 현재에는 물리학과의 2, 3, 4 학년 각 학년에는 10여명의 학생들만이 재학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뿐만 아니라 2002년 3월에는 그동안 학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던 류재연이 지병으로 별세함에 따라서 물리학과는 다시 한번 교수를 잃게되는 충격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러한 여러 요인들이 장래에 물리학과가 침체를 맞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미래 비전
  물리학과가 시작한 이래 학교와 과내 교수들의 노력으로 비교적 잘 갖추어진 여건과 주변환경을 토대로 면학분위기를 향상시키고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여 제주대학교 물리학과 목표인 연구인력 교육과 급변하는 정보화 산업사회를 이끌어갈 인재로 양성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연구과제 창출로 산학협동 체제를 구축해 나가려고 한다. 이와 같이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인력양성을 위해서는 소속감이 희박한 학부제보다는 전담교수의 밀착교육이 가능한 학과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여 물리학과에서는 학과제로 학생을 모집하여 교육하고 있다. 앞으로도 변화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 양성을 미리 파악하여 그 수요에 충족시키는 교육과 연구 활동을 할 것이며 우수교수를 초빙하여 좀더 나은 연구와 교육이 될 수 있도록 물리학과로서의 교육적 역할과 연구기능을 다할 것이다.

학회활동
  모든 교수들이 한국물리학회 회원으로 학회활동 및 논문발표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기타 국내학회로는 광학회, 자기학회, 진공학회, 재료학회, 지질학회, 토양학회, 상고사학회 등 각 전공별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특히 최치규는 한국물리학회 이사(2001), 「물리학과 첨단기술」 편집위원(2000), 한국진공학회 이사(1999)로 활동 중이고, 고정대는 물리학회 창립5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2001)과 한국자기학회 편집위원(2001)으로 참여하였다.



제주대학교 물리학과는 1984년에 해양대학 소속으로 신설과 함께 이공대학에 소속되고, 1988년 자연과학대학 소속으로 개편. 1990년에 석사과정, 1994년에 박사과정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