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기
  충남대학교 물리학과는 한국물리학회 설립과 같은 해인 1952년에 충남대학교의 출범과 함께 시작하였다. 육이오전쟁 중이던 1951년 “전시연합대학”이 대전에 설치된 것을 시발점으로 하여 충청남도 당국과 지방 유지들이 중심이 되어 대학교 설립기성회가 조직되고 정성어린 노력의 결실로서 다음해인 1952년 5월 25일 문교부로부터 인가를 받아 도립 충남대학교가 설립되었다. 물리 분야는 문리과대학 내에 이학과란 이름으로 물리학, 화학, 수학의 통합된 학과로서 시작하였다. 그러나 당시 국내에선 물리학을 전공한 학자가 아주 드물었으며 지방은 사정이 더욱 어렵던 때라 전임교수라고는 1952년 5월 발령받은 조병원 전임강사 단 한명뿐이었다. 다음해 1953년 6월 강석규 전임강사(전 호서대학장)가 부임하고 나서, 이 둘이 주축이 되어 정식 물리학과 설치를 위한 준비작업을 하게 되었다.

유아기
  1954년 2월 창립 당시 불합리하게 인가된 학과를 재정비하여 문리과대학 내에 인가되었던 이학과를 물리학과, 화학과 및 수학과로 분리하여 새로 인가받음으로써 물리학과가 정식으로 발족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당시 물리학 강사진을 구하기란 다른 지방대학과 마찬가지로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육이오전쟁의 영향 때문에 임시로 겨우 시골의 고등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천광현, 오신근, 오희필, 정용호 등이 시간강사로서 출강하는 정도였다. 1955년 7월에 천광현이, 9월에 오희필이 전임으로 부임하게 되어 교수진이 약간 보강되었다. 그리고 강의실로는 처음에는 충남도청 뒤에 있던 차고를 이용하였으며, 2년 후에야 비로소 문화동 캠퍼스의 단층 목조건물로 옮겼다.
  또 당시의 실험실 시설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빈약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실험기구라고는 군대용으로 쓰이다가 흘러나온 계측기와 전자제품 등을 조립하여 쓰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교직원과 일부 학생들이 열의와 의욕을 가지고, 당시로서는 국내에 드물던 자동계수장치와 G - M 계수기를 직접 제작하여 1956년 2월부터 자연방사선 양과 빗물 및 대기 부유먼지 속의 방사능을 계속 측정하여 그 결과를 원자력연구소를 거쳐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보고한 바 있다.
  그러던 중 1957년 7월 조병원이, 1959년 11월에 강석규가 사임하여, 물리학과는 또다시 2명의 전임교수밖에 없는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1958년 윤화중, 원종수가 시간강사로 나오게 되어 겨우 유지되던 중, 1959년 충남대학교 물리학과 2회 졸업생인 김기원이 처음으로 조교로 부임하고, 1960년 강신후, 장보현 두 전임이 부임하여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1961년 방사능대책위원회규정(대통령령 제6940호)에 의거 전국 6개지방 방사능측정소 중 충남대학교 물리학과의 연구소가 중부지방 방사능측정소로 지정되어 방사능대책 사업의 일환으로 환경 방사능 조사를 실시하기 시작하여 2002년 현재 계속하고 있다. 또 이것을 활발하게 추진하기 위하여 원자력원 등의 지원으로 당시로는 거금인 1845만여원의 예산으로 123평의 특수과학관이 1962년 6월 준공되었다. 내부시설도 “스펙트로 포토메타”, “오토 스케일러” 등 당시로서는 최신형인 측정장치들을 구비하여 물리학과의 실험실습에 일대 전환기를 마련하였다. 이 무렵 대학정비령에 의하여 충북대학과 병합하여 국립충청대학교로 개편되었고, 오희필이 교학처장으로 부임하여 교과과정을 정비함에 따라, 물리학과의 교과과정도 대폭 개편되었다. 또 모교 물리학과 졸업생인 이병기 조교가 1962년 1월에, 금채 조교가 1963년 7월에 부임하여 학생들의 학구열을 북돋아 주었다.

양적 성장기
  1963년 3월에 드디어 물리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이 인가, 설치되어 핵물리학 전공에 이병기, 장충근, 송진섭 등이, 물성물리 전공에 금채 등이 대학원 과정에서 계속 수학하였으며 2002년 현재 모교 물리학과의 원로교수로서 활약하고 있다. 또 대학원 강사진을 그 당시 국내 타대학 교수인 서울대 민광식, 고려대 김상돈, 김정흠, 김종오, 동국대 김희규 등 쟁쟁한 석학들이 주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전임으로는 1963년 윤화중, 정완상 등이 보강되었고, 유병용, 강우형 등이 시간강사로 출강하여 물리학과 발전의 전환기를 마련하여 주었다. 1966년, 장충근의 부임으로 핵물리 분야는 더욱더 활성화하였으며, 물성물리 분야도 금채가 진공증착장치를 도입하여 그 연구가 활발하여졌다. 1967년에는 드디어 한국물리학회 총회를 충남대학교에서 개최할 수 있을 정도로 물리학과의 저력이 생겼다. 이것을 계기로 한국물리학회 충청지부를 창립하여 오희필이 지부장을 맡아서 운영하는 등, 명실공히 충남대학교 물리학과가 충청지방 물리학연구의 중심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러나 1967년, 정완상이 유학차 떠나고 1969년 장보현이 중앙대로 옮김에 따라 물리학과는 다시 한동안 침체상태에 빠졌다.
  1973년에 학교가 “대덕연구학원도시”로의 이전계획이 수립되자, 물리학과도 여기에 발맞춰 발전을 위한 내실화를 꾀했다. 공대에서 최철규가 1974년에 물리학과로, 1975년에 김광수가 물리학과에 부임함으로써 이론물리학 분야가 활성화되었다. 한편 1977년 IDA/IBRD 제2차 교육차관사업의 확정으로, 오랜 숙원이던 물리학과 실험실습 및 연구용 기자재 도입이 1980년까지 모두 완료되었다. 당초에는 물리학과 배정액이 50만달러 정도였으나 도입이 완료되었을 때의 총 품목수는 174종 511점이고, 액수는 74만달러에 해당하는 등, 국립대학 중에서 서울대학 다음으로 많은 배정을 받아 학과가 의기충천하였다.
  1977년에 박사과정이 신설되었으며, 기존의 핵물리학 전공과 물성물리전공뿐만 아니라 1년간 미국에서 음향학을 공부한 윤화중과, 한양대에서 금속물리학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수학중이던 장충근이 중심이 되어 응용물리학전공을 신설하였다. 1981년 핵물리학을 전공한 오재환이 새로운 학위제도에 따른 첫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질적 도약기
  1979년 드디어 대덕캠퍼스로 이전하게 되어 물리학과는 이학관 2호관의 대부분인 2300제곱미터를 차지하여 자리잡고, IDA 교육차관에서 도입한 500여점의 최신 기기를 설치하여 경쟁력을 갖춘 물리학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잡았다. 1979년에는 미국에서 김성구가, 1980년 원자력연구소에서 서일환이, 1981년 그동안 공대학장을 맡고 있던 김영전이, 같은해에 표준연구소에서 전재식이 부임하게 되어 교수진이 대폭 보강되었다. 강사진도 표준연구소의 정명세, 정낙삼, 정광화, 남균, 김창석을 비롯하여 국방과학연구소의 김웅, 한필순, 에너지연구소의 석호천, 서두환 등 대덕연구단지의 우수한 두뇌들이 대거 참여하게 되었다. 1982년 김성구가 면직하였으나, 교수 정원이 늘어남에 따라 교수진이 계속 보강되었다. 1982년에 양준묵, 1983년에 양재춘이 원자력연구소에서, 1984년에 미 유타대학에서 입자물리학 실험을 전공한 이호연, 1984년 10월 이기선이 동력자원연구소로부터 부임하는 등 연구경험이 풍부한 교수들이 대학원 교육의 내실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어서 l987년에 미 애리조나대에서 원자물리학을 전공한 조혁과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천체물리학을 전공한 이해심, 1988년에 독일 에를랑겐대학에서 통계물리학을 전공한 구현모가 부임하여 교육과 연구 양면에서 큰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

  1989년 8월에 김영전이 정년퇴임하고, 1990년 8월에 미국 피츠버그대학에서 반도체물리학을 전공한 오병성이 새로 교수진에 참여하였다. 1990년 오희필이 대전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하게 되어 물리학과를 떠났다. 1992년 서울대에서 핵물리학을 전공한 박병윤, 1992년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에서 고체물리학 이론을 전공한 임국형, 1992년 브라운대학에서 광학을 전공한 이동한이 부임하여 학과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이때 교수 수가 17명이 됨으로써 당시 국내 물리학과들 중에서 교수 수가 비교적 많은 학과에 속하게 되었다.
  교수 수가 늘어나게 된 것은 교육부 기초과학특성화사업 덕분인데, 학생 정원과 교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상대적으로 강의실과 실험실 공간이 부족하게 되었다. 공간 확보를 위해 추진되던 기초과학 2호관이 건설됨에 따라 1994년 물리학과가 이 건물로 이전하여 충분한 강의실과 실험실 및 교수연구실을 확보하였다. 교수 수와 시설이 늘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동안 학부생 입학정원이 100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교육에 있어서는 여전히 큰 부담이었다. 이에 물리학과 교수들이 3년에 걸쳐 노력한 끝에 교육부의 인가를 얻어, 1991년에 입학정원을 80명으로 줄였다. 한편 충분한 교수 수와 새 건물 확보에 따른 일종의 학과 기념사업으로, 1995년 10월 제 71회 한국물리학회가 충남대학교의 새 건물에서 개최되었다.
  그동안 교무처장 등 학교행정에 기여하였고 물리학과 발전에 주춧돌이 되었던 최철규가 지병으로 1995년 별세하였고, 1995년 서울대학교에서 통계물리학을 전공한 심경무가 부임하였다. 학과 설립 초기부터 물리학과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윤화중이 1996년 정년퇴임하였고, 1997년 미국 네브래스카대학에서 원자물리학을 전공한 정양수가 새로 교수진에 합류하여 조혁과 함께 원자 및 분자물리 분야가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2001년에 서일환이 정년퇴임하고, 미국 퍼듀대학에서 고체물리학 실험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인텔사에 근무하던 홍기민이 부임하였다. 2002년 전재식이 정년퇴임하였고 곧 충원이 있을 것이다.
  1998년 학과장이던 조혁의 아이디어로 시범실험(physics demonstration)을 통하여 물리 개념들을 쉽게 학생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하여 도입된 200여 종류의 시범실험기구들과 특수 강의실이 12월에 완공되어 일반물리학 강의는 물론이고, 해마다 수백명의 고등학생들을 초청하여 물리학을 홍보하는 데 사용하는 등 매우 효과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물리학회와 관련하여 1997년부터 2000년까지 구현모가 한국물리학회 학술지 편집위원을 지냈고, 조혁은 2001년부터 원자 및 분자물리 분과 위원장과 한국물리학회 학술지 편집위원을 맡고 있으며, 박병윤도 한국물리학회 홍보잡지 편집위원으로 2001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임국형도 2000년부터 한국물리학회 학술지 편집위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현재상황 및 미래상
  2002년 현재 교수 정원 17명, 학부 입학(진입) 정원 80명, 석사과정 24명, 박사과정 16명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 교수 수는 비교적 많은 편이고 학부 규모도 크다. 또한 학부 교육 시설에는 더이상 필요한 것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실험 기자재들이 확보되어 있다. 그러나 대학원생 수는 충분하지 않은데, 이는 학부 졸업생들이 다양한 분야와 다양한 세계로 진출하는 것을 물리학과 교수들이 권장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대학원생을 확보하는 문제는 앞으로 더 연구되어야 할 사항이다.
  학부과정은 형식상 1998년 3월부터 10개 학과가 1개로 통합된 기초과학부에 포함되어 있고 물리전공은 1학년이 2학년으로 진입할 때 결정된다. 진입정원은 예전과 같이 80명이다. 그러나 너무 큰 규모의 학부제가 가진 비합리성을 개선하기 위하여, 소학부제를 실시하기로 (물리학과는 천문우주과학과와 함께 물리 - 천문학부) 교수들이 합의하였고 2002년 현재 교육부의 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연구가 활발한 실험분야는 반도체와 광학 및 원자·분자물리이다. 이동한을 중심으로 광통신 관련 기기의 연구와 오병성을 중심으로 반도체의 물리적 특성 및 그 응용에 관한 연구가 주변의 연구소와 활발한 공동연구 수행으로 활성화되고 있다. 조혁과 정양수를 중심으로 한 원자·분자분야에서는 전자 - 원자(분자) 충돌 실험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론분야 중에서는 임국형이 고체물리 분야에서, 박병윤이 핵물리 분야에서, 외부 연구자들과 협력하여 활발하게 연구를 하고 있다. 그밖에 이론분야 교수들이 복잡계를 연구하고 있으나 아직 초기단계이다.
  한편 물리학과는 앞으로 2 - 3년 사이에 큰 변혁을 맞이할 것이다. 우선 앞으로 3년 내에 원로교수 5명의 정년퇴임에 따른 세대교체가 이루어진다. 시대적 변화에 맞추어 보강하게 될 분야는 2002년 현재 각광받고 있는 첨단분야와 함께 앞으로 10 - 20년 뒤에 활발한 분야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복잡계이다. 또한 현재 17명의 교수로는 충분하지 않으므로 교수 수를 계속 증원할 계획이다. 2003년부터 5 - 6년 이내에 모두 20여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충남대학교 물리학과는 1951년 대전에 설치된 “전시연합대학”을 기초로 1952년에 도립 충남대학교가 설립됨에 따라 문리대내에 이학과(물리·화학·수학)란 통합과로 시작. 1954년에 물리학과로 독립, 1963년 석사과정, 1977년에 박사과정 개설.

 

 

 

 

 

 

 

 

 

 

 

 

 

 

 

 

 

 

 

 

 

 

 

 

 

 

 

 

 

 

 

 

 

 

 

 

 

 

 

 

 

 

 

충남대 물리학과 교수사진. 윗줄 좌로부터 홍기민, 임국형, 이동한, 심경무, 구현모, 조혁, 이호연. 그 다음줄 좌로부터 이해심, 양재춘, 장충근, 금채, 이기선. 맨아래 좌로부터 양준묵 박병윤 오병성 전재식 서일환 정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