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고등과학원은 우리나라의 기초과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1996년 10월에 설립한 과학기술부 산하 출연 연구기관으로 현재 수학부, 물리학부, 계산과학부의 세 학부로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 각 학부에는 세계적인 석학교수를 포함한 교수진과 젊고 유능한 연구원들이 각각의 분야에서 창의적 과제 중심의 연구를 하고 있으며, 활발한 국제 학술행사 및 세미나 그리고 방문연구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의 최신 연구를 국내 학자들에게 소개하고 상호 교류함으로써 국내 기초과학의 선도적 역할과 세계적 수준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고등과학원의 설립 및 성장기

  1995년 12월 KAIST 이사회에서 고등과학원 설치 및 운영을 공식적으로 승인한후, 우리나라의 기초과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취지하에 고등과학원 설립을 추진하였다. 당시 정근모 과학기술처장관의 지대한 관심하에 KAIST의 신성철을 단장으로 하는 고등과학원 설립추진위원단을 구성하였으며 수학, 물리, 화학, 생물의 4개 학부를 중점적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 구체화되었다.
  이후 1996년부터 민간기금 확보 등 본격적인 설립준비와 함께, 그해 8월에 고등과학원장 선임위원회가 구성되었고 고등과학원의 조속한 개원을 위해 과학기술처, KAIST 등 관련부처와 고등과학원 설립 추진단에서 본격적인 노력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것의 일환으로서 1996년 8월 15일, 예일대 젤마노프(E. Zelmanov, 1994년 필즈메달 수상자)가 고등과학원의 최초의 석학교수로 계약이 이루어졌다. 그 후 9월 2일부터 3일까지 쉐라톤 워커힐호텔에서 6명의 노벨 수상자와 3명의 필즈메달 수상자를 초청연사로 하는 고등과학원 개원 심포지엄을 성대하게 개최하였다. 이 행사 중에 초청연사는 물론 KAIST 원장, 추진위원장을 포함한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고등과학원 향후 운영에 관한 간담회가 열림으로써 고등과학원의 개원에 대한 기대가 확산되었다.
  초기의 여러 어려운 여건으로 인하여 우수연구진 확보가 충분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고등과학원의 개원을 서두르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 당시 구본영 과학기술처장관의 승인하에 1996년 10월 1일을 고등과학원의 개원일로 정하고, 2002년 현재 기숙사로 쓰고 있는 파정사의 10평짜리 사무실에서 윤덕용 KAIST원장, 명효철 부원장 겸 원장 직무대리, 그리고 8명의 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고등과학원의 조촐한 개원식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2002년 현재 고등과학원이 사용하고 있는 1호관으로 옮겨온 것은 보수가 끝난 직후인 10월 15일이었다.
  1명의 석학교수로 시작한 고등과학원은 곧이어 11월 1일에 김정욱(초대 고등과학원장)과 명효철(당시 부원장 겸 원장 직무대리)을 교수로 임용하였고, 수학부에 곽시종(KAIST 교수), 김인강(서울대 교수), 올레그 이매뉴빌로프(Oleg Emanuvilov,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교수)를 연구원으로 임용하였다. 즉, 1996년 말 석학교수 1명, 교수 2명, 연구원 3명으로 총 6명의 연구진으로 고등과학원이 출발한 셈이다.
  순수 기초과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 부족 및 국내의 열악한 저변 환경과 더불어 고등과학원이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1998년도의 예산확보였다. 그러나 이것을 더욱 어렵게 한 것은 당시 불안정한 경제사정으로 인한 민간기금 확보의 부진과 최초의 계획에 훨씬 못 미치는 연구진 확보 등에 관한 부정적인 신문보도였다. 게다가 1997년 말 일어난 IMF에 의하여 고등과학원은 다시 한 번 일률적인 예산 삭감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러한 난관을 거치면서 1997년 12월 22일, 존스홉킨스대학으로부터 부임한 고등과학원 김정욱 원장과 더불어 2002년 현재의 고등과학원이 있기까지 노력한 사람들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초기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고등과학원의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국내외에서 고등과학원의 위상을 높인 교수진, 연구원, 국내외 방문연구진, 그리고 행정직원들, 이들 모두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2002년 현재의 고등과학원 모습으로 발전해 올 수 있었다.

고등과학원의 도약기

  1996년 10월 설립 당시 수학부, 물리학부의 6명만으로 시작한 고등과학원은 어느덧 6년이란 세월을 거치면서 계속적인 성장을 거듭하여 2000년 9월에 신설된 계산과학부를 포함하여 2002년 현재 총 82명의 연구진 정원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연구활동의 범위가 넓어졌을 뿐 아니라 그 수준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 오고 있다.
  구체적인 예로 2000년 이후 연간 100여명의 국외 방문연구자를 포함하여 약 200명의 방문 과학자들이 고등과학원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400여회를 넘는 세미나 및 국제학술회가 고등과학원에서 개최되었으며, 이로 인해 7000여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하여 학술적 수혜를 받고 있다. 또한 고등과학원은 1998년 이후 2002년까지 45명의 우수 연구원을 국내외 대학, 연구소에 배출하여 국내의 연구역량의 증대뿐 아니라 세계 유수 기관과 어깨를 나란히하고 있다.
  고등과학원의 연구진은 두 형태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첫째는 자율적인 연구환경 아래에서 수행되는 개인단위로 주어지는 1인 1과제의 기본연구이며, 둘째는 학부 또는 분야간 공동연구로 수행되는 전략연구이다. 고등과학원의 각 학부에서 수행하고 있는 연구활동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수학부
  2002년 현재 수학부는 석학교수인 젤마노프와 6명의 교수진, 그리고 19명의 연구원들이 대수학, 기하학, 해석학 및 응용수학을 포괄하는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교수들의 집중연구 분야는 대수학(젤마노프), 대수기하(금종해, 황준묵), 산술기하(김민형), 리이론 및 표현론(명효철, 강석진) 그리고 심플렉틱 기하(오용근) 등이다. 이들은 기본연구를 통하여 괄목할 만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그 결과들은 국제 저명 학술지에 발표되고 있다.
  그 예로 황준묵은 지난 15년간 미해결문제로 남아있던 라자스펠드(Lazarsfeld)가설을 증명함으로써 2002년에 한국과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또한 강석진은 제 2회 젊은 과학자상을 수상하였으며,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수학회에서 출판하는 “Graduate Studies in Mathematics”의 42번째 교재를 출판하여 화제를 모았다. 한편 오용근은 제 4회 젊은 과학자상을 수상하였다.
  이 외에도 전략적 연구로서 1999년을 “대수학의 해”, 2000년을 “미분기하의 해”, 2001년을 “산술기하의 해”로 지정하여 해마다 다각적인 학술회 및 집중강의를 수행함으로써 많은 국제적 저명 수학자들의 고등과학원 참여를 이끌어내었다. 이러한 활발한 연구활동을 통하여 고등과학원 수학부는 국제 수학계에 그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2) 물리학부
  2002년 현재 물리학부는 석학교수인 서스킨트(L. Susskind)를 포함한 7인의 교수진과 17명의 연구진으로 구성되고 입자, 통계, 고체, 천체물리 등의 분야에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소립자이론·우주론의 김정욱, 전응진, 초끈이론·장론의 이기명, 이필진, 핵이론·천체물리의 노만규, 통계물리 분야에 박형규가 있다. 특히 2001년에 김정욱은 한림원 청암과학상을 수상하였고, 2002년에는 노만규가 호암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학부설립 직후 고에너지 이론 분야가 주도하여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은 논문들이 먼저 저술되었는데, 대표적인 예로서는 김정욱, 전응진 등의 중성미자 연구, 이기명의 비가환 장론 연구, 이필진의 브레인 붕괴 현상 연구 등이 있고, 이외에도 초끈이론의 이상민, 김영재, 현상론의 이강영, 강신규 등의 논문이 국제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천체이론, 통계이론 분야의 연구진 활동 또한 큰 성장을 이루었다.
  물리학부는 내부 연구활동뿐만 아니라 토푸트(G.‘t Hooft), 러플린(R. Laughlin), 글래쇼(S. Glashow) 외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들의 콜로퀴엄과, 서스킨트와 이기명 등의 강의시리즈 등을 통해 국내 이론물리학의 저변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좋은 연구활동과 함께 이런 학회 행사를 통해 국제적인 연구소로서의 틀을 잡은 것 또한 중요한 간접효과라고 할 수 있다.

(3) 계산과학부
  수학부와 물리학부가 순수이론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는 반면, 2000년 9월에 신설된 계산과학부는 학제간의 연계된 연구활동을 통한 응용과제에 역점을 두고 있다. 2002년 현재 4명의 교수와 11명의 연구진으로 구성된 계산과학부의 주요 연구분야는 나노과학의 나노전자소자(김대만), 생명과학의 단백질접힘 (이주영) 그리고 정보과학의 양자정보(김재영, Nguyen Ba An) 및 공개키 암호론을 들 수 있다. 그 예로 나노산업에 요구되는 나노소자모사기술의 개발 및 발전에 목적을 둔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나노전자소자 구조 및 작동에 관한 기반지식을 창출하고 있으며, 응용화·실용화에 필요한 분야의 유기적 협동관계를 구축하는데도 역점을 두고 있다.
  또한 단백질의 1차원적인 정보만을 이용하여 실험을 통하지 않고 계산만으로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결정하는 문제의 연구에 필수적인 슈퍼컴퓨터를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병렬계산 체계를 구축하여 이에 관한 연구가 고등과학원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외에도 정보 보안의 필수적인 암호체계를 고급 수학 및 물리이론을 이용하여 전자상거래나 양자컴퓨터 등에 기반이 되는 이론 추출연구에 역점을 두고 있다.
  위에 열거한 각 학부의 연구 활동을 보완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매년 학부 단위로 국내외 전문가에 의한 리뷰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고등과학원의 연구수준을 단기간에 국제적 수준으로 상승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고등과학원 설립 당시 당초 구축하기로 계획된 화학부, 생물학부는 초기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미구축 상태로 2002년까지 계속되어 왔다. 2002년 전후 몇년 동안 화학, 생물 분야의 급격한 연구환경 변화와 더불어 고등과학원의 계산과학부의 신설로 인하여 화학, 생물학부의 구축은 이러한 변화와 고등과학원 내부 연구 역량에 부합되도록 조정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수차례 거듭되었다. 그리하여 화학 및 생물과 관련된 분야의 전문가의 자문 및 협의를 통하여 미구축 학부의 조정에 관한 가장 적절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진들의 수준 높은 연구 활동을 통하여 고등과학원은 2002년 현재 세계적인 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이에 부응하기 위해서 고등과학원은 지속적으로 연구환경 조성과 우수 연구진 유치에 더욱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1995년 12월 KAIST 이사회에서 고등과학원 설립 승인. 1996년 10월 1일 개원.