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기
  충북대학교 물리학과는, 1978년 충북대학교가 종합대학교로 승격되면서 인가되어 1979년 3월 수학과, 화학과, 생물학과와 함께 160명의 신입생을 자연계열로 선발하였다. 이와 함께 공대에서 홍성렬이, 부산대학교에서 이재봉이 부임하여 학과의 틀을 갖추었다. 설립 당시 사범대학장이던 이희재가 학장을 겸임하고 홍성렬이 교무과장과 학생과장을 겸임하며 물리학과는 물론 자연과학대학의 산파역을 담당하였다. 이어서 1980년에 초대학과장으로 홍성렬이 임명되고 구현모가 부임하였다. 동년 울산대학교에서 문영모가, 청주대학교에서 김명원이 전임강사로 부임하여 전공교육의 기틀을 갖추게 되었다. IBRD 교육차관으로 학부의 기본 실험기구를 구입하였다. 1981년에는 학과별 졸업정원제 실시에 따라 학생모집제도가 계열별 모집에서 학과별 모집으로 변경되어 52명을 선발하게 되었다. 동년 전종월과 곽국희 조교가 임명되었다. 1982년에 물리학을 전공하고 충북대학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한 연규횡이 제2대 총장으로 취임하고, 학과에는 이원식이 신규로 임용되었다. 그리고 동년 9월에는 연규황과 김용은이 부임하였으며 10월에는 홍성렬이 학장직을 맡아 자연과학대학 본부 건물 신축을 활발히 추진하였다. 11월에는 대학원 석사과정이 설립되어 원자핵물리학과 고체물리학 전공의 교과과정을 확정하였다.

발전기
  1983년 2월에 제 1회 졸업생 15명을 배출하고, 대학원신입생 2명을 선발하였다. 3월 유성초가 사범대학에서 전입하고, 황보창권이 신규임용되었다. 7월 자연과학관의 신축으로 전공실험실과 교양물리학실험실을 마련하고 사범대학에서 주관하던 교양물리학 실험교육을 물리학과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10월에 오석근이 부임하고, 1984년에는 이해원과 한승기가 부임하고, 황보창권이 유학차 사직하였다. 11월에는 박사과정이 신설되고 원자핵물리학전공과 고체물리학전공을 물리학으로 통합하여 다양한 전공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1985년에는 학과 설립 이래 처음으로 이승화와 이종화 석사를 배출하였다. 3월에 강희재가 부임하고, 10월 대학원 박사과정 설립이 인가되자 교수들의 전공도 다양하게 되어 대학원 교육과정을 물리학전공으로 개편하고 교과목을 선택적으로 이수하여 다양한 전공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5월에는 한국물리학회 충청지부에서 충북지부를 분리하고 활동을 개시하여 10월 추계 한국물리학회를 유치함으로써 명실공히 충북지역의 물리학 교육과 연구의 기틀을 갖추게 되었다. 12월에는 졸업 정원제이던 신입생 선발제도가 학과별 입학정원제로 변경되었다. 1986년부터 IBRD 차관기자재 도입으로 뫼스바우어 분광계, 방사능측정기, VSM 등의 장비를 구입하였다. 1990년 정진수와 임기수, 최중범이 부임하였다. 1992년 이해원 학과장을 중심으로 학과자체평가서를 대학교육협의회에 제출하여 학부과정 우수학과로 인정 받았다. 문영모가 도서관장에 임명되어 물리학관련 잡지의 구입이 대폭확대 되었다.

도약기
  1994년 물리학과의 1호 박사 김경섭을 배출하고, 이재봉은 반도체과학과로 전출하였다. 제2 자연과학관의 신축으로 공간이 확장되자 이원식 학과장은 VSM실과 역학실험실을 확충하였다. OECD 차관기자재도입으로 워크스테이션과 자기감수율측정장치, AFM&STM DAFM - 6300(현미경) 등의 장비를 구입하였다. 1997년 제3자연과학관이 완공됨에 따라 공간의 재배치가 시행되자 김용은 학과장은 교양실험실과 공작실, 강의실을 확장하고 전공실험실과 연구실을 전공별로 재배치하였으며, LCD, 컴퓨터, 투영기, TV, 스크린, 화이트보드 등의 시설을 갖춤에 따라 백묵을 사용하지 않고 강의를 할 수 있는 전용강의실을 갖추었다. 1998년부터 기자재확충사업비가 지원되어 시청각기기와 공작기기 등 학부실험장비를 대폭 확충하여 새로운 도약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1999년 천문우주학과 및 지구환경과학과와 함께 학과군 입학정원제로 신입생을 선발하게 되어 학과는 다시 침체기를 맞게 되었다. 그럼에도 학과설립 20주년 기념행사로 기념식수와 장학기금모금운동을 전개하여 700여만원의 장학기금을 모아서 학생들에게 학습의욕을 돋구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 두뇌한국21 사업으로 대학원 및 기초과학연구소의 연구과제를 확보하여 많은 학생들이 대학원에 진학하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2000년에 물리학과 역사의 산 증인인 홍성렬이 정년퇴임하고, 강희재는 과학재단에 파견근무를 하게 되었다. 9월에는 조용훈이 신규 임용되었다. 대학설립 운영규정에 따라 기존의 실험실 위주의 시설기준을 폐지하고 학생수에 따라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실험실습 기준을 정하도록 하여, 한승기 학과장을 주축으로 물리학과는 23실험실에 908종 1136점(약 16억원)으로 실험실습기준을 마련하고 2000년 9월에 대학교에서 기준으로 확정하였다.
  2001년에는 정진수의 활약으로 시청각시설을 갖춘 교양물리교육 전용강의실을 갖추고 강의용 TP의 개발과 컴퓨터를 이용한 교양물리 실험항목 도입에 주력하고 있다. 3월에는 한정호가 천문우주학과에서 물리학과로 전입하였다. 2002년부터 학과장을 맡은 강희재는 1000만원 정도이던 물리학과 장학기금을 3000만원으로 확충하여 재학생들의 학습의욕을 북돋우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동년 5월에는 연규황이 충북대학교에서 20여년간 연구한 논문을 정리하여 Physics Reports에 Review Article로 발표하였다.

교양교육과 전공교육의 변천
  1979년 신설된 충북대학교 물리학과는 실험대학교육과정에서부터 기초과학 교육을 강조한 교육과정을 개설하여 교육해 왔다. 1980년부터 교양물리학을 1년에 8학점 강의하도록 하였다. 1987년 졸업정원제의 시행으로 졸업학점이 축소됨에 따라 1년 8학점 강의와 함께 6학점을 이수하는 강의를 신설하였으며, 1997년 모집단위가 학과군으로 광역화됨에 따라 교양과정이 대폭적으로 개편되어 1년에 8학점을 강의하는 교양강좌가 폐지되었다. 교양물리학 교재개발에도 남다른 노력을 하여 그동안 『Orea 물리학』, 『Arfken 대학물리학』, 『기초물리학』, 『Young 대학물리학』, 『일반물리학』, 『맛보기물리학』을 발간 보급하였다.
  전형적인 물리학 교육과정으로 시작한 물리학과의 전공교육과정의 개편도 학제의 개편에 따라 몇차례의 개편이 있었다. 1979년 컴퓨터프로그래밍이 도입되고, 1985년에 수리물리학 3학기, 실험물리 6학기로 개설하여 이론과 실험의 기초과목의 중요성을 교과과정 개편에 반영하였으며, 1987년에는 수리물리학을 4학기로 역학, 전자기학, 양자역학을 3학기로 개편하여 기초 전공교육에 중점을 두게 되었으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1992년에는 전산물리학을 개설하였다.

대학원교육의 활성화와 외국학생 유치
  1994년 중국유학생 유치를 시작으로 2000년에는 베트남 유학생을 유치하고 영어로 강의를 하는 등 국제화에 노력하고 있다.
  연구실험실은 고에너지 및 입자물리연구실, 핵물리학연구실, 반도체연구실, 광재료연구실, 응용물리연구실, 표면물리연구실, 비선형 신경동력학 연구실, 전산통계물리 연구실, 기초양자물리 및 레이저응용 연구실을 갖추고 외국유학생을 유치하고 영어로 강의를 하여 대학원을 활성화하고 연구의 국제화에 노력하고 있다.




충북대학교 물리학과는 1978년 학교가 종합대학교로 승격되면서 설립된 후 1982년에 석사과정, 1984년 박사과정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