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기 (1970 - 1976)
  사범대학 과학교육부에 속해 있는 물리교육전공은 화학교육, 생물교육전공과 함께 중등학교 과학교사 양성을 목적으로 1970년 충북대학교 교육학부 과학교육과 물리전공으로 시작되었다. 초창기 물리교육전공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정열을 기울인 김대식(1970년 부임)은 한국에 PSSC교육과정을 도입한 선두주자로 풍부한 실험경험을 바탕으로 실험 중심의 교육을 적극 권장하였다. 또한 초창기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한 김영대(1971년 부임)는 선진국의 초중등 과학교육에 깊은 관심을 두었으며, 물리학의 이론적 탐구에도 많은 비중을 두어 물리학에 자신을 가질 수 있는 중등교사 양성에 힘썼다. 핵물리학을 전공한 안병균(1976년 부임)도 물리교사 양성에 주력하였다. 1973년부터 졸업생을 배출하기 시작하여 매년 15명 내외의 물리교사를 배출하였다. 1975년 교육대학원에 물리교육전공이 신설됨으로써 물리교육전문 교사양성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고 매년 2 - 6명의 물리교육학 석사가 배출되었다.

성장기 (1977 - 1990)
  대학정원 팽창과 함께 물리교육전공의 정원이 20명 내외로 증가되었고 1978년 충북대학이 종합대학으로 바뀌면서 물리교육 전공의 소속은 교육학부 과학 교육학과에서 사범대학 과학교육학과로 바뀌게 되었으며 1980년 완공된 사범대학 건물로 이전하여 학생들의 실험실 및 강의실도 충분히 확보하게 되었다. 또한 교양물리학을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자연과학대학 및 공과대학의 신입생들의 수가 대폭 증가하여 소속교수들은 교양물리학의 강의에 많은 시간을 투입하였다. 1974년과 1978년 세계은행 등으로부터 두차례의 IBRD교육차관을 지원받아 교육기자재를 확보하였고, 교육현장에서 실험에 능숙한 물리교사가 되는 데 지대한 기여를 하였다. 또한 김대식은 중등학교 탐구교육형 실험실습을 할 수 있는 기자재 확충안을 만들어 중등학교의 실험실습 여건 개선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김영대는 이 기간중 한국물리학회 충북지부를 결성하여 지부장을 역임하였다. 졸업생 수의 증가로 충북뿐 아니라 인천, 경기, 강원도 등 각지로 퍼져나간 졸업생들은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물리, 과학 교육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1981년에는 과학교육연구소가 설치되어 물리교육의 학술적 연구를 지원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었으며 매년 중등교사들을 위한 일반연수 및 1급 정교사 강습을 실시하여 도 내외 물리교사들의 재교육에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도전기 (1990 - 2002)
  1990년 임용고사의 시작으로 국립사범대학 졸업생의 무시험 임용방침이 철회되면서 국립사범대학에 속해있는 물리교육전공은 심한 도전을 받고 있다. 졸업생 전원이 국, 공립 중등학교로 임용되던 과거와는 달리 교원임용고사에 합격하는 사람만이 임용될 수 있기 때문에 임용고사에 최대한 유리하게 교과과정이 재조정되었으며, 중등학교에서의 공통과학전공자의 요구에 따라 1997년 전국에서 최초로 공통과학 전공을 신설 운영하고 있다. 또한 최근 사범대학에서의 교과교육중시 경향에 따라, 물리교육학을 전공한 김익균 (1987년 부임)을 중심으로 실효성 있는 물리교육학을 강의하고 있다. 과거 전 졸업생들이 국공립 중등학교 교사로 임용되던 것과는 달리, 부분적으로 사립중등학교나 유명학원 강사로 일하는 등 졸업 후 진로가 다소 다양화되고 있다. 1998년 물리교육전공은 과학교육학과가 과학교육학부로 개편되면서 이곳에 소속되었다. 현재 2, 3, 4학년에 46명의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다. 2000년 김영대가 퇴임하고 양동석이 부임하였다.

소속교수들의 활동
  김대식은 과학영재교육, 물리올림피아드 등 중등학교 학생들과 직접적으로 만나는 물리교육에 많은 기여를 하였고, 지금은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대학에서 일반물리학을 배우는 학생들이 물리를 쉽고 재미있게 배우도록 하려면 교과서 내용을 어떻게 재구성해야 하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1966년 한국물리학회 물리교육분과가 생긴 이래 물리교육분과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였고, 물리교육분과 간사를 거처 1998년부터 4년간 분과위원장을 지냈다. 1985년부터 용어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고, 1997년부터 4년간 용어심의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1990년부터 학술지 편집위원으로 3년간 봉사하였다. 2000년에는 물리교육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2001년부터 50주년 기념사업회의 물리교육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2001년에는 물리학회 및 과학교육관련 단체의 지원을 받아 국제 물리교육학회 (International Conference of Physics Education in Cultural Context)를 개최하여 국내외 물리교육연구가들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형성하였다.
  안병균은 한국물리학회 원자핵물리학분과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1999년 중부지역의 환경 방사선을 분석하였고, 2000년 한국, 일본, 중국의 원자핵 에너지 개발현황을 조사하였으며 원자핵물리학 분야를 물리교육에서 효과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익균은 1987년 전임강사로 부임한 이래 초창기에는 김대식의 물리교육활동을 도와 과학영재교육, 물리올림피아드 참가를 위하여 선발된 중·고등학교 학생지도를 하였고 과학교육단체 총연합회의 창설과정에도 참여하였다. 한국물리학회의 경우 「물리교육」지 편집간사, 물리교육 분과 간사를 지냈고 한국물리학회 충북지부 간사로 활동하였다. 국제학회 관련 활동은 1988년 APPTEA 아시아 태평양지역 물리교사 협의회 주최 국제 세미나에 참석한 것을 비롯하여 1993년부터 호주 과학교육학회에 회원으로 등록하여 연구발표 및 학회활동을 하였다. 연구관심분야는 물리교육 관련 연구분야 중 개념학습에 관하여 특히 관심이 있다. 즉, 개념학습과 관련된 이론적 배경과 특히, 과학철학을 학생의 물리개념 학습의 관점에서 조망해보고 이를 학습자의 인지심리학과 연계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양동석은 2000년 부임한 이래 포항방사광 이용자협의회의 EXAFS 분야 전문위원 (2002년)으로 활동하면서 포항가속기를 이용한 X선 흡수 스펙트럼을 분석하여 고체의 미세구조를 연구하는 첨단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상황 및 미래비전
  2002년 8월에 김대식이 퇴임함에 따라 물리교육전공은 새로운 변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또한 외적으로는 사범대학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요구가 증가함에 따라 더욱 새롭게 태어날 것을 대내외적으로 요구받고 있다. 이에 따라 물리교육전공은 새롭게 젊은 교수진을 보강하고 향후 전망을 바탕으로 충청지역의 우수 과학교육교사 양성기관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물리전공은 변화하는 주변여건에 부응하여 최상의 교육환경이 요구하는 과학교사양성을 위하여 신세대 학생들에게 적합한 교육과정을 지속적으로 개편하고 교육현장에서 필수적인 각종 실험실습 기능을 기르기 위한 실험시설을 현대화하며, 이를 위한 연구와 재원마련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또한 교육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과학교사연수 및 재교육을 위한 현장중심의 연구를 강화하며, 현장교사를 위한 각종 연수에 적극 참여하고 이와 관련된 연구를 추진한다. 교육현장에서 요구하는 여러 현안에 대하여 관련된 중등 교육기관과 긴밀한 협력을 강화한다. 물리교육전공의 학문적 위상정립을 위해서는 관련전공 박사과정을 설치하여야 한다. 따라서 대학원 내에 물리교육학 박사과정을 신설하여 물리교육전공의 학술적 전문성을 확립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이론과 실험을 겸비한 유능한 중등교사를 양성할 것이다.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물리교육전공은 1970년 교육학부 과학교육과 물리교육전공으로 시작 1978년 학교가 종합대학으로 승격됨에 따라 사범대학 교육학과로 소속 변경, 1998년 과학교육부에 소속. 1975년 교육대학원 물리교육전공 석사과정 개설.

 

 

 

 

 

 

 

 

 

 

 

 

 

 

 

 

 

 

 

 

충북대 사범대학 과학교육학부 물리교육전공 2002학년도 MT기념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